예쁜 것만 보려고 하면 예쁜 것만 보인다.

by 이유진

줌 수업이 한창이던 수업시간에 쉬는 시간을 끝내고 다시 수업을 시작하려는 찰나, 아이 한 명이 애들 앞에서 할 말이 있다면서 나에게 DM을 보내왔다. 그 친구는 애들한테 꼭 해야 할 말이 있다면서 자기의 억울함을 호소했다. 순간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평소 활발한 성격으로 아이들과 친하게 지내는 편이고, 게다가 방금까지도 채팅창에서 엄청나게 메시지를 주고받았던 것 같은데 갑자기 무슨 일이 생겼다는 걸까? 메시지의 내용을 보니 본인이 과제 링크를 좀 보내달라고 부탁했는데, 친구들이 알았다고만 말해두고는 그 이후로 아무도 응답해 주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화가 나고 억울하다는 입장이었다. 정황상 아이들이 그 친구의 메시지를 무시했다기보다는 노래와 함께 시끌벅적한 분위기 속에서 서로 자기 할 말을 하느라 아마 깜빡했을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그런 상황을 이야기해 주었지만 아이는 쉬이 납득을 하지 못했고, 아이들 앞에서 자기의 이야기를 하면서 억울함을 호소했다. 고집이 센 친구였다. 특히 한창 사춘기이라 그런지 자기의 감정을 컨트롤하는 것이 쉽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상황판단 능력은 있는 친구라 그런지 본인이 납득을 하고 나면 순식간에 감정이 사그러 들긴 했다.


이 친구의 이런 일들이 몇 차례 반복되자 아이가 가정에서도 이런 모습을 보이는지 궁금해져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어머니 역시 가정에서도 최근에 들어 그런 모습을 보인다면서 걱정을 하시며 해주신 이야기를 들어보니 내가 학교에서 봤던 모습과 일치했다. 그러면서 결국 어머니께서는 본인의 양육이 잘못됐던 것인가를 말씀하시며 자책하셨는데, 나는 그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저 아이마다 성향이 다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친구는 그저 더 많은 사랑과 관심을 원하는 아이일 것이다. 우리 둘째 아이가 그렇다. 첫째와 둘째는 성향이 매우 다른데 둘째의 특성상 주변의 많은 관심과 사랑이 티가 많이 난다고 생각하는데도, 우리 둘째는 그것이 부족한지 유독 나에게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다른 사람들과 다 잘 지내다가도 나만 있으면 생떼를 부리고 나를 못살게 구는데, 상황이 반복되면 결국 아이에게 화를 내게 된다. 나 스스로 어느 만큼 참았다는 생각이 들면 그 이후로는 진짜 무섭게 돌변하는 것이다. 결국 아이는 울고 그런 내 모습에 스스로 자책하는 것이 반복되자 더 이상 이러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주변에 이야기를 했더니 친구 한 명이 영상을 보내주었다.


상담사의 요지는 엄마의 리액션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아이가 보이는 행동들에 대한 엄마의 반응이 아이의 기대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엄마의 사랑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엄마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과장된 반응이 필요한 아이라는 뜻인데 그건 그야말로 그 아이의 성향이었다.


우리 둘째가 그렇구나 싶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친절하게 한다고 하지만 특유의 무덤덤함으로 아이들을 대하는 편이다. 아이들의 감정 기복에 휘둘리지 않으려고 나 스스로 만들어낸 방어기제일 것인데, 그것이 우리 둘째에게는 첫째에 비해 더 크게 다가온 것 같다. 특히 둘째가 첫째보다 더 주목받는다는 이유로 오히려 둘째에게 관심을 덜 주려고 했던 것을 아이가 본능적으로 안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우리 반 아이의 모습을 보니 정말 아이마다 많은 차이가 있구나 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됐다. 우리 둘째는 나의 사랑을 더 많이 원하는 아이였다. 내가 보이는 리액션이 본인의 성에는 차지 않는 것이다.


예쁜 것만 보려고 하면 예쁜 것만 보인다.


독서모임에서 만났던 한 분이 하신 말씀이다. 대학생 자녀가 있는 분이셨는데, 아이가 어렸을 때 잘못만 지적한 것이 어느 순간 미안해졌다면서, 특히 첫째 아이에게 맏이임을 강조하며 짊어주었던 말들에 대해 너무 후회가 됐다고 하셨다. 그래서 마음을 고쳐먹고 다 큰 아이들임에도 불구하고 '예쁘다'를 남발했더니 아이들이 바뀌더라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아이들의 잘못된 점을 지적하며 그것을 고치게 하기보다는 무조건 예쁘다고 하면서 사랑해주라는 말씀을 번이나 강조하셨다. 그 말이 오래도록 잊히지 않고 기억에 떠올랐다.


상담하던 아이 어머니께 자책하지 마시라고 하며 내가 들은 이야기를 전해드렸다. 사실 그 어머니도 선생님이신데 아이의 교육에 무엇이 부족하셨을까. 아마 교사로서 엄격함이 있었을 것이라 예상을 해볼 뿐, 엄마가 아이를 덜 사랑해서는 절대 아니었을 것이다. 단지 엄마로부터 더 더 많은 사랑과 애정의 표현을 필요로 하는 아이의 성향으로 인해 서로의 사인이 잘 맞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부모가 주려는 것과 아이가 받으려고 하는 것이 일치하지 않을 때 갈등이 생기는 것 같다. 어쩌면 모든 인간관계가 그로 인해 트러블이 생기는 것일지도 모른다. 한 명의 사람을 길러내는 것이 갈수록 어렵다 느껴진다. 나 역시 최근에 했던 고민이 조금 풀리는 기분이었다. 우리 둘째에게 좀 더 많이, 혹은 오버해서 표현을 해주자는 생각이 들었다. 첫째에게도 물론이고, 아이들에 대한 사랑을 내 마음속에만 담아두지 않기로 결심해본다. 걱정이라는 이름으로 아이의 잘못된 행동들을 교정하기보다는 따뜻한 사랑으로 그저 품어주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손자들을 그저 예쁘다고 해주시는 우리 어머니의 시선으로 말이다.


학교의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다 자란 아이들처럼 보이지만 그들 역시 친구의 사랑을, 선생님의 사랑을 갈구한다. 내가 잘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서 나도 모르게 아이들에게 지적질만 해대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다시 반성해본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나의 수려한 말발이 아니라 따뜻한 눈빛과 웃음일 것이다. 걱정된다는 이유로 딱딱한 말로 잘못을 교정해주기보다 '괜찮다'는 말 한마디로 아이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할 것 같다. 이런저런 말로 설득하기보다는 '걱정하지 마, 선생님이 너희를 미워하는 게 아니야'라는 말이 꼭 필요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처럼 우리 아이들 모두가 하나하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참으로 예쁘고 사랑스러운 존재인 것인데, 현재의 예쁜 모습보다는 앞으로 '더 잘 자라야지'하는 걱정만 담아서 보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싶어 진다. 지금 예쁜 모습을 많이 봐주고 인정해주어야 그 모습대로 자랄 것이다. 인간은 환경에 따라 진화하는 동물이 아닌가. 예쁜 것만 칭찬해주면 지적받으며 고쳐가야 할 행동들은 자연히 퇴화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아이들이 얼마나 똑똑한가. 예쁜 것만 보고 칭찬해준다고 해서 응석받이가 될 걱정은 그렇게 해 주고 난 다음에 해도 늦지 않을 것 같으니 일단 접어두고 칭찬부터 많이 해주자.


Photo by virginia lackinger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