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인 다는 것

여행 강의를 들으며 관계를 생각하다.

by 이유진

오랜만에 강의를 들으러 나왔다. 여행에 대한 강의였는데 4인 가족이 두 달여간 세계 여행을 한 것이 주제였다. 아직 아이들이 어린 나로서는 당장 듣지 않아도 될지 모를 강의였지만 '언젠가' 가족이 함께 떠나는 세계 여행을 꿈꾸고 있는 지라 궁금하기도 했고, 한 번씩 이런 기회를 통해 지루한 일상에 환기를 시키고 싶었다.


강의는 유익했고, 이것저것 필기도 많이 했다. 그리고 세계 여행에 대한 나의 로망이 다시금 살아나게 되었다. 강의를 듣기 전, 여행을 위해 준비해야 할 것들을 떠올리니 막연한 두려움이 들어 '굳이 떠나야 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그런 마음이 쏙 들어가 버릴 만큼 '역시 떠나야 해'라는 마음이 어느새 한편에 자리 잡았다.


대학교 3학년 때 친구들과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떠난 적이 있다. 여행 중에 한 가족을 만난 적이 있는데, 그들은(은퇴한 노부부와 장성한 두 아들) 트레블 카를 직접 운전하며 세계를 누비던 중이었다. 그들을 만났던 장소가 어디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자신들의 여행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을 해 주던 큰 아드님의 까맣게 탄 피부와 꺼끌꺼끌한 수염, 그리고 장기 여행으로 인해 어머니께서 직접 김치를 담그면서 이동을 하고 있다는 말씀이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다. 당시 20대 초반의 대학생이 었던 내 눈에는 그들이 정말 멋지게 느껴졌고, 먼 훗날의 가족여행을 막연히 꿈꾸게 되었다. 지금도 이따금 하정우를 떠올리게 하는 큰 아드님이 생각난다. 당시 그분은 20대 후반의 청년이셨는데 그 여행의 후기가 궁금하기 때문이다. 내가 조금만 더 적극적이었더라면 이메일 주소라도 받아서 향후 소식을 알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강의를 들으며 엉뚱한 생각을 하다.


강의를 들으면서 생각했던 것은 여러 가지였다. 그중에서도 여행 중 아이들과 가족사진 찍은 것들을 편집한 영상을 보면서 괜히 마음이 울컥했다. 영상 가운데 흐르던 '영화 같은 장면 속에 너희와 함께라 행복했어'라는 메시지 때문이었다. 그 문장을 보는데 왜인지 남편과의 일을 떠올리게 됐다. 강의를 들으면서 여행에 대한 향수와 기대감이 생겨난 것도 맞지만 전날 있었던 남편과의 어색한 기류를 자꾸 떠올린 것이 사실이다. 직접적으로 다투진 않았지만 전날 밤부터 우리 사이에는 냉랭한 기운이 돌았고, 다음 날 아침이 돼서까지 출근하는 남편을 모른 채 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늘 그렇듯 원인은 딱히 꼬집어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어찌 보면 남편 입장에서는 농담으로 건넨 말에 뾰족하게 날을 세웠던 내가 이상하게 여겨졌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런데 그 영상을 보면서 아이러니하게도 그간 복잡했던 나의 생각들이 한 문장으로 정리되었다.


‘이래라저래라 하지 말자’


남편한테든 우리 아이들한테든 내가 나서서 이래라저래라 할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이 번뜩 스쳐 지나갔다.




잔소리 뒤에 숨겨진 것은


요즘 들어 잔소리에 대해 자주 생각하게 된다. 교사라는 직업의 특성상 혹여나 내가 하는 말들이 설교처럼 느껴질까 항상 염두하는 편이다. 하지만 아무리 조심한다고 해도 받아들이는 사람의 입장은 내 마음 같지는 않은 것 같다. 좋게 시작한 이야기가 결국 서로 감정을 상하게 하며 마무리 지어진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간의 감정싸움들을 되짚어 보니 결국 상대방을 그대로 인정하지 못한 나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좋게 포장하지만 '잔소리'라는 것은 결국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남편에 대한 불만이 내재된 '폭탄'이라는 것을 불현듯 깨달은 것이다.


강의 전날 남편을 향한 날카로웠던 반응 역시 하루 종일 내 맘에 들지 않았던 남편에 대한 불만의 표출이었다. 나도 모르게 '이럴 땐 이렇게 해줬으면' 하는 나만의 기준이 세워져서 내가 계획한 그림에 맞춰지지 않으면 그만 기분이 상해 버리는 일이 많다. 그런데 그 기준이라는 것은 내가 세운 것이기 때문에 남편 입장에서 보면 황당무계한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그게 무엇인지에 대해 정확하게 꼬집어 말해 준 적도 없다.


나 혼자 기준을 세우고 나 혼자 판단하고 나 혼자 실망했다.


지금껏 남편과의 다툼을 떠올려 보니 그 가운데에 협상하지 않고 '나 혼자'의 틀에 박혀 있는 내가 있었다. '알아서' 해 주지 않는 남편에 대한 실망만을 쌓고 있던 나를 마주하게 된 것이다. 나 자신도 내 맘대로 하기가 쉽지 않은데, 상대가 원하는 바를 정확하게 꼬집어 내고 '알아서' 그 일을 해주는 사람이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니 답이 나왔다. 그래서 엉뚱하게도 강의를 들으면서 내내 생각했던 것은 '그래 그냥 내가 지자', '일단 내가 먼저 사과하자'는 것이었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모든 갈등이 시작된다. 아이들도 남편도 내 기준에서는 부족해 보이지만 그들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인데, 나는 그 사실을 모른 척 일관했다. 얼마 전에 읽었던 <내 새끼 때문에 고민입니다만,>이라는 책이 생각났다. 그 책에서 읽었던 내용이 강의와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소통'에 관한 것이었다.


동상이몽


책에서는 부모 자식 간의 소통에 대해 언급하면서 이 말을 인용한다. 비단 부모 자식 간만 해당하는 말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와 남편의 매 순간이 딱 동상이몽이라 느껴졌기 때문이다. 우리는 가족이라는 울타리 아래 아이를 낳고 많은 것을 공유하고 살아가고 있지만 정작 머릿속에는 서로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이대로 가다가는 그저 부모라는 의무감을 가진 동거인으로서만 살아가게 될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같이 노를 저어 가는 동반자


26살이라는 이른 나이에 결혼을 결심해서 벌써 초등학생 아이를 둔 친한 친구가 생각이 났다. 나는 아직 발령도 받지 못하고 공부하고 있는 상황에서 결혼을 한다고 말하는 친구가 너무 대단해 보였고, 어른처럼 느껴졌다. 그저 막연히 궁금하기만 해서 어떻게 결혼을 결심하게 됐는지를 물어본 기억이 떠올랐다.


"나랑 가치관이 맞다고 생각을 했어. 그게 결혼을 결심한 가장 큰 이유야."


그때는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사랑은 서로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이라 광고하던 유명한 CF의 카피 문구가 겹쳐졌다. 단지 말이 멋지다고만 생각했지 그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친구가 결혼을 결심했던 그 말과 카피 문구가 어우러지며 이제야 실감이 난다.


그저 '사랑'한다는 마음 하나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결혼생활은 내 예상과는 맞지 않게 흘러가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나의 반려자를 '망망대해'를 함께 노 저어 갈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고 내 노를 '대신' 저어줄 사람으로 기대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됐다. 나는 모든 것을 알아서 잘하는 사람이니까 '선장'인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배를 저어주지 않는 남편을 원망만 했다. 우리 함께 노를 저어가야 하는 동반자라는 생각은 언젠가부터 안드로메다로 날아가 있었던 것이다.


남편에 대한 불만을 나열하자면 끝이 없다. 왜 저럴까를 고민하면 답이 없다. 골이 생겼던 그 날 저녁 내내 그 생각을 했지만 결론은 나지 않았다. 남편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에 대한 불만을 이야기하라면 달변가 저리 가라 할 만큼 줄줄이 나열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남편은 나한테 '이래라저래라' 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것을 생각하니 이제 내 차례라는 생각이 든다. 어떤 기준을 세우지 말고, 그저 '있는 그대로의 남편을 인정하고 받아들이자'는 결심을 하게 된다. '이렇게 해주면 좋겠다'라는 기대를 하지 말아 봐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강의 후기를 쓸 겸 시작한 글이 엉뚱하게 흘러가게 됐다. 물론 남편과의 관계는 원만히 해결됐다. 강의가 끝나고 잠깐 들린 스타벅스에서 후다닥 글을 쓰면서 남편한테 미안하다는 메시지와 하트표가 담긴 이모티콘 하나를 전송한 것이 비결이라면 비결이다. 남편 역시 아무 말 않고 자기도 미안하다는 메시지와 함께 하트 이모티콘 하나를 날려 보내왔다. 그 단 두 개의 메시지와 이모티콘으로 우리 사이는 언제 냉랭함이 있었냐는 듯 훈풍이 불게 됐다.


그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기


이제 설교식 혹은 설득하기 위한 긴 말은 필요 없다는 것을 안다. ‘내가 왜?’ 혹은 ‘내가 뭐가 미안한데?’라는 생각은 관계를 호전시키는 데 아무런 효과가 없다는 것도 알게 됐다. 구구절절 내 마음을 설명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기나긴 설명은 '팩트'로 받아들이는 것보다는 자기를 향한 '비난'과 '잔소리'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이제야 인정한다. 남편과 아이들을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한 나의 결심을 지키는 것만이 앞으로 내가 수행해야 할 퀘스트가 될 것이다. 얼마나 많은 노력과 자기 수양이 필요할까를 생각하면 벌써부터 머리가 아파온다. 하지만 그러는 과정에서 득도는 못해도 적어도 내 마음은 편안해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 더 나아가 우리 가족 모두가 서로를 존중하며 배려하는 그야말로 이상적인 부부와 자녀 사이를 꿈꾸게 된다.


가족이 함께 하는 세계 여행을 고대하며 매일 밤 잠자리에 든다.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한다'는 말처럼 있는 있는 그대로를 받아주고 인정하다 보면 그 끝에 가서 칭찬으로 춤추고 있는 우리 남편과 아이들을 만나게 되지 않을까? 우리의 세계 여행도 싸우지 않고 즐겁게 할 수 있으리라는 어마어마한 기대를 품으며 나도 모르게 슬그머니 미소 지어 본다.


*표지 사진 : Photo by Julien Lanoy on Unsplash

*인용 사진 : Photo by Jonathan Sharp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