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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진 Mar 14. 2022

<싱커>, 미래 세계로의 기대와 우려

동조와 역진화, 그리고 희망

<싱커>의 배경은 150년 정도 후의 세상을 그리고 있다. 지구 온난화로 지구 대부분의 땅들이 물속에 잠기게 되면서 '시안'이라는 지하 세상이 만들어지고 사람들은 그곳에서 살아가게 된다. 그리고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 세계에도 계급이 존재하여 시안에 살 수 있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들이 나뉘게 된다. 그것은 책의 분위기를 더욱 우울하게 만들고, 디스토피아를 그린 많은 책들처럼 어두운 지하실의 콤콤한 냄새가 날 것 같은 음습함이 도처에 만연하다. 이런 분위기는 개인적인 취향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편이라 초반에는 왜 이 책을 읽으려고 시도했나 싶은 생각과 더불어 책 속에 그려지는 설정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아서 그냥 포기할까를 수번을 고민했다. 하지만 인내의 시간을 가지고 퍼즐 맞추듯 조각들을 맞추다 보니 어느새 눈앞에 문이 활짝 열리며 새로운 세상을 만날 수 있었고 그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정말 생경한 느낌을 가져다주었다. 그렇게 열린 문으로 만나게 된 세계는 정말이지 놀라웠다. 

 

책 읽기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재미없다고 생각하는 아이들의 대부분이 바로 이 입문의 단계에서 진입을 실패한다. 그 문만 열면 재미있는 영화나 게임처럼 새로운 세상에 빠져들 수 있는데 사실 그 문을 열기가 쉽지는 않다. 게임은 시청각을 자극하여 누구나 쉽게 빠져들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에 반에 책은 오롯이 글과 읽기를 통해서만 접근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 친구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꾸준히 영상을 업로드하기 위해 노력한다. 



'싱커'는 등장인물들이 즐겨하는 게임 '싱크'의 유저를 지칭하는 단어이다. 게임 싱크는 책 속에서 그려지는 지하 세계 중의 하나인 '신 아마존'에 살고 있는 동물들 가운데 하나에 접속(싱크=동조화)하여 그 동물과 혼연일체가 되어 그 세계를 누리는 게임이다. 물론 다른 동물로의 전환이 가능하다. (영화 <아바타>나 <레디 플레이어 원>과 같은 VR 증강현실을 생각하면 된다) 주인공 '미마'와 '부건'은 싱크 게임을 하면서 사람이 더 이상 접근할 수 없게 된 '신 아마존'을 경험하게 된다. 그곳에서 새로운 생명체인 '칸'이라는 존재를 알게 되고 그와 관련하여 '시온'을 만든 대기업 회장의 숨겨진 음모까지 알게 되면서 이를 파헤쳐나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책을 읽은지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나는 이따금 싱커 속 세상을 상상한다. 아마 메타버스가 세상에 화두가 되면서 더 그런 걸 지도 모르겠고, 그와 관련하여 수업을 하면서 아이들과 <레디 플레이어 원>을 보아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싱커> 속에서 그려지는 세상은 회색빛으로 느껴지긴 하지만 또 새로운 눈으로 보면 정말 신기하리 만큼 놀라운 기술을 경험해 볼 수 있는 세상이기도 하다. 우선 싱크 게임이 그렇고,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설명하는 것들을 마치 4D 극장에서 처럼 온몸의 기관으로 느낄 수 있는 교실 환경이라든지, 단기간에 기억력을 증폭시킬 수 있는 스마트 약, 값비싼 유전자를 몸에 넣어 내가 원하는 외형을 만드는 것들 등 (물론 돈이 있는 자들에 한정된 것들이지만 그것은 지금도 별반 다를 바가 없다) 기술의 발달이 가져올 미래를 상상하면 현재의 기술력도 놀랍긴 하지만 앞으로는 입이 떡 벌어질 일들이 더 많겠구나 싶은 생각에 기대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한편으로 일주일도 안돼 가득 차는 우리 집 분리수거 통이나, 아파트 분리수거 장에 쌓여가는 엄청난 양의 쓰레기들을 볼 때 떠올리는 <싱커>의 세상은 암울하기 그지없다. 실제로 저 쓰레기들 가운데 재활용되는 것들이 몇 프로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진심으로 지구가 물에 잠기는 날이 오지 않을까를 걱정하게 되는 것이다. 나이가 든 탓일까. '시안'과 같은 지하 세계에서 살아가야 하는 때를 상상하면 기대보다는 걱정이 크다. '시안'에서 누리는 기술보다는 진짜 하늘을 보면서 살고 싶은 마음이 더 크기 때문이다. (<싱커> 속 아이들은 진짜 하늘을 본 적이 없다. 그들이 보는 하늘은 기술이 만들어낸 그래픽이다) 기술의 발달이 불러오는 놀라운 세상도 좋긴 하지만 내가 살아온 시간 동안 보아 오고 겪어온 아날로그도 좋기 때문이다.  


오래전 영화 속에서 봤던 장면들이 실제로 구현되는 세상에 살다 보니 미래를 그린 이야기들이 그저 작가의 상상력이 대단하다로 그치지 않게 된다. 80년대에 개봉되었던 영화 <백 투 더 퓨쳐> 시리즈에서 그려졌던 대부분의 것들이 현실화되었다는 기사를 보면서 더욱 그것을 실감한다. 박경리의 <토지>를 읽으면서 가장 놀라웠던 것은 그 시절이나 지금 시절이나 사람 사는 곳은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우리는 막연히 옛날 사람들이 살던 시골의 모습을 인심 넉넉하고 순박한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 상상하지만 실제 토지 속에서 그려지는 등장인물들 간의 시기와 질투는 지금과 진배없다. 더욱 희한한 것은 그들 역시도 '사람들 인심이 예전만 못하다'는 그런 넋두리를 하면서 옛 시절을 그리워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난 싱커의 세상이 무섭기도 하고 기대되기도 하고 그렇다. 온갖 기술의 향연 속에서 우리는 옛 시절을 그리워하게 될까 아니면 그때는 이런 기술의 혜택 없이 어떻게 살았지 하면서 과거를 쳐다보지도 않게 될까. 아마 전자 후자 모두 우리 곁에 남게 될 것이다. 푸세식 화장실이 일상이던 시절을 떠올리면 저런 데서 어떻게 사나 싶을지 모르지만 또 지금보다 훨씬 미래에서 보았을 때 저런 데서 어떻게 사나 할 수 있는 현실을 지금의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 기술의 발달에 따라 생활의 편의는 앞으로도 크게 향상되겠지만 토지 속에서 처럼 우리의 삶은 계속될 것이다. 어떤 세상이 오든 인간과 인간이 함께 얼굴을 맞대면서, 접촉을 하면서 살아갈 수 있기를, 그리고 늘 그래 왔듯 거대한 자연의 품에서 살아갈 수 있기를 모순처럼 바라게 된다. 기술이 아무리 발달하더라도 인공의 자연을 겪지 않을 미래를 꿈꾸며 미래의 화장실은 어떤 모습일지 새삼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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