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유진 Feb 22. 2022

긴긴밤

언제나 너와 함께 있어

방과 후 몇몇의 아이들과 보충수업 같은 걸 하고 있다. 아이들에게 배정된 예산으로 책이나 문제집 등을 구입할 수 있는데, 나는 망설이지 않고 <긴긴밤>을 주문했다. 제21회 문학동네 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이라는 타이틀에 전혀 손색없는 책으로 아이들이 꼭 한 번은 읽었으면 하는 나의 원픽중의 하나이다.


반에는  트러블 메이커를 자청하는 아이가  명씩은 있다. 내가 보기엔 조금 안타까운 유형이다.  눈에는 빤히 보이지만 또래의 친구들이 봤을  이해할  없는 행동을 일삼는 아이. 겉으로 봤을  허우대 멀쩡하지만 아직 치만  어린아이랄까. 좋아하는 친구에게 사탕 하나를 건네는 대신 고무줄을 끊고 도망가는, 몸과 정신의 성장 속도가 차이가 나는 그런 전형적인 청개구리 유형의 아이와 함께 긴긴밤을 읽었다. 아이는 평소 이야기책보다는 학습만화에 빠져있기 때문에 과연  읽을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는데, 그런 우려와 달리 의외로 좋아하면서  읽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책이 워낙 좋아서였는지, 아니면 아이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높은 수준의 읽기 능력을 가졌던 탓인지 모르지만 아이가 책을 재밌게 읽을 수 있었던 이유는 책의 내용을 온전히 이해하면서 읽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가 하루에 읽는 분량만큼씩 그에 따른 질문을 했다. 주인공의 이름은 무엇인지, 코뿔소가 왜 코끼리들과 함께 살고 있는지, 코끼리들로 부터 배운 것은 무엇인지, 코끼리 고아원을 떠나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새롭게 만난 코뿔소 친구의 이름은 무엇인지, 어떡하다가 아기 펭귄과 길을 떠나게 되었는지... 아이는 나의 질문에 미처 생각지 못했다는 듯 멈칫하기도 했고, 때로는 곧잘 대답하기도 했다. 그런 질문들이 책에 빠져드는데 큰 몫을 했으리라 여긴다. 사실 읽으면서 무슨 내용인지 모른다면 재미가 없고, 재미가 없는 책을 붙잡고 읽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그리고 아이가 책을 다 읽은 날, 마지막 질문을 했다.


"제목에서 나오는 긴긴밤은 무슨 뜻이야?"


예상했던 것과 다름없이 아이는 당황했고 우물쭈물 무어라 답하긴 했지만 내가 기대한 답을 말하지는 못했다. 나의 유튜브 채널에 업로드된 긴긴밤 영상에도 '긴긴밤'이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다는 댓글이 달린 적이 있다.


나는 책을 읽는 내내 제목을 정말 잘 지었다고 생각하며 ‘긴긴밤’의 의미를 책 전반에 걸쳐 너무도 잘 풀어놓았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책을 읽는 내내 물먹은 종이 같은 느낌이 계속 자리했고, 책을 다 읽고 나서도 이 책이 전하는 메시지에 오랜 여운이 남았다. 하지만 내 생각만큼 아이들이 이해하기는 쉽지 않나 보다.


아이들이 문학책을 꺼려하는 데는 이런 탓이 크다. 책을 읽지만 그 내용을 온전히 이해하기도 어렵고, 주제를 찾아내기도 쉽지 않다. 왜냐하면 작가의 의도는 대 놓고 말하지 않고 글 전반에 걸쳐 드러나기 때문이다. 독자가 직접 찾아내야 하기에 읽는 이의 독해 능력에 따라서 책을 이해하는 깊이는 천차만별이 된다.


"긴긴밤은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견뎌내야 하는 모든 고통, 아픔, 슬픈 시간들을 말해. 노든(흰 코뿔소)이 가족을 잃고, 친구를 잃으면서 버텨내야 했던 그 시간들을 기억하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힘든 시간들을 버텨낼 수 있었던 데에는 함께 하는 누군가가 있었기 때문이야. 노든을 길러준 코끼리들, 동물원에서 만난 앙가부, 마지막 여정을 함께한 아기 펭귄. 혼자서 버티기 힘든 시간에 함께 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어야 해. 노든과 아기 펭귄처럼, 치쿠와 윔보처럼 말이야. OO이도 그런 친구를 꼭 만났으면 좋겠구나.”


아이가 내 말을 얼마나 이해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여느 때와 달리 순순히 알겠다고 대답했다. 책이 재미있었냐는 물음에도 선뜻 재밌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 말만으로도 오랜만에 참 뿌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번을 기회로 앞으로도 꾸준히 책을 접하면 좋겠지만 나의 욕심이라는 것을 안다. 그저 아이에게 좋은 경험이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여긴다.


이 책의 주제처럼 우리 아이들이 앞으로 맞이하게 될 많은 아픔과 시련들 가운데 함께 그 시간들을 버텨줄 수 있는 누군가가 있기를 바란다. 혼자서는 힘들 일들이 단지 함께 있어준다는 이유 만으로 위로가 되었던 많은 순간들을 알기에 그들 앞에 놓인 긴긴밤을 부디 혼자서 버텨내는 일이 없기를 기도해본다.


https://youtu.be/2RNVZHHi6ZI




이전 03화 행운이 너에게 다가오는 중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