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우울감에 사로잡히다.

< 4장 > 자기 연민은 이제 그만

by 이유진

“그렇지 우울감에 사로잡힐 수 있어. 나도 그랬어. 애 낳고 한동안 우울감을 느꼈던 것 같아.”


친구는 우울감이라고 표현했다. 우울증이 아니라 우울감이라고 표현했는데, 그 말이 뭔지 되물었다.


“우울증은 병이지. 치료받아야 하는 거. 우울증에 걸리면 안 돼. 하지만 우울감은 감정이고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거야. 나도 그랬고, 너도 지금 우울한 거야. 우울증이 아니라고.”


친구의 그 말에 정말 큰 충격을 받았다. 그녀는 내 기준에서 오리지널 서울 사람이었는데, ‘서울 사람은 깍쟁이’라는 나의 편견을 무너트려 준, 이래 저래 배울 점이 많은 친구이다. 일찍 결혼을 해서 벌써 학부모가 되었는데, 또래에 비해 일찍 결혼 한 만큼 아이도 일찍 낳게 돼서 또래 친구들과는 자연스럽게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았던 때가 있던 시기에 우울했음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 나는 가끔 친구네 놀러 가긴 했지만 당시에는 결혼 전이었고 당연히 육아를 겪어보지 않았을 시기였기 때문에 친구의 상황을 진심으로 공감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친구는 웃으며 이야기했지만 내가 겪어 보고 나니 당시에 참 많이 힘들었겠다 싶어 마음이 아팠다.


작년 여름, 그러니까 2018년 여름은 유난히도 더웠고, 그 해 여름에 나는 엄청난 우울감에 시달렸다. 자칫 우울증으로 번질 수도 있을 만큼 심각했던 것 같다. 대구에서 나고 자란 나는 여름 생이라 더위에 강한 사람이었는데, 그 해 여름엔 왜 그리도 짜증이 났을까. 안타깝게도 나의 우울감으로 인해 가장 많은 피해를 본 사람은 바로 우리 첫째 아이였다.


“박시완!! 밥 안 먹을 거예요? 계속 그렇게 밥 빨고 있을 거면 먹지 마!”

“으앙!!!”


결국 아이는 눈물, 콧물이 범벅이 돼서 울어대고, 입 안에 물고 있던 반찬과 뒤섞인 밥알들이 줄줄 튀어나왔다. 원래도 입이 짧았던 아이였지만 정말 지독스럽게 안 먹던 시기였다. 입에 넣기는 하지만 씹지를 않고 하염없이 물고 있거나 빨고 있으니 밥 한 끼 먹는데 3-40분은 기본이었고, 때론 1시간이 넘어갈 때도 있었다. (입에는 넣으니 편식은 아니라 생각했지만 그게 바로 편식이었던 것을 나중에야 깨달았다.) 그런 아이에게 소리치고, 협박하고 그야말로 전쟁터가 따로 없었는데, 얼추 2주 정도 그 시간이 지속됐던 것 같다.


당시 친정에 있을 때였는데, 더위 때문인지 아이 때문인지 나는 그야말로 더 이상 짜증을 낼 수 없겠다 싶을 정도로 까칠하고 예민했다. 친정 엄마는 그런 나를 보면서 아무 말씀도 않으셨고 그저 울고 있는 아이를 달래려 애쓰셨다. 내 인생에서 가장 후회가 되는 순간이 있다면 바로 그때이다. 한 번씩 떠올리면 다시 되돌리고 싶다 생각할 만큼 첫째 아이한테 미안했던 날들. 가장 연약한 존재인 자신의 아이를 감정 쓰레기로 사용한다는 것을 바로 내가 하고 있었다. 몰랐다고 하기에는 비겁하다. 나는 아마 인지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밥을 안 먹는 아이를 보면서 그것을 핑계로 내 안에 잠재된 분노를 아이에게 쏟아냈던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비겁하고 잔인한 행동이었다.


당연히 남편을 원망했다. 직장이 멀어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기 때문에 독박 육아라는 것을 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남편은 남편대로 자기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하고자 애썼지만 당시에는 그 어떤 것도 내 기준에 부합하지 못했고, 모든 원망은 화살이 되어 남편에게 꽂힐 수밖에 없었다. 주말만을 기다리며 살았지만 정작 주말에 함께 있다 보면 결국에는 싸움으로 이어지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도무지 무엇으로도 해소가 되지 않았다. 엄마한테는 차마 걱정이 될까 싶어 말할 수가 없었다. 가뜩이나 서울로 시집가 버린 딸에 대한 서운함을 갖고 계신 터라 거기에 걱정까지 끼쳐드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다고 친구를 만나서 남편 욕을 하는 것도 의미가 없었다. 특히 친한 친구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내 얼굴에 침 뱉는 것 마냥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어서 내가 속앓이 하는 것을 다 쏟아 낼 수가 없었다.


당시 내가 그토록 매사에 화가 났던 이유는 모든 것을 내가 다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아이를 낳고 기르고 그 과정에서 내 인생은 송두리째 바뀌었는데, 남편은 별로 그런 것 같아 보이지 않는 것이 굉장히 큰 억울함으로 다가왔다. 불어난 몸부터 시작해 일거수일투족 떨어지지 않는 아이들. 특히 아이들이 갓난쟁이 시절에는 기본적인 생리욕구를 해결하는 것조차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현실들이 괴로웠고, 어쩌다 한 번씩 아이를 두고 외출할 때에도 수유로 인해 시간의 제한이 있었다. 그에 비해 남편은 친구들도 만나고 회사 사람들과도 종종 술자리도 가지며, 본인이 좋아하는 휴대폰 게임도 하는 등 나에 비해 모든 것이 자유로워 보였고 전혀 달라진 것이 없어 보였다. 게다가 휴직의 시간이 끝나고 복직을 하게 됐을 때, 그때 가서는 내가 일도 하고 아이도 키워야 한다고 생각하니 정말 자다가도 화가 나서 벌떡 일어날 것만 같았다. 말 그대로 화가 치밀어 오르는 순간들이었다. 가슴이 답답했고, 내가 왜 결혼을 했는가에 대한 생각까지도 이어졌다. 궁극에는 뭐하러 애를 둘이나 낳아서 이 고생을 하고 있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위험한 생각이었다.



그 해 여름, 지독한 우울감에 시달리면서 그래도 내가 무너지지 않았던 이유를 생각해보면, 나는 우울증에 걸리는 내 모습을 용납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우울증'이라는 병에 걸린 내 모습은 말이 안 되는 것이었다. 나의 자존심은 희한할 때 빛을 발휘했다. 본능적으로 거기로는 가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무너지는 꼴은 도저히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정신을 차렸던 것 같다. 다행히 날씨가 선선해지면서 그 시간도 서서히 무뎌져 갔다. 그리고 잠시 보지 않았던 드라마를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고, 내가 이렇게 우울했던 이유를 드라마를 보지 않아서였다고 결론지었다.


드라마를 보지 않아서 우울증에 걸리지 않았다니! 그런 결론이 어디 있을까 싶지만 그때는 그렇다고 여겼다. 그럴 만도 한 게 한참 우울감에 시달릴 그때가 드라마를 끊었던 시기였다. 문제는 엉뚱한 결론으로 인해 해결책이 올바르지 못했다는 것인데, 당시에는 그것이 최선이었다. 나는 다시 드라마를 챙겨 보기 시작했고, 주사 한 대 맞은 것처럼 효과는 즉시 나타났다. 그 덕분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아이에게 짜증내고 예민하게 구는 일들은 많이 사라졌다. 아이와 밥으로 씨름하는 일도 많이 줄어들었고, 조금은 안정을 되찾았던 것 같다. 하지만 남편과의 싸움은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속을 지나는 것처럼 캄캄하기만 했다. 제대로 된 해결책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그간 첫째 아이에게 정말 큰 잘못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그렇게 지독한 여름을 보내고 나는 우울감이라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다고도 할 수 있는 터널에서 벗어났다.



다행히 지금은 남편과의 관계가 정말 좋아졌다. 지난해 연말까지도 이렇게 계속 살 수 있는 건가 싶을 만큼 다툼이 잦았는데, 지금은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 가장 큰 원인은 내가 많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모든 것을 남편 탓으로만 돌렸는데 나에게도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을 인정하기가 참으로 힘들었던 것 같다. 지난 시절의 나는 비록 1등 하는 삶은 아니었지만 항상 칭찬받는 삶을 받으며 살아왔다. 그렇게 남들 눈엔 그저 아무 어려움 없이 자란 모범생으로 보였던 나는 내가 잘못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어려웠다. 하지만 지난 얼마의 시간 동안 내가 누군지를 알게 되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나는 조금씩 내 모습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내 생각이 전부가 아님을, 내가 항상 옳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이면서 내가 가야 할 길 위에 오롯이 서게 됐다는 느낌이 든다. 누군가 '너 같은 애가 언제 방황했어?'라고 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자신의 삶에 방황의 시간이 있고, 고통의 시간이 있다. 나는 길게 방황했고, 긴 시간 누구보다 힘들었다.


길고 긴 시간을 돌고 돌아 나는 드디어 나의 길 위에 진입했다. 길을 찾는 것이 참으로 어려웠지만 결국에 나는 찾고야 말았다. 물론 앞으로 새로운 길 위에 접어들게 될지도 모르고 다시 나의 길에서 이탈하게 될지도 모른다. 어쨌든 지금 나는 내 길 위에서 오롯이 혼자 서 있을 수 있게 됐다. 그것에 참으로 감사하다.




*표지 사진 : Photo by Vidar Nordli-Mathisen on Unsplash




<이전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