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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im Jung Nov 01. 2021

공생에 관한 정의

플랫폼엘 《UNPARASITE》

전시 기간: 21.05.18-21.08.29

관람일: 21.05.19



내가 생각하는 공생은 서로에게 피해 주지 않는 것이다. 예전에 지인이 앞으로 죽을 때까지 성장을 위해 노력하면서 살 생각을 하니 너무 힘들다고 고민을 털어놓은 적이 있는데, 그때 '왜 꼭 성장해야 해? 남한테 피해만 안 주고 살면 되지.'라고 별생각 없이 말했었다. 그런데 별로 진지하지 않았던 내 말에 비해 친구는 굉장히 큰 인상을 받은 듯 보였고, 그래서인지 그 말이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아 있다. 플랫폼엘의 《UNPARASITE》는 코로나 시대의 '공생'에 관한 전시인데, 공생에 대한 관객의 정의 중 하나로 내 문장이 들어가게 되어서 전시장에 문구가 잘 붙어있나 확인하러 다녀왔다.

서로 피해 주지 않는 것이 내가 생각한 공생의 정의


전시를 본지는 몇 주 되었는데 이제야 글을 남기는 건 전시 제목이 아직까지도 명확히 받아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봉준호 감독님의 PARASITE에서 영감을 받아 제목을 UNPARASITE라고 지었다는데, 의미적으로 반의어로 쓰이는 기생과 공생을 각각 PARASITE와 UNPARASITE에 대입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 점에서 기획자는 공생의 의미를 단순히 '공생'이 아닌 '기생하지 않는'까지 포함하는 것 같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영화 제목을 전시까지 끌고 온 것 치고는 영화와 전시의 관련성이 적어서 둘의 관계에 관해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게 된다는 점이다. 만약 전시 서문에서 영화의 어떤 부분으로부터 영감을 받았는지 더 구체적으로 설명했다면 더 친절하게 느껴졌을 것 같다.

     제목에서는 아쉬운 부분이 있었지만 공간 및 그래픽 디자인은 재미있는 요소들이 많았다. 작품들은 각각 저마다의 공생에 관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4군데의 공간 안에서 기-승-전-결의 구조로 배치되어 있었다.

     기: '공생'이라는 주제 자체에 관한 작품들

     승: 공생 중에서도 팬데믹 상황에 관한 작품들

     전: 팬데믹 상황에 관한 우울한 감정이 담긴 작품들

     결: 판데믹에 대한 수치화된 분석을 활용한 작품들

기-승-전과 다르게 결은 작품의 형식 자체가 주제이기 때문에 형식적인 이유로 분류했다. 작품들이 전시 주제의 사전적 정의에서 시작해 개인적인 해석으로 이어지는 연결이 좋았다. 그리고 QR코드를 활용해 전시장의 경험을 관객의 주거 공간까지 확장해서 공간적으로도 전시 주제인 '공생'을 생각해보도록 하는 구성이었다.

     또한 전시 그래픽은 다양한 문장부호의 조합으로 구성했는데, 이는 '젊은 작가들'이 '팬데믹 상황'에 대한 생각을 풀어낸 전시라는 점을 모두 잘 살린 컨셉이라고 생각한다. 작품별 캡션은 문장부호를 조합해 작품 분위기와 맞는 표정을 띠고 있어 전시장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다양한 표정을 가진 캡션들


내가 이번 전시에 크게 공감하지 못했던 건 제목과 주제의 연관성 때문이다. 하지만 작품 자체의 구성이나 전시 디자인을 본다면 《UNPARASITE》는 여전히 좋은 전시이다. 플랫폼엘은 언제나 실험적인 전시를 시도하기 때문에, 이번 전시처럼 대중성 있는 컨텐츠를 전시로 가져온 것도 그 시도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전시 풍경 일부





전시 공식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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