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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im Jung Feb 10. 2023

아카이브가 필요한 전시

현대카드스토리지 《DRIFT: In Sync with the Earth》

전시 기간: 2022.12.08~2023.04.16

관람일: 2023.01.15






네덜란드의 아티스트 듀오 '드리프트'는 자연의 규칙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작품을 만든다. 관객은 자연의 규칙을 담은 작품을 보며 아름다움을 느끼고, 이 감정을 통해 우리는 인간은 여전히 자연에 속해 있으며 이 관계를 잊어서는 안 됨을 깨닫게 된다. 전시는 5점의 설치 작품과 아카이브를 통해 이러한 주제를 전달한다. 자세한 감상에 앞서, 드리프트의 작품과 그 의미는 무척 공감되었지만 그것을 자세히 보여주는 아카이브는 조금 아쉬웠다. 우선 전시 동선대로 5점의 작품을 먼저 살펴보고 마지막에 아카이브에 관해 언급하겠다.



첫 번째 작품 〈Materialism〉은 "무언가 갖고자 한다면, 무언가 이용하고자 한다면 그것을 알아야 한다."는 메시지가 담긴 연작의 작품이다. 벽을 둘러싼 액자들에는 빅맥, 스타벅스, 신라면, 바비, 노키아 휴대폰 등 과거부터 현재까지 사람들이 가장 일상적으로 사용해온 물건이 전시되어 있다. 그런데 이 물건들은 우리가 평소에 알고 있던 모습이 아니라, 물건을 이루고 있는 각기 다른 물질들로 분해되어 있다. 한국인에게 가장 친숙한 신라면을 예로 들면 수프, 면, 지방, 포장지 등 라면을 이루고 있는 물질들이 모두 분리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전시장 중앙에는 〈Materialism〉을 잇는 두 번째 연작 〈The Artist she/her and The Artist he/him〉이 전시되어 있는데, 인간의 몸을 구성 요소들로 분리해 전시한 것이다.

〈Materialism〉
〈The Artist she/her and The Artist he/him〉

     드리프트 듀오는 물건을 분해해 낯선 큐브 형태로 재구축함으로써 그 물건의 본질을 알게 된다. 분해의 과정을 통해 물건을 파악하는 이들의 작품을 통해, 우리는 우리가 누리는 환경에 대해 얼마나 무관심했는지, 그 무관심은 심지어 우리의 몸에도 해당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세 번째 작품 〈Shylight〉는 꽃이 낮에는 피고 밤에는 지는 수면운동을 본떠 만든 작품이다. 드리프트는 주변 환경에 적응하는 꽃의 모습이 인간의 모습과도 같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천장에 매달린 천으로 된 3송이의 꽃은 각자 다른 속도와 주기로 피고 지기를 반복한다. 꽃잎을 표현한 풍성한 천은 꽃을 하나의 무용수처럼 보이게 하는데, 이 모습은 마치 사람들이 각자에게 맞는 속도와 주기로 자기만의 삶을 꾸려 나가는 모습이 아름답다 말해주는 것 같다.

〈Shylight〉


네 번째 작품 〈Amplitude〉는 수백개의 유리관이 모여 공중을 헤엄치는 듯한 광경을 만들어내는 작품이다. 금속과 유리로 된 관은 건드리면 깨질듯한 섬세하고 연약한 겉모습을 지녔는데, 그 골격에 개의치 않고 다른 유리관들과 조화를 이루며 거대한 생명의 움직임을 보여준다. 몸의 세포들이 모여 기능하는 것처럼, 개개인이 모여 사회를 이루어 살아가는 것처럼 하나는 연약하지만 전체는 강하다는 의미가 보인다.

〈Amplitude〉


다섯번째 작품 〈Fragile Future〉는 민들레 조명의 군집으로 이루어진 작품이다. 드리프트 듀오는 민들레 홀씨가 맺힐 시기쯤 이것들을 수확한 다음, 홀씨를 하나하나 떼어내 LED 전구에 붙였다. 기술 분야에 무지한 내 눈으로 보았을 때, 정교한 기술 메커니즘이 필요한 앞의 두 작품과 다르게 이 작품은 비교적 간단한 기술로 형태를 구현한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드리프트의 대표작 중 하나로 손꼽히는 것은, 복잡한 기술에 맞먹는 고도의 수공예적 과정이 사람들에게 인정받았다는 증거일 것이다.

〈Fragile Future〉


5점의 설치 작품을 보고 나면, 마지막에는 드리프트의 작업 과정이 담긴 아카이브인 Making of DRIFT를 볼 수 있다. 앞선 작품들 하나하나가 모두 높은 완성도와 의미를 가지고 있어 그 과정이 무척 궁금했는데, 궁금증을 해소할 수는 있었지만 그것을 보여주는 방식은 아쉬웠다. 전시장에 들어가기 전 작품보다도 처음 만나게 되는 인터뷰 영상은 "무언가 갖고자 한다면, 무언가 이용하고자 한다면 그것을 알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영상이 놓인 위치로 보았을 때, 이 주제는 전시 전체를 관통하는 드리프트 듀오의 메시지다.

리셉션 맞은편. 전시장 입구에 있는 인터뷰 영상

    무언가를 누리기 위해서는 그것을 알아야 한다면, 드리프트 듀오의 작품을 이해하려면 이들의 의도와 과정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일반적인 작가 개인전에서는 아카이브가 작가의 작품들을 뒷받침하는 역할을 하는 반면, 이번 전시에서는 아카이브 역시 작품과 동등한 위계로 보여주는 것이 드리프트를 제대로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이동 통로의 모서리 부분에 인터뷰 영상이 있다거나, 몇 분짜리 영상 앞에 감상용 의자가 없는 것처럼 공간 디자인과 사용자 경험 측면의 완성도가 만족스럽지 않았다. 관심 있는 관객이라면 불편함을 감수하고 관람하겠지만, 그 전에 누구나 한눈에 봐도 아카이브 역시 중요한 작품 중 하나라는 사실이 겉으로 보이는 것이 관객에게 책임을 지우지 않는 태도일 것이다.

Making of DRIFT

     아무래도 공간이 크지 않다 보니 작품에 할애하고 남은 공간을 아카이브로 활용했을 것 같은데, 좁은 공간 틈에 현대카드에서 출시한 '아워 체어' 제품도 전시하느라 공간이 더 부족했던 것 같다. 차라리 아워 체어가 놓인 공간까지 아카이브로 사용하고, 영상을 앉아 관람할 의자를 아워 체어로 대체했다면 좋았을 것 같다. 전시 공간이 넓어져 아카이브를 더 신경 써서 배치할 수 있고, 관객들이 편하게 전시를 감상하면서 현대카드의 제품을 사용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 공간에 대한 약간의 아쉬움이 있었지만, 앞선 5점의 작품들과 아카이브의 흥미로운 내용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전시였다. 또한, 개인적으로 전시의 부록 같은 느낌이 아닌 작품과 동등한 가치를 지닌 아카이브의 좋은 사례(의미적으로)를 만나게 되어 기뻤다. 개인을 기록하는 것이 일상이 되면서 아카이브라는 용어 자체도 대중화되고, 이에 따라 전시에서도 마지막 동선에 아카이브를 꼭 넣는 경향이 생겼다고 생각한다. 이런 경향으로 인해 아카이브가 보여지는 방식에 대한 고민이 덜 된 채로 그저 '없으면 아쉬우니까' 배치한 것 같은 모습들을 여러 번 보았는데, 이번 전시처럼 진정으로 아카이브가 보여져야 하는 사례를 만나 기쁘다. 이런 좋은 사례들을 더 만나서 아카이브가 필요한, 필요하지 않은 전시에 대한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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