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접하는 예술 작품들이 신기하게도 내 상황과 딱 맞닿은 것들이 많다. 최근 트레바리 독서모임에서는 진정한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여정을 담은 『데미안』을 읽었는데, 책을 다 읽고 다음날 보러 간 《최우람-작은 방주》 역시 자신만의 항해, 더 나아가 인류 전체의 항해라는 주제를 담고 있었다. 최근 진로 방향에 대해 고민하고 있던 터라 이런 주제들이 무척 공감되었다.
전시는 작품마다 역할을 부여하고 특정 시간마다 작품을 작동시키는 공연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를 통해 작품과 작품, 관객과 작품, 관객과 관객 사이를 잠시 동안이나마 하나의 공동체로 이어준다. 관객들은 전시를 보면서 자기만의 항로를 찾게 되고, 그 과정을 함께 하는 일시적인 공동체 속에서 서로가 서로의 등대가 되어줄 수 있음을 알게 된다.
전시는 "1-2-3-4-2'-1' "의 두 겹의 수미상관 구조로 되어 있다. 먼저 그룹 1은 전시실 바깥에 있는 〈원탁〉과 〈검은 새〉로 구성된다. 머리 없는 사람들이 하나의 머리를 차지하기 위해 투쟁하고 있고, 그 모습을 저 높이서 바라보는 검은 새가 있다. 모두가 하나의 목표만을 두고 경쟁하는우리의 모습과 비슷하다.
그룹 1 〈원탁〉, 〈검은 새〉
그룹 2는 〈하나〉라는 꽃 형상의 작품으로, 의료진들의 방호복 소재인 타이벡으로 만들어졌다. 거대한 꽃은현재 인류가 가장 직접적으로 마주한 코로나19라는 위기, 그리고 그 위기를 이겨내기 위한 항해에대한 헌화다.
그룹 2 〈하나〉
그룹 3은 전시의 가장 핵심이 되는 공연이다. 8개 작품이 한 공간에 모여 다양한 항로의 모습을 표현한다. 전시장 한가운데 놓인 〈작은 방주〉는 수십 개의 날개가 방주를 움직이는 '노'이자 '몸체'다. 이는 각자의 길을 항해하는 개개인이 모여 인류의 미래가바뀔 수 있다는 전시의 전반적인 주제를 함축한다.
선체 위에는 바다를 비추는 〈등대〉가 있고, 항해의 방향을 결정하는 〈두 선장〉은 서로 반대 방향을 가리키고 있어 인류의 여정이 쉽지 않을 것임을 암시한다.
그룹 3 〈작은 방주〉, 〈등대〉, 〈두 선장〉
특히 배는 앞뒤가 같은 형태로 만들어져 있어 어느 쪽이 뱃머리인지 예측하기 쉽지 않고, 이것 역시 항해의 방향에 시련을 주는 요소 중 하나이지만, 주변의 다른 작품들 간의 관계를 통해 생각해 볼 가능성이 있다. 전시실에 들어서면 입구와 가장 가까이 있는 두 작품이 〈무한 공간〉이다. 무한 거울을 활용한 이 작품은 얇은 철제 판 내부를 들여다보면 그 안에 끝없는 공간이 펼쳐지고 있다. 그리고 전시실 맨 안쪽에는 〈출구〉가 있다. 이 작품은 문이 열리면 그 안에 또 다른 문이 있는 식의 영상이 무한대로 반복되는 작품이다. 무한 공간을 통해 이 여정에 발을 들이고, 여정에 참여한 수많은 사람들이 노를 저어 하나의 출구를 향한다. 그 출구는 빠져나온 듯싶으면 또 다른 문이 있어 시련이 끝없음을 보여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항해를 이어간다.
(좌, 중) 〈무한 공간〉, (우) 〈출구〉
방주 주변에 있는 〈닻〉과 뱃머리 장식인 〈천사〉는 방주의 일부이면서도 물리적으로 거리를 두어 긴 여정 속에서 가질 수 있는 다양한 역할들을 보여준다.
〈닻〉
〈천사〉
그룹 4에서는 우리가 그룹 3에서 보았던 항해를 해야 하는 근본적인 이유를 탐색한다. 작품의 설계 도면으로 시작으로 항해의 근본을 탐색하기 시작하며, 각각 수레바퀴와 꿈을 의미하는 한 쌍의 작품에 도달하게 된다. 수레바퀴는 종교에서 운명을 뜻하는 상징으로, 두 작품이 맞물리며 열리고 닫히는 모습은 우리의 운명은 우리가 꿈꾸는 대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희망을 준다.
작품 설계도
(좌) 수레바퀴를 뜻하는 〈샤크라 램프〉, (우) 꿈을 엿보는 존재인 〈알라 아우레우스 나티비타스〉
전시실 위쪽에 걸려 있는 〈사인〉은 사람인지 신인지, 아니면 우주인인지 헷갈리는데, 우리가 가지는 꿈의 방향에 따라 인류가 세상을 구하는 신이 될지 또는 인간 그대로의 상태로 남을지에 따라 달라질 우리의 미래를 담고 있다. 방향을 지시하는 픽토그램의 형식을 미래를 제시하는 표지판으로 사용했다.
〈사인〉
항해의 목적을 깨달은 사람들은 그룹 2'에서 그룹 2의 헌화인 〈하나〉와 쌍을 이루는 작품 〈빨강〉을 발견하게 된다. 항해의 이유를 찾은 사람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던지는 강렬한 작품이다.
그룹 2' 〈빨강〉
마지막으로 전시의 마지막 공간인 그룹 1'은 그룹 1과 마찬가지로 전시장 바깥에 위치해 있다. 관객은 빛나는 별과 같은 두 작품 사이를 거닐면서 자신만의 우주를 항해하기 시작하며 전시를 마치게 된다.
그룹 1' 〈URC-1〉, 〈URC-2〉
전시를 보는 동안 관객들은 각자만의 길에 대해 생각해 봄과 동시에 함께 관람하는 타인과의 소속감을 갖게 된다. 이는 관객들이 같은 장소에 있을 뿐만 아니라 특정 시간을 함께 기다리며 생기는 유대감이며, 이런 점에서 이번 전시는 작품의 형식이 주제와 잘 맞아떨어지고 있었다.
『데미안』의 어느 페이지에는 물고기가 하늘을 비행한다는 표현이 나온다. 바다를 헤엄치는 것이 아닌 하늘을 나는 물고기. 〈작은 방주〉 역시 이름만 보면 바다를 헤엄치는 작품이지만 작품이 작동하는 공연을 보면 꼭 공중을 나는 것처럼 보인다. 거의 150년의 시간 차를 가진 작품이지만, 비슷한 소재로 비슷한 주제를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자신만의 길을 찾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인류의 공통적인 난제인가 보다. 데미안이 내게 나만의 길을 찾는 첫 발을 내딛게 해 준 책인 것처럼, 다른 분들께는 이번 전시 《작은 방주》가 그런 존재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