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볼프강 폰 괴테 『젊은 베르터의 고뇌』 독후감
베르터의 죽음은 사랑을 이루지 못한 한 청년의 죽음이기도 하지만 이성의 규율로부터 소외당한 비이성의 죽음이기도 하다. 베르터는 작은 것에서도 충만하고 다양한 감정을 느끼고 그것들을 소중히 여기는 청년이다. 소박한 자연으로부터 감동받으며 규칙보다는 자연에 충실할 것을 다짐하고, 농가 사람들의 목가적인 풍경으로부터 창작의 영감을 얻으며, 자애롭고 아름다운 로테를 열렬히 사랑한다. 동시에 언어로 표현되기 힘든 이 가치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못마땅하게 여긴다. 어린아이를 가르치려 드는 어른들의 태도를 지적하며 어른들의 기준으로 아이들의 세계를 재단하는 것에 반대하고, 이성적이고 윤리적인 알베르트를 비판하기도 한다.
하지만 베르터는 이성과 규칙을 비판하면서도 이것들을 완전히 배척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성과 규칙의 보호 아래에서 안전하게 자신의 감정을 보살핀다. 베르터가 본인 내키는 대로 일을 얻고 관둘 수 있는 것은 그렇게 하더라도 사회적으로 명망 있는 공작과 백작의 배려로 일상을 영위할 수 있고, 자신이 일을 하지 않아도 어머니에게 재정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베르터 스스로도 그 사실을 알고 있다. 그는 모든 이들이 공평할 수 없고 자신이 어느 정도 신분의 이득을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자신을 방랑자라 칭하면서도 방랑과 정주에 대해 고찰하는 과정에서 결국 인간은 정주함으로써 행복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세상은 양자택일로 이루어지지 않고 늘 예외가 있기 마련이라고 말한 것처럼 베르터는 규율의 울타리 안에서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감정들을 지킨다.
그러나 빌헬름의 주선으로 공사 밑에서 일하는 나날을 보내며 껍데기 놀음에만 관심 갖는 사람들에게 질리고, 백작이 초대한 만찬에서 운 나쁘게 상류층 사람들에게 무시당하며 자신을 보호해 주던 규율들이 족쇄로 느껴진다. 로테와의 관계도 점점 나빠져 결국 로테가 베르터 때문에 불안감을 느끼는 지경까지 이른다. 베르터가 로테와 함께 어느 목사의 가족들과 나눴던 대화에서, 베르터는 스스로와 주변인들에게 피해를 끼치는 것은 악덕이라며 스스로를 다스릴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자신에게 맞지 않는 요지경 놀이의 꼭두각시가 되고, 자신의 존재를 그대로 인정받을 수 있는 로테에게 다가가지 못하는 베르터는 스스로와 주변인들에게 악덕을 행할 수밖에 없어 괴롭다.
처음부터 이성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인간의 다양한 면모들에 대해 회의적이었던 알베르트처럼, 베르터가 이성이나 비이성 어느 한 속성에 더 온전히 속해 있었다면 그는 자신이 갖지 않은 속성을 탓하며 스스로를 덜 책망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베르터는 이성과 비이성 각각이 가진 가치를 부정하지 않았고, 사회적으로 이성의 힘이 강하게 작용하는 와중에 비이성의 가치를 옹호하려다 좌절하고 만다. 자신과 비슷한 사연을 가진 머슴이 사회적으로나 인간적으로 처벌받는 모습을 보고 자신의 존재가 부정당했다는 듯 ‘우리’는 구제받을 길이 없다는 메모를 남긴다.
무엇을 규정한다는 것은 그 기준에 맞지 않는 것은 소외된다는 의미다. 인간에게 빛을 열어준 이성의 힘으로 인해 명확하게 규정할 수 없는 비이성적인 가치들은 그림자 속에 파묻혀 보이지 않게 되었다. 결국 베르터는 신분과 제도라는 이성의 힘으로부터 배척당하고, 그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비이성의 세계에서 그 경계를 넘어서고자 했다. 자살한 베르터의 가슴에 담겨있던 격정적인 감정들은 사회적 규율이 우세하며 그에 반하는 존재들을 배척하는 과정에서 잘려나간 수많은 가치들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