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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im Jung Aug 10. 2024

나의 선택으로 채워가는 오늘들

영화 [퍼펙트 데이즈] 리뷰

영화 [퍼펙트 데이즈]를 봤다. 도쿄의 공공화장실 청소원 ‘히라야마’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영화는 매일의 일상을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의 소중함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큰 사건은 없지만 무척 감동적이었다.

히라야마는 매일 같은 일상을 반복한다. 아침에 이웃 할머니가 집앞을 빗질하는 소리에 깨어나 양치와 세수를 하고, 수염을 다듬고, 식물들에게 물을 주고, 작업복을 입고 나와 집앞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고, 차에 올라타 카세트 테이프로 출근곡을 선곡한 후 차를 운전해 일터인 화장실로 간다. 청소를 하는 동안 사람들에게 무시당하는 일도 곧잘 일어나지만 그는 청소도구를 직접 만들어가고 거울로 보이지 않는 면까지 구석구석 비춰가며 충실하게 일한다. 일을 마치고 나면 편의점에서 우유와 샌드위치를 사서 산사에 올라가 털썩 앉는다. 그리고 나무를 바라보며 카메라로 사진을 찍은 후 점심을 먹는다. 식사 후에는 집으로 돌아가 짐을 놓고, 자전거를 타고 공중목욕탕으로 가서 씻고 나와 지하철역에 있는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귀가한다. 저녁에는 문고본을 읽으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주말에도 반복되는 루틴이 있는데, 일어나 다다미를 청소하고, 작업복을 빨래방에 맡긴 뒤 빨래가 끝날 때까지 근처에 있는 서점에서 새로운 문고본을 사고, 빨래방 맞은편에 있는 단골 선술집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빨래를 찾아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물 흐르듯 막힘없이 반복되는 일상이 아름다워 기억이 흐려지기 전에 그의 일상들을 떠올려 보았다.

같은듯 다른 매일의 삶을 살아가면서 히라야마는 종종 나무 사이로 비치는 햇빛을 미소 지으며 바라본다. 이런 순간들이 영화에서 꽤 자주 나왔는데, 어떤 장면에서는 햇빛이 길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비추고, 그 빛이 화장실 벽에 다시 비춰져 화장실 벽이 사람들의 옷 색깔로 알록달록 물드는 순간이 있었다. 막연히 나무를 구성하는 나뭇잎들과 세계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관계가 비슷하고, 나뭇잎 하나하나의 그림자가 아름답듯 사람들 한 명 한 명의 존재도 소중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영화의 마지막에 ‘木漏れ日[코모레비]’라는 단어를 소개하는 글을 보며 생각에 대한 확신이 생겼다.

코모레비는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빛’이라는 일본어라고 한다. 인상적이었던 점은 ‘코모레비는 지금 이 순간에만 존재한다’는 감독의 개인적인 생각이었다. 히라야마의 일상처럼, 그 순간에만 존재하는 순간에 충실한 삶은 무척 아름답다. 영화를 보고 나서 이동진의 파이아키아 채널에 나온 야쿠쇼 코지 배우의 인터뷰를 봤는데, 영화의 마지막 장면의 각본에는 ‘내가 선택한 일을 하기 위해 일터로 간다.’는 문장이 있었다고 한다. 히라야마는 확실하지 않지만 영화에 나타난 정황상 굉장한 고위층의 삶을 살다가 어떤 연유로 그 세계를 박차고 나와 청소부로서의 삶을 선택한 것으로 보여지는데, 타인의 시선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선택이지만 히라야마는 그 선택으로 인해 스스로 꽤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다. 영화는 아마, 사람들이 각각의 현재에 충실한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는, 과거나 미래에 대한 고민 없이 현재에 충실한 것만으로도 그들의 삶은 아름답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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