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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im Jung Nov 10. 2021

다양한 생명종들의 만남

문화역서울284 타이포잔치 2021《거북이와 두루미》

전시 기간: 21.09.14-21.10.17

관람일: 21.09.22



타이포잔치는 문자와 관련된 유쾌하고도 재미난 작품들을 볼 수 있는 기회다. 올해는 문자와 '생명'이 주제였는데, 동양에서 장수를 의미하는 '거북이와 두루미'를 제목으로 삼아 동양적인 관점에서의 생명을 다룬 것이 이번 전시의 핵심이다. 전시는 생명을 기원하는 파트 1, 현재와 미래의 생명에 관한 파트 2와 3, 마지막으로 생명의 지속성을 표현하는 파트 4로 이어진다. 이 구성은 동양의 핵심 사상인 5행과 관련 있다. 동양의 5행과 서양의 4 원소는 서로 겹치는 부분도 있지만 가장 다른 점이 있다면 4 원소는 4개 원소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반면 5행은 중앙의 토(土:  흙 토)가 다른 네 요소를 연결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특징을 살려 전시에서도 파트 1~3 사이를 파트 4가 연결 짓고 있다.



모든 작품이 전시 주제와 잘 어울렸지만, 작품 수가 많아서 기억에 남는 작품 위주로 각 파트를 소개해 본다.


1. 기원과 기복

층고가 높은 전시실 중심에 나무를 두고, 작품을 나무에 부적처럼 걸어놓은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동양의 사찰이나 사원에는 오래된 나무가 있어 사람들이 이 나무를 모시고 소원을 빈다. 작가 개인의 소망을 담고 있는 작품들은 하나의 부적이 되어 이 신성한 나무에 걸려 있다. 함께 전시를 본 친구는 나무의 잎사귀 역할을 하는 종이 고리들과 작품이 부착된 폴리카보네이트 모두 반복이라는 공통점이 있어 보인다고 말했는데 그 말에 무척 공감했고, 더불어 반복적인 패턴이 무언가를 염원할 때 끊임없이 기도하는 행위와도 연결되어서 재료와 제작 방식이 주제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파트 1 전경(왼), 폴리카보네이트판과 종이 고리(오)

     2. 기록과 선언

     현재의 생명에 관한 작품이 있는 파트 2에서는 차별금지법 관련 작품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작품은 병풍처럼 지그재그로 생긴 파티션에 한 면에는 글, 반대 면에는 글에 관한 그림이 프린팅 되어 있다. 하나의 주제에 관한 글과 그림을 각도에 따라 글만 볼 수도 있고 그림만 볼 수도 있어서 이야기를 다양한 방법으로 감상할 수 있었다. 특히 파티션 발에는 신발이 신겨져 있는데, 무언가 투쟁적인 의미를 담은 것이 아닐까 유추해보았으나 전시디자인을 맡은 스튜디오 맙소사(marcsosa)에 따르면 관람자가 동선을 헷갈릴까 봐 관람 동선을 신발 방향으로 표시해둔 것이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동선 표시라고 하면 잘 정리된 그래픽으로 친절하게 알려주는 방식만을 떠올리곤 하는데, 이러한 편견을 깬 신선한 방식이었다.

파트 2 중 차별금지법 관련 작품

     또한, 작품 '생명도서관' 역시 전시와 정말 잘 어울리는 작품이었다. 생명도서관은 현재 편집디자인 생태계의 다양성을 유지하는 개성 있는 책들을 전시하는 전시 속의 전시인데, 시장에 유통되고 있는 상품이 편집디자인 생태계를 이루는 생명종이 되어 전시장에 작품으로 놓일 수 있도록 기획한 점이 무척 뜻깊게 다가왔다.

파트 2 중 '생명도서관'

     3. 계시와 상상

     파트 3에서는 형식적인 의미의 타이포그래피를 넘어선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볼 수 있었다. 다만 이곳의 작품들은 다른 파트보다 캡션이 짧았는데, 조각이나 디지털 페인팅 등 다른 장르의 작업과 타이포그래피와의 연관성이 조금 더 설명되었더라면 전시 전체의 스토리가 좀 더 잘 연결되었을 것 같다. 타이포그래피는 문자와 관련된 행위를 모두 포함하는 학문이지만, 이 개념이 아직은 대중적이지 않다고 생각해서 비교적 대중적인 전시인 타이포잔치에서 이러한 개념을 전달했더라면 좋았을 것 같다.

파트 3 전경

     4. 존재와 지속

     마지막 '존재와 지속'은 전시 주제를 가장 직접적으로 표현하면서 전시장 곳곳에 놓여 다른 파트들을 연결해준다. 그래서 전시의 모티브인 '김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 삼천갑자 동방삭….' 각각의 이름을 캐릭터화한다거나, 설치 작업으로 비밀 메시지를 숨겨놓는 등 전시 중간중간 재미를 줄 수 있는 작품이 많았다.

파트 4 일부


올해 타이포잔치는 이전보다 작품의 장르가 다양하다는 점, 그리고 전시 전반적으로 동양의 색채가 가득하다는 점이 가장 주목할만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한 분야만 깊이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분야를 연결해 생각하고, 우리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게 만드는 점이 그동안 학교 수업에서 배웠던 방향과는 다르지만 앞으로 추구해야 할 방향성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지금까지 그래 온 것처럼 앞으로도 타이포잔치가 우리에게 다양한 영감을 주는 행사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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