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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im Jung Nov 15. 2021

[20-2] 기획의 힘

리움미술관 《현대미술 상설전》

전시 기간: 21.10.08-

관람일: 21.10.09



앞글에 이어서, 작품의 형식으로 섹션을 구분한 고미술 상설전과 다르게 현대미술 상설전은 주제별로 구분되어 있었다. 현대미술전 역시 M1과 마찬가지로 꼭대기 층에서부터 내려오면서 감상하게 되어 있었는데, 2층부터 '검은 공백-중력의 역방향-이상한 행성'이라는 이야기 순서로 진행되었다. 그리고 이 주제 역시 M2의 건축으로부터 시작된 기획이었다.


장 누벨이 설계한 M2는 검은색의 부식 스테인리스 스틸과 유리로 마감한 블랙박스 같은 모습이 특징이다. 현대미술 소장전의 첫 섹션은 검은색 작품들만 모아놓은 '검은 공백'으로, M2와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주제다. M2는 외부에서 보았을 때 블랙박스 형태이지만, 내부에는 그보다 작은 블랙박스들이 놓여있다. 전시는 이 작은 블랙박스들을 잘 활용해 조용히 보아야 하는 작품은 작은 박스에, 보다 큰 에너지를 가진 작품들은 층고가 높은 중앙홀에 두어 다양한 층고를 가진 작품 하나하나를 효과적으로 배치했다. 그중에서도 카메라의 장노출을 활용해 색이 사라져 버린 바다의 모습을 담은 작품이 인상적이었다. 각기 다른 곳에서 촬영한 3점의 연작이지만 노출로 인해 장소에 대한 정보가 사진 안으로 모두 흡수된 모습이 이 전시와 가장 잘 어울리는 작품이었다.

'검은 공백' 전경 일부

     두 번째 섹션은 '중력의 역방향'인데, 유리나 아크릴, 금속처럼 빛에 따라 달라지는 가변적인 재료들을 활용한 작품들을 소개한다. 관람 위치에 따라 달라 보이는 작품들은 그 자체로는 단색이거나 무색이지만 주변 환경을 흡수하고 반사하면서 다양한 색을 띤다. 그래서 중간층에 있는 이 전시는 무채색의 2층과 유채색의 B1 층을 잇는 다리 역할을 한다.

'중력의 역방향' 작품 일부

     마지막 '이상한 행성'에는 낯선 모습으로 다른 세계에 온 듯한 경험을 주는 작품들이 전시된다. 이곳의 작품들은 앞선 두 섹션의 특징을 포함하면서 더 다양한 재료와 색상의 작품이 등장해 전시의 마지막 공간에 정점을 찍었다. 더불어 관람자의 모습이 왜곡되어 반사되는 아니쉬 카푸어의 작품이나 스스로 움직이는 최우람의 기계 생명체와 같은 가변적인 작품은 전시의 다양성을 한층 더 높여주었다.

'이상한 행성' 작품 일부


이번에 리움을 방문하면서 이전에 과제할 때 써놓은 글을 찾아보니, 리뉴얼 전의 현대미술 상설전은 '동서 교감'을 주제로 전쟁-미니멀리즘-현대미술 순으로 전시가 진행되었다. 리뉴얼된 지금 전시는 이전과 달리 작품의 외적 배경이 아닌 내적인 요소만 기준으로 삼는다. 작품 외적인 요소는 이미 사회적으로 공유하는 기준으로, 비교적 익숙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반대로 말하면 새롭지 않다는 단점도 있다. 그래서 전시는 작품 내적 요소에 집중함으로써 작품에 대한 보다 자유로운 해석이 가능해졌던 것으로 보인다. 새롭게 바뀐 전시를 보면서 전시에서 기획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




전시 공식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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