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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im Jung Nov 20. 2021

새로운 권력 주체의 문화 교육

현대카드 스토리지 《TOILETPAPER: The Studio》

전시기간: 21.10.08-22.02.06

관람일: 21.11.14



이탈리아의 크리에이티브 스튜디오 토일렛페이퍼가 현대카드 스토리지에 본사의 스튜디오를 그대로 옮겨놓았다. 전시는 매거진이라는 몸체로 탄생한 토일렛페이퍼의 정신이 종이를 넘어서 일상생활 곳곳에 스며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으로, 공간은 복잡한 구성 없이 토일렛페이퍼의 이미지로 가득 차있다. 애초에 토일렛페이퍼 매거진 자체가 한 번 쓰고 버리는 화장지처럼 가볍게 이미지를 소비하라는 뜻을 담고 있어서 전시는 '이미지'와 '소비' 두 단어로 요약할 수 있다. 직관적인 이미지로 가득한 이 전시는 겉보기에는 단순해 보이지만, 소비에 관한 토일렛페이퍼의 태도가 현대카드가 추구하는 방향과 같아서 문화마케팅에 관한 현대카드의 전략이 돋보였다.

전시 전경


현대카드는 단순히 카드가 예쁘고 디자인에 관심 많은 회사가 아니라 금융회사다. 자본주의 사회는 돈으로 움직이고, 우리의 생활 역시 돈이 있어야만 문제없이 작동한다. 현대카드는 문화 마케팅에 힘씀으로써 사람들의 소비를 촉진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에 공연, 전시, 출판 등 폭넓은 문화 장르에 공들이고 있는 것이다. 토일렛페이퍼는 그들의 이미지를 종이에만 인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생활용품에 인쇄했는데, 이 이미지들과 결합한 생활용품들은 '가볍게 쓰고 버리는' 토일렛페이퍼 정신을 그대로 머금어 이들마저 한 번 쓰고 버리는 것이 자연스럽게 느껴질 정도이다. 끊임없는 소비의 욕망을 일깨우는 스튜디오의 성격이 금융회사에서 반길만한 성격이라고 본다.

     이러한 정신을 잘 보여준 전시 요소 중 하나가 육면체에 인쇄된 이미지들이었다. 전시장은 거의 실제 물건들로 채워져 있었지만 중간중간 조명이나 조각 소품의 경우 실제 물건을 육면체 각 방향에서 찍어 붙여놓았다. 이 방식이 실제 물건을 재현한 것인지 아니면 원래부터 이런 디자인의 물건인지는 확실하게 알지 못하지만, 어쨌든 이렇게 3차원 물건이 2차원 사진이 되고 그 사진을 또다시 3차원 육면체에 붙여 결과적으로 2차원과 3차원이 결합한 듯한 인상을 주었다. 이는 이미지와 소비에 대한 토일렛페이퍼만의 정의를 굉장히 잘 보여준 방식이었다.

사진으로 인쇄되어 다시 육면체에 붙여진 조명

     스토리지 1층에서는 토일렛페이퍼 스튜디오의 각 방을 볼 수 있고, 지하층에서는 생활용품에 인쇄된 이미지들과 이미지의 모태인 매거진을 총망라해 살펴볼 수 있다. 전시장에서는 층별 서문을 제외하고는 어떤 글자도 찾아볼 수 없다. 이미지로 가득 찬 이 공간에서 사람들은 인증샷을 찍고 업로드하면서 자기만의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전시를 관람하면서 시선이 옮겨갈 때마다 카메라에 담고 전시장 안의 거울 속에 자신을 비춰보는 관객들을 보면서 누구나 쉽게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이 모습 자체가 굉장히 토일렛페이퍼스럽다고 느꼈다. 이번 전시가 현대카드 스토리지의 관람객 수를 갱신할 것으로 예상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는데, 어렵게 느껴지는 전시가 아니라 직관적으로 가볍게 즐길 수 있어 많은 사람들이 찾는 것 같다.

이미지로 가득찬 전시


과거부터 예술은 권력층의 전유물이었다. 그러나 민주주의와 함께 자본주의 사회가 되면서 권력층이 향유하던 다양한 취향들이 대중적으로 소비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권력층에게 집중되어 있었던 자본이 신흥세력에게도 나뉘며 이제는 자본을 가진 자가 권력자가 되었다. 돈을 다루는 금융회사는 자본주의 사회의 새로운 권력층이다. 그런 현대카드가 소비에 관한 전시를 하는 것을 보니, 마치 과거 권력층이 건축과 그림 등을 통해 사람들을 교화시켰던 것처럼 현재의 권력층이 자본주의 사회의 미덕인 소비를 교육하는 것으로 보였다. 우리가 문화 마케팅이라고 부르는 단어는 어쩌면 사상 교육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권력의 주체가 자본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던 인상적인 전시였다.




전시 공식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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