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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im Jung Nov 13. 2021

전시를 보는 나

세마 벙커 《우리가 전시를 볼 때 말하는 것들》

전시 기간: 21.10.12-21.11.21

관람일: 21.10.23



세마 벙커(SeMA Bunker)는 여의도에서 발견된 옛 방공호를 전시공간으로 만든 곳이다. 그래서 보통의 미술관들은 대지 위에서 멋진 외관을 자랑하고 있는 반면, 이곳은 차들이 쉴 새 없이 지나치는 도로 옆에 전시장으로 내려가는 계단만이 있을 뿐이다. 계단을 내려가니 어둡고 아주 넓은, 층고가 낮은 전시장이 나왔다. 지하에 있어 그런지 기계들이 돌아가는 소리가 요란해 소음에 적응하는데 1, 2분 정도 걸렸다.

     전시는 '전시를 보는 행위'에 관한 전시로, 우리가 전시를 본다는 의미나 전시를 보는 우리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한 전시였다. 그 기획의 연장선상으로, 전시장에 들어가자마자 전시를 보면서 작품 캡션을 가져갈 수 있도록 파일철을 마련해놓은 것이 인상적이었다. 보통 캡션은 작품 옆에 고정된 경우가 많은데 작품에 대한 정보를 직접 가져감으로써 전시를 보는 행위에 더 집중할 수 있는 좋은 경험 디자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품은 대부분 관람객이 직접 움직이며 보는 것이 많았는데, 작품만 보는 것이 아니라 작품과 나 사이의 관계를 생각하며 보려니 전시가 꽤 어렵게 느껴졌다. 그래서 전시를 본지 꽤 지난 지금에서야 글을 쓸 결심을 하게 되었다.


작품이 10개가 되지 않는 비교적 작은 전시지만, 그 속에서 전시의 섹션은 3개로 나눌 수 있다. 작품의 내용에 비추어보았을 때 '디지털 공간의 관람-신체와 관련된 관람-관람 행위에 대한 연구' 순으로 이어진다.

     1. 디지털 공간의 관람

     우리가 '본다'는 것은 눈을 통해 뇌가 인지하는 과정이다. 이 본다는 행위에 집중한 작품이 1 섹션을 이룬다. 우리가 늘 보고 있는 디지털 화면의 본질을 분석하고, 전시장에서 작품을 보는 관람객 자신의 실제 위치를 자각하게 하는 두 작품이 있다. 두 작품은 마치 우주선 속에 들어와 있는 듯 한 대칭적이고 기하학적인 모양으로 배치되어 있어서 가상적인 주제와 잘 어울린다.

디지털 공간의 관람

     2. 신체와 관련된 관람

     1 섹션이 인지와 관련된 내용을 다루었다면 2 섹션은 물리적인 관람을 다룬다. 전시를 보는 관람객 자신의 신체를 비추며 볼 수 있는 자화상 같은 작업이 있고, 또 이번 전시의 전시장은 가벽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작가의 작품은 가벽에 연결된 계단을 통해 가벽 뒤로 넘어가야 볼 수 있다. 이 공간은 전시장에 속해있지만 전시장으로 쓰이지 않는 가벽 뒤 공간을 자신의 작업실 겸 작품으로 사용해 전시장이라는 공간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다. 최근 공간을 작품으로 만드는 현대미술 작업이 많아지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공간에 자신의 작품을 맞춰 제작하는 것이 아닌 이미 존재하는 공간을 작품화하는 것이 무척 신선했다.

가벽 뒤로 이동하는 계단(왼), 가벽 뒤에서 본 전시장(오)
가벽 뒤편의 모습

     3. 관람 행위에 관한 연구

     마지막 섹션은 관람 행위에 관해 연구하는 두 모임의 결과물을 전시한 것이다. 이들은 전시를 보는 방식과 관객의 유형 등 전시 관람과 관련된 연구를 하는 그룹으로, 이곳에서는 관객들이 전시를 관람하는 방식을 새롭게 알아갈 수도 있고 이번 전시에 대한 감상을 새로운 방식으로 기록하는 등 관객이자 작품의 일부가 되어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전시, 기록, 데이터 등의 주제에 관심 있는 분들이 흥미로워할 만한 섹션이기도 하고, 아이들에게 교육용으로 사용해 전시를 보는 다양한 방식을 알려주도록 활용할 수 있어 보였다.

관람 행위에 관한 연구


전시는 이렇게 보는 것으로 시작해 직접 신체를 움직여 감상하고 작품 구성에 참여하기까지 경험이 점점 깊어지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그래서 전시를 다 보고 나면 작품에 대한 감상을 생각하기보다는 전시를 보는 나 자신에게 집중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내가 방금 전시를 본 건지, 전시를 보는 나를 본 건지 헷갈리는 이상한 경험이었지만 그렇기에 전시를 보는 내내 끊임없이 고민할 수 있었고, 이렇게 관람자에게 생각할 여지를 주는 것이 좋은 전시라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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