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갈은 파란색을 잘 사용하는 화가로 유명하다. 그래서 보통 샤갈 기획전이 열리면 색에 초점이 맞춰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에는 샤갈이 그림 소재로 자주 사용했던 '성서'를 중심으로 한 기획전이 열렸다고 해서 다른 관점으로 보는 샤갈은 어떤 느낌일지 궁금해 방문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전시된 작품들은 흥미로운 것들이 많았지만 그것이 공간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아 아쉬웠다. 전시는 아래의 4개 섹션으로 나뉜다.
1. 샤갈의 모티프
2. 성서의 백다섯 가지 장면
3. 성서적 메시지
4. 또 다른 빛을 향해
'성서'라는 이야기를 그림으로 담은 이번 전시에서는 주제가 겹치거나 연작으로 구성된 작품이 많았다. 그래서 작품 간의 내용이 서로 연결되어 있고 그 내용을 따라가다 보면 섹션마다 각기 다른 흐름의 패턴이 존재한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다.
각 섹션의 흐름을 패턴화 하여 살펴보면, 샤갈 그림의 다양한 모티프를 소개하는 섹션 1은 비슷한 무게의 작품이 일정하게 반복되는 구간이고, 샤갈의 성서 에칭화 연작을 소개하는 섹션 2, 샤갈이 자신의 경험으로 성서를 재해석한 섹션 3은 성서 속 이야기들이 모여 있는 단편집 같은 섹션이다. 두 섹션의 차이라고 한다면 섹션 2는 개별 그림들이 모여 하나의 연작을 이루고 있다는 점, 섹션 3은 짧은 연작들의 집합이라는 점이다. 마지막 섹션 4는 성서의 차용을 넘어 샤갈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나온 감정으로 작품을 그린 부분으로, 샤갈이 겪은 인생의 사건들이 다양한 매체에 펼쳐지는 자유로운 리듬을 가진 섹션이다.
이야기의 형식이 독자에게 대략적인 내용 흐름을 예측할 수 있게 해 주듯, 앞 문단에서 본 작품 구성의 4가지 패턴은 관객이 작품의 내용을 파악하는데 좋은 힌트가 된다. 다만 이 패턴을 전시에서 구현할 때, 지금처럼 작품과 글을 벽면에 붙여 시각적으로만 구성하지 않고 이야기의 흐름을 동선에서도 느낄 수 있도록 해주었다면 그 내용이 더 잘 전달되었을 것이다. 예시로 전시의 마지막 섹션에서는 직선 기둥들 사이에 작품이 배치되어 있고 기둥에 그 작품의 모티프가 된 샤갈의 시를 전시하고 있었는데, 그 배치만 보더라도 글과 그림이 서로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다른 섹션에서도 이러한 패턴을 공간에 구현했더라면 관객 입장에서 전시를 파악하는데 더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섹션별 작품 흐름의 패턴 분석과 동선 스케치
위 그림은 필자가 작품 흐름의 패턴을 분석하고 그에 어울리는 동선을 구상해본 것이다. 먼저 비슷한 내용의 작품들이 반복되는 섹션 1은 직선 동선을 가진다. 섹션 2는 예루살렘에 방문한 샤갈이 영감을 받아 성서 연작을 그리기 시작했다는 배경 소개가 있고 그다음 작품이 나오는 액자식 구성을 가졌다. 그래서 섹션 앞뒤로 배경 소개의 이야기를 놓고 중간에 다양한 동선으로 성서 연작을 배치했다. 성서의 여러 이야기를 차용해 자신의 메시지를 그림에 담은 섹션 3은 액자식 구성 없이 섹션 2보다 더 과감한 동선을 가진다. 마지막으로 다양한 매체의 작품이 등장하는 섹션 4는 매체의 다양성 자체가 재미를 주기에 동선의 개입을 최소화해 작품 자체에 집중했다. 이렇게 작품을 벽에만 걸지 않고 공간을 다양하게 사용했다면 전시의 경험적인 측면에서도 더 나은 경험이 되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전시는 손으로 책장을 넘기는 것이 아닌 발로 책장을 넘어 다니는, 몸으로 읽는 책이다. 다만 책은 눈과 손만 움직여서 보지만 전시는 온몸을 다 써서 보는 것이기에 책에서 변화를 줄 때보다 변화를 더 크게 강조해야 책에서 나는 것과 비슷한 효과를 줄 수 있다. 이번 전시는 각각 다른 내용의 이야기 챕터들을 줄 바꿈으로만 구분한 책을 읽는 것 같았다. 아무리 좋은 내용의 책이어도 읽기 불편하면 독자들의 사랑을 받기 힘들 것이다. 전시도 마찬가지다. 이번 전시는 일률적인 공간 구성으로 작품이 가진 에너지가 가려져 아쉬웠고, 그로 인해 역설적으로 전시에서 공간 디자인의 중요성을 느낄 수 있었던 사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