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aim Jung Feb 03. 2022

예술 속 빛의 일대기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빛: 영국 테이트미술관 특별전》

전시 기간: 2021.12.21-2022.05.08

관람일: 2022.01.26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에서 빛에 관한 전시가 열리고 있다. 전시 구성은 작품의 역사적 순서를 정확하게 따르기보다는 예술 소재로서 빛의 역사의 전반적인 흐름을 다루고 있다. 이 흐름은 '영적인 빛-연구 대상으로서의 빛-빛이 주는 인상-물리적 빛-일상의 빛-빛의 요소-인간의 빛' 순서로 흘러가는데, 총 16개의 작은 섹션들로 나뉘어 있어서 점점이 연결된 시간 순서를 따라가며 들었던 생각을 차례로 남겨보았다.


먼저 북서울미술관은 크게 세 덩어리로 나뉘어 있는데, 양끝의 커다란 전시장 건물을 중앙의 로비 공간이 연결하고 있는 구조이다. 두 전시장은 다리로 연결되어 있어 전시를 보는 동안 다리를 통해 전시실을 이동하게 되는데, 작지 않은 규모의 전시에서 이런 다리 같은 전이 공간은 전시를 보는 중간중간 환기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주었다.

     가장 먼저 종교적 의미의 빛을 다룬 섹션 1에는 설치미술가 아니쉬 카푸어의 〈이쉬의 빛〉이 놓여 있다. 빛의 반사 효과를 활용해 관람자가 작품 내부에 들어와 있는 듯 한 느낌을 주는 이 작품은 섹션을 대표해 빛의 신성함을 몸소 느끼게 해 준다. 주변의 회화들은 성경 속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 많았는데, 그중 성경 속 대홍수를 절망적으로 또 희망적으로 그린 작품이 있어 같은 주제에 대한 다른 접근법이 흥미로웠다.

아니쉬 카푸어 〈이쉬의 빛〉

     섹션 2에서는 빛의 색, 그리고 빛과 사물의 관계에 관한 연구작들을 볼 수 있다. 우리가 학창 시절 미술 시간에 배웠던 난색과 한색의 개념, 사물에 그림자가 비치는 규칙 등을 연구한 내용이었는데, 근대 당시의 교재로 쓰인 작품들이 내가 배웠던 교재들과 다를 바가 없어서 이 분야에 관한 이론 연구가 근대 이후로 과연 충분히 이루어지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기도 했다.

(왼)그림자 이론, (오)반사 이론

     다리를 건너 다음 전시장으로 이동하면 인상주의를 다루는 섹션 4를 볼 수 있다. 이곳에서는 예상치 못한 멋진 작품을 발견해 무척 기뻤다. 작품의 주인은 존 브렛이라는 화가로, 그의 작품은 사실주의와 인상주의의 사이에 있는 듯해 보였는데, 풍경이 사실적으로 묘사되면서도 그 속에서 빛의 흐름이 아주 풍부하게 묘사되어 있었다. 수많은 미술사조 중 인상주의는 무척 유명하지만 이에 관한 정보는 몇몇 작가들에게만 치중되어 있는데, 우연히 처음 보는 멋진 작품을 발견하니 조명되지 못한 작가들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꾸준히 필요함을 느꼈다.

존 브렛 〈도싯셔 절벽에서 바라본 영국 해협〉

     인상주의를 마지막으로 건너왔던 다리를 되돌아가 다음 전시장으로 이동하면 섹션 6~8이 한 공간에 함께 전시되어 있다. 긴 복도의 끝에는 예술에 과학을 접목하는 작가 올라퍼 엘리아슨의 〈우주 먼지입자〉가 놓여 있다. 빛을 내는 거대한 투명 구가 천천히 돌아가며 빛이 닿는 모든 면에 그림자를 비추고 있는데, 작품의 위치가 전시장에서 유일하게 2층 높이의 층고를 가진 곳이어서 계단을 오르기 전, 중, 후로 작품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빛의 입자들을 즐길 수 있다. 또한 올라퍼 엘리아슨의 것과 함께 놓인 다른 작품들 모두 빛의 물리적 속성을 연구하고 실험한 것들로, 이들을 함께 감상하니 작가들 간의 작업 과정이 서로 겹치고 있는 것처럼 보여 작품 간의 연결성이 좋았다.

아래와 위에서 본 올라퍼 엘리아슨 〈우주 먼지입자〉

     2층에서는 인간이 좀 더 적극적으로 빛을 제어하려는 시도들을 볼 수 있다. 섹션 9~14는 주로 1900년대의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사진과 영화 등의 새로운 매체, 또는 정신분석학, 색채학 등 근대의 새로운 이론으로 빛을 실험하는 다양한 작품들이 놓여 있다. 특히 실내 공간에 빛이 들어오는 순간을 포착해 그 장면을 카펫으로 만든 작품이 무척 인상적이었는데, 모든 사람들이 진짜 빛이 들어오는 줄 알고 착각했다가 그림자가 움직이지 않는 것을 보고 카펫임을 깨달으며 신기해했다. 전통적인 매체에 순간을 포착한다는 사진의 개념을 접목한 것이 재미있는 지점이었다(일상의 장면들을 그린 회화는 예전부터 존재해왔지만 순간을 포착한다는 개념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사진이 등장하기 이전의 회화는 인위적으로 자세를 잡은 모델을 그리거나 상징적인 장면을 그린 것이 많았기 때문이다).

필립 파레노 〈저녁 6시〉

     마지막 섹션 15, 16에서는 인간이 스스로 창조한 인공 빛으로 된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특히 설치 작가 제임스 터렐의 작품은 명상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데, 그 감정이 영적인 느낌을 주어서 전시 초입에 있던 아니쉬 카푸어의 작품이 떠올랐다. 재미있게도 아니쉬 카푸어의 작품은 설치물에 의해 자연스럽게 생기는 빛의 기둥이 곧 작품인 반면, 제임스 터렐의 작품은 인공의 빛을 작품으로 삼고 있다. 전시의 처음과 마지막에 비슷한 느낌을 주지만 전혀 다른 속성의 빛을 활용한 작품을 배치한 짜임새가 인상적이었다.

제임스 터렐 〈레이마르, 파랑〉

     전시를 다 보고 나오면 2층 라운지에서 1층의 전시장 입구를 내려다볼 수 있다. 전시장 입구에서는 두 작품을 볼 수 있는데, 하나는 백남준의 〈촛불 TV〉이고 다른 하나는 데이비드 바첼러의 〈브릭레인의 스펙트럼 2〉이다. 각각 '빛으로부터 시작되는 문명'과 '도시환경 속의 빛'을 의미하는 두 작품은 이번 전시에서 과거부터 현재의 빛까지 빛의 긴 역사를 다룬다는 예고를 하고 있다. 사실 전시장 입구는 아무래도 부산스럽다 보니 작품을 감상하기 적합하지는 않았는데, 전시를 다 보고 전체 전시장을 조망하며 두 작품을 관조하다 보면 입구 작품의 의미와 전시 흐름들을 하나하나 떠올려볼 수 있어서 그 나름대로 전시를 마무리하기 좋은 구성이다.  

백남준 〈촛불 TV〉, 데이비드 바첼러 〈브릭레인의 스펙트럼 2〉


이번 전시는 큰 주제를 가지고 있기보다는 작은 점들이 모여 하나의 흐름을 만들고 있다. 그래서 뚜렷한 기승전결은 없지만 그 덕분에 전시의 모든 요소들에 집중할 수 있었다. 북서울미술관은 찾아가기에 꽤 힘든 곳이지만, 훌륭한 작가들의 다양한 작품을 볼 수 있으니 기간 내에 한 번쯤 찾아가 보기를 추천한다.




전시 공식 사이트

작가의 이전글 결과 겹의 공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