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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im Jung Feb 10. 2022

가장 가까운 사각형

송파책박물관 상설전

전시 기간: 2019.04.23-2023.12.31

관람일: 2022.02.06



우리는 네모난 세상에 산다. 우리가 살고 있는 아파트부터 집으로 데려다주는 엘리베이터, 현관의 문, 옷을 거는 옷장까지 우리 주변 대부분의 것들은 사각형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무인양품의 한 디자이너는 우리가 접하는 사물들은 대체로 사각형이지만, 신체와 가까워질수록 원형이 되어간다고 말했다* . 과연 몸과 오랜 시간 접촉하는 컵이나 마우스 등은 둥근 형태다. 그렇다면 그 많은 사각형 중에서 몸과 가장 가까운 사각형은 무엇일까? 그건 바로 책이다. 혹자는 스마트폰이라 말할 수도 있겠지만, 스마트폰 역시 책을 넘기고 읽는 행위를 따서 만들어진 것이므로 그 원형은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책은 형태가 크게 바뀌기 힘들다. 수천 년 전부터 인간의 신체에 맞게 모양이 다듬어져 현재까지 전해 내려 왔기에, 인간의 신체나 독서 환경이 크게 바뀌지 않는 한 책의 모양 역시 지금과 비슷한 형태를 유지해나갈 가능성이 크다. 송파책박물관은 이 익숙한 물건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고 애정을 더해가는 공간이다. 이곳에서는 책이라는 평범한 물건이 어떤 과거를 가지고 있고, 내 윗사람은 어떻게 접해왔고, 이것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의 태도는 어떤지 볼 수 있으며, 무엇보다 그것에 실컷 둘러싸여 마음껏 향유할 수 있다.


박물관은 아파트 단지 한편에 자리 잡고 있다. 많은 전시 공간이 일상으로부터 벗어나 있는 것과 다르게 평화로운 주거지역 한가운데 있다는 점부터 책의 일상성과 잘 어울린다. 아파트 사이로 보이는 외관의 하얗고 긴 루버는 마치 책의 옆면을 보는 듯하다. 겹겹이 쌓인 종이 레이어들을 통과해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박물관인지 도서관인지 헷갈리는 풍경이 펼쳐진다. 1층 곳곳의 벽은 책들로 가득 차있고 로비, 카페, 복도, 중앙홀 어디에서든지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특히 1층 중앙홀은 계단식으로 되어 있어 2층으로 올라가는 통로가 되기도 하는데, 계단 자체가 책을 읽을 수 있는 의자 겸 포켓 공간이다.

송파책박물관 외관

     2층에 자리한 상설전은 총 3부로 구성된다. '조선시대의 책문화-근대~현대의 도서 문화-현 대한민국 작가들의 물건' 순이다. 전시가 크지는 않지만 책이라는 하나의 소재만 다루고 있기 때문에 대규모 전시에서는 잘 설명하지 않는 미시적인 내용까지 알 수 있어 전시품이 무척 친근하게 다가온다. 1부 '향유-선현들이 전하는 책 읽는 즐거움'에서는 조선시대에 발행된 여러 책들과 관련 가구들을 볼 수 있다. 특정 계층이 사용하는 무기나 안방 가구와 달리 문방사우는 어떤 사람이라도 사용해본 경험이 있을 테니 자신의 경험에 빗대어 관람하기 좋을 것이다. 물건에 담긴 설명을 읽다 보면 과거 사람들의 삶이 현재와 크게 다르지 않았음이 느껴지는데, 가문의 족보나 복잡한 예의 규범을 휴대용으로 만든 것을 보면 모르는 것을 스마트폰으로 검색하는 우리의 모습이 떠오른다. 또한 글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책을 외워 낭독해주는 '전기수'는, 소설의 가장 중요한 대목에서 낭독을 멈추었다고 한다. 그러면 사람들이 전기수에게 서둘러 동전을 내고, 그러고 나서야 그다음 대목을 읊어주었다고 한다. 가장 아슬아슬한 순간에 전개를 끊어 다음 권을 기다리게 하는 전략이 지금과 다를 바가 없다.

상설전 1부 전경

     2부에서는 1900년대 이후의 독서 문화와 시대별 베스트셀러를 디오라마(전시장을 실제 공간처럼 입체적으로 구현하는 방식) 형식으로 전시해 조부모님 세대까지의 독서 문화를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고, 마지막 3부에서는 현재 활동하고 있는 한국 작가들의 애장품을 볼 수 있다. 애장품을 보다 보면 이들 역시 조선의 선비처럼 문방사우에 대한 관심이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 쓴 볼펜 심을 모아 놓거나 몽당연필을 저울에 올려놓는 등의 모습을 보면 작가마다 제각기 다른 취향을 가지고 있는 것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현재의 문방사우를 보며 앞선 1부에서 보았던 조선시대의 것과 비교하는 것도 전시를 보는 또 다른 재미다. 전시실 바깥으로 나오면 출판사에서 책을 만드는 과정을 경험할 수 있도록 작업자의 일터를 꾸며놓았는데, 실제 출판사에서 자료들을 가져와 구성해두어서 예상보다 훨씬 더 현장감이 느껴졌다. 이렇게 책의 과거와 현재를 보고 나면 각종 독립출판물과 아트북이 전시된 로비와 기획전시실이 차례로 나온다. 로비의 실험적인 책들과 기획 전시에서 재구성된 책들을 통해 앞으로 책이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볼 수 있는 흐름이다.

상설전 3부 전경

    

상설전시실의 근대-근현대-현대 책문화에 이어 근미래를 보여주는 아트북 코너와 기획전시까지 돌아보면 짧은 시간에나마 책의 가까운 역사를 훑어보게 된다. 늘 우리 곁에 있는 책에 관한 새로운 사실들을 알고 나면, 박물관 곳곳에 있는 책을 얼른 펼쳐 들고 어디서든 앉아 읽고 싶어 진다. 관람을 마치고 계단식 홀을 내려가는 동안에는 천장 루버의 반복되는 사각형이 눈에 띈다. 공간에 진입하기 전부터 나가는 순간까지 책과 종이로 가득한 곳이다. 박물관 곳곳에 누워서, 앉아서, 엎드려서 자유롭게 독서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이곳에서 책을 읽으며 자랄 아이들이 부러워졌다.

2층에서 바라본 1층 중앙홀




참고문헌

* 김상욱 · 유지원, 뉴턴의 아틀리에』, 민음사(2020), 287p


전시 공식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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