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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im Jung Feb 17. 2022

수행하는 예술가

국립중앙박물관 《조선의 승려 장인》

전시기간: 2021.12.07-2022.03.06

관람일: 2022.02.15



2년 만에 국립중앙박물관에 다녀왔다. 요즘 국립중앙박물관의 다른 전시보다도 작년 11월에 개관한 상설전 《사유의 방》 후기가 여기저기서 들려오고 있는데, 마침 같은 불교문화에 관한 전시 《조선의 승려 장인》이 함께 열리고 있어서 두 전시를 연달아 보았다.

     《조선의 승려 장인》은 다른 것보다도 기획이 무척 좋은 전시다. 그동안 역사를 다루는 여러 매체에서 불교 미술은 국가를 뒷받침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다루어지곤 했다. 국가의 융성을 증명하거나 정치를 설명하는 등 전체를 이루는 구성 요소로서의 역할을 강조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번 전시는 집단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개인의 관점에서 승려 장인이라는 직업을 조명하고 있었다.



관점이 달라지면 전시의 내용도 달라진다. 일반적으로 불교 미술 작품이 소개될 때 작품을 만든 사람과 기법, 그 의미 정도가 소개되었다면 이번 전시에서는 승려 장인의 생활을 중심으로 훨씬 세세한 부분까지 다루었다. 전시는 크게 4개 파트로 나뉘는데, 승려 장인에 관한 개괄적인 소개-승려 장인의 공간-승려 장인이 그려낸 세계-승려 장인에 대한 존중의 이야기로 진행된다.

     먼저 '1. 승려 장인은 누구인가?'에서는 승려 장인의 개념과 사찰 내에서의 역할 구분, 그리고 그들의 활동 분야와 방식을 소개한다. 그 속에서 조선에만 존재했던 승려 장인의 가치를 일깨워 주는데, 인접 국가인 중국과 일본의 승려 장인은 승려라기보다는 제작자로서의 장인에 가까웠다면 조선의 승려 장인은 수행자이자 예술가로서의 면모를 모두 갖춘 독자적인 직업군이었다는 사실을 알리며 이번 전시의 의미를 알린다.

수행이자 예술의 행위인 승려 장인의 작업 영상

     '2. 불상과 불화를 만든 공간'에서는 승려 장인들이 작품을 제작한 작업 공간과 작품의 재료, 그리고 작품을 만드는 방법과 그 방법을 후대에 전수하는 문화 전승까지의 전반적인 과정을 다룬다. 장인들의 작업장을 재구성해 보여주는 것부터 조각상을 조립하는 과정, 그림의 밑그림을 그리고 완성하는 과정 등 완성품만이 아닌 과정을 함께 보여줌으로써 그동안 불교 미술에 관해 알지 못했던 구체적인 사실들을 알 수 있는 파트이다. 작품들은 그 제작 과정을 잘 알 수 있도록 놓여 있는데, 작품의 완성본과 밑그림을 나란히 놓는다던지, 조각상을 완성된 모습이 아닌 조립하기 전 모습으로 놓는 식의 방식이 그 예다. 파트 2의 주제가 공간이긴 하지만 작업의 전반적인 과정을 알 수 있도록 구성한 것을 보면, 이곳에서 말하는 '공간'의 개념은 물리적인 공간뿐만 아니라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행위를 포함하는 것으로 보인다.

승려 장인의 작업 공간 연출
밑그림과 채색 완성본이 나란히 전시된 공간

     '3. 그들이 꿈꾼 세계'에서는 승려 장인들이 그린 그림에 담긴 불교의 세계관이 소개된다. 파트 3의 작품들은 대체로 대형 불화들인데, 큰 사이즈의 작업답게 그림 속의 구조와 디테일이 아주 정밀하고 복잡해서 과연 그림 한 장에 세계가 담겨있다는 설명이 잘 와닿는다. 마지막으로 '4. 승려 장인을 기억하며'에서는 불상과 함께  현대 작가 빠키의 작품, 그리고 부처가 아닌 승려를 그린 작품을 전시해 승려 장인의 존재 자체에 초점을 맞추며 전시를 마무리한다.

전시의 마지막 작품인 김홍도의 〈염불서승도〉


기획 외에 전시 디자인에 관해서 짧게 이야기를 덧붙이자면, 사실 이러한 기획이 공간적으로 특별하게 풀리지는 않았다. 전시 서문에 승려 장인의 '손'과 '공간'에 집중했다는 언급을 고려해보면 전시 관람에 있어서도 특별한 공간적 경험을 기대하게 되는데, 아쉽게도 전시 공간은 일반적인 박물관 전시 방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국립중앙박물관은 학습, 과제, 관람 등 다양한 목적으로 방문하는 사람들이 많고 관람객의 연령대도 다양하다 보니, 전시에서 최대한 많은 역할을 하려는 노력들이 많이 보였다. 학습을 위한 다양한 보조 자료와 설명들, 그리고 흥미를 위한 여러 그래픽적인 장치들이 그러했다. 그래서 특별히 눈에 띄는 점은 없지만 전체적으로 알차게 구성한 전시장이었고, 이 구성들이 전시 기획에 대한 내용적인 뒷받침을 풍부하게 해 주었다.



이렇게 승려 장인의 구체적인 삶과 작품 세계를 경험하고 나면 '조선 문화에서 불교 미술이 중요했구나'가 아니라 '승려 장인은 정말 특별한 사람들이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국가를 위한 미술이 아닌 자기 수행으로서의 예술을 했던 그들의 삶의 모습에 집중하게 된다. 국가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기관에서 이러한 기획의 전시가 만들어진 것을 보면서 이제는 한국 사회도 단체보다 개인의 존재를 존중하는 방향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변화가 사회뿐만 아니라 학문적으로도 이어져,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미시적인 역사들이 조명되며 역사와 미술 분야에 새로운 관점을 제시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




전시 공식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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