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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im Jung Feb 24. 2022

사유의 궤도와 하나 되어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

전시 기간: 2021.11.12-2031.12.31

관람일: 2022.02.15



공간을 직업으로 가지고 있다 보니 전시를 볼 때 눈에 들어오는 것이 많다. 나도 모르는 새에 동선도 보이고, 기획도 보이고, 하다못해 리플렛의 종이 재질도 보인다. 보는 것이 많다 보니 전시는 주로 혼자 관람하는 편인데, 종종 친구들과 함께 전시를 볼 때 순수하게 작품 자체에 대한 감상을 이야기하는 친구들을 보면 신선하게 다가올 때가 있다. 그런 와중에 국립중앙박물관의 《사유의 방》은 오랜만에 작품에 깊이 집중할 수 있었던 전시였다.


전시실 입구로 들어와 전이 공간을 지나면 비스듬한 오르막으로 되어 있는 넓은 공간의 끝에 두 점의 반가사유상이 나란히 놓여 있다. 어둡고 조용한 공간 속의 반짝이는 천장과 타원형의 무대는 마치 고요한 우주 공간에 들어온듯한 느낌을 준다. 반가사유상 두 점이 나란히 놓여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두 상을 비교하게 되는데, 개인적으로는 정면에서 봤을 때 왼쪽에 있는 6세기 후반의 반가사유상이 더 마음에 들었다. 7세기 전반의 것은 미소보다는 웃음 짓는 표정에 더 가까워 보였고, 좀 더 차분한 미소를 가진 왼쪽 것이 내 취향이었다.

(왼) 6세기 후반의 반가사유상, (오) 7세기 초반의 반가사유상

     마음에 든 왼쪽의 작품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반가사유상의 시선은 정면이 아닌 왼쪽 아래를 향하고 있다. 작품을 보는 관객을 신경 쓰지 않고 자기 자신에게만 집중하고 있는 듯한 표정이다. 그런데 정적인 자세의 몸을 감싸고 있는 옷차림은 마치 그를 미소 짓게 만든 생각을 표현한 것처럼 밝은 인상을 준다. 천의 흐름은 물처럼 흐르는 유려한 선으로 새겨져 있고, 어깨와 뒤꿈치의 옷자락은 날개처럼 한껏 올라가 있다. 유유자적 떠다니는 신선의 모습이 연상되는 이러한 표현은 반가사유상이 괴로운 번뇌를 넘어서서 무의 경지에 오른 것이 아닐까 상상하게 만든다.

6세기 후반의 반가사유상

     이렇게 한 작품에 오랜 시간 집중할 수 있는 이유는 소극장만한 큰 공간이 관객들에게 집중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주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훌륭한 작품이더라도 다른 작품들과 함께 전시되었더라면 사람들이 이렇게 긴 시간 동안 집중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작품이 놓이는 공간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반증이다. '사유'라는 주제답게 전시실은 입구에서 바로 작품이 보이지 않고 한차례의 전이 공간을 거쳐 들어가게 되는데, 관객은 어둡고 긴 복도를 천천히 걸어 올라가면서 고요한 분위기에 적응하게 된다. 그리고 전시실에 들어서면 소극장만한 크기의 비스듬한 공간의 끝에 두 작품이 놓여 있다. 타원형의 무대 위에 작품이 있어서 관객들은 작품 주위를 한 바퀴 돌며 반가사유상을 모든 각도에서 감상할 수 있다. 전이 공간을 지나 비스듬한 바닥을 걸어 올라와서 작품을 따라 천천히 도는 동안, 우리는 반가사유상이라는 행성 주변을 도는 위성처럼 사유의 방이 가진 궤도의 흐름과 하나 된 듯한 일체감을 느낄 수 있다.

사유의 방 전경


어떤 정신적 경지에 오른다는 것은 무척 어렵겠지만, 《사유의 방》에서의 경험처럼 전시를 보면서 작품과 공간의 흐름에 몸을 맡기는 순간은 그 비물질적인 상태와 어렴풋이 비슷한 축이지 않을까 싶다. 종래의 전시 관람이 무언가를 채우기 위한 시간이었다면, 《사유의 방》에서 보낸 시간은 감상 그 자체에 집중할 수 있었던 고요한 시간이었다.




전시 공식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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