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aim Jung May 26. 2022

시간을 잇는 다리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팀 버튼 특별전》

전시 기간: 2022.04.30~2022.09.12

관람일: 2022.05.02





나도 이제 10년 전의 기억을 비교적 뚜렷하게 회상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10년 전인 2012년 12월 서울시립미술관에서는 현대카드 컬처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팀 버튼 전 열었었다. 10년 만에 DDP로 돌아온 《팀 버튼 특별전》을 다시 보니, 같은 책을 오랜 시간이 지나 다시 읽을 때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듯 당시의 나와 지금의 나를 되돌아보게 되었다.



전시 중 '굴 소년의 우울한 죽음' 스케치를 보자마자 10년 전의 내가 같은 그림을 보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의 나는 그림 그리기를 좋아한 16살의 중학생이었고, 좋아하던 영화의 감독이 팀 버튼이라는 사실을 알고 전시를 보러 갔었다. 당시 미술을 전공하겠다는 생각으로 입시미술학원에 다니고 있었는데, 그림을 잘 그리는 것이 미대생의 도리인 줄 알았어서 그림 한 장 한 장에 담긴 아이디어와 재료, 구도를 보 무엇인가를 열심히 배우려고 했다. 때는 전시의 구성이나 공간 같은 큰 그림은 전혀 볼 줄 몰랐다.

     그리고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대학을 졸업한 나는 이제 전공자의 시선으로 전시를 본다. 공간 디자인, 그리고 글자를 다루는 학문인 타이포그래피를 배우면서 작품뿐만 아니라 전시의 구성과 공간도 눈여겨보게 되었다. 그래서 전시장에서는 눈에 담고 뇌가 소화해야 할 것들이 많아 무척 바쁘다. 보통 나는 공간을 위주로 전시를 감상하지만, 오랜만에 어린 시절의 눈을 빌리니 작품 하나하나를 오랜 시간 뜯어보게 되었다.


그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작품은 전시 후반에 위치한 '냅킨' 시리즈였다. 이 작업은 팀 버튼이 작품 활동을 하면서 세계를 활보하는 동안 불쑥 떠오른 아이디어들을 냅킨에 스케치한 것들이다. 세계 각국에서 모인 냅킨들은 각기 다른 색과 질감을 가지고 있다. 흰색, 갈색, 노란색, 패턴이 있는 것도 있고 부드러운 질감부터 사각거리는 종이 같아 보이는 질감도 있다. 몇몇 냅킨에는 컵의 밑받침 테두리를 따라 음료가 스며든 흔적, 음료가 튄 흔적들이 남아있어 그림을 그릴 때 팀 버튼이 어떤 음료를 마시고 있었을지, 언제 그림을 그린 것일지 등등 그때의 상황을  생생히 떠올리게 된다. 시의 전반적인 품들 하나의 완성된 그림이 아니라 팀 버튼의 아이디어를 펼쳐놓은 과정들이라, 냅킨이라는 생활적인 소재가 과정의 리얼리티를 극대화해주었다. 개인적으로 냅킨 시리즈는 다른 작품들과 같이 흰 액자에 넣어 벽에 걸기보다는 카페 테이블에 놓고 보는 것처럼 수평 좌대에 놓았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하지만 작품 자체가 무척 신선해서 디스플레이에 대한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다.

     이외에도 물들의 질감을 잘 살린 재료의 쓰임새, 기술의 발전이 느껴지는 몇십 년 전의 기계장치들을 보면서 팀 버튼의 작업 환경을 상상할 수 있었다. 이렇게 완성작이 아닌 아이디어를 표출한 작업들은 관객 입장에서 전시에 몰입하는 게 크게 움이 되었다.



팀 버튼의 작품 일대기를 보는 동안 10년이라는 시간차를 실감하며 양한 감정들이 느껴졌다. 가장 크게는 현재의 불만과 미래의 불안에 쫓기며 지내던 요즘, 전시를 다리 삼아 10년 전의 를 마주하며 지금 내가 놓인 상황을 멀찍이서 바라볼 수 있다. 그동안 시는 한 번 끝나면 다시는 볼 수 없는 일시적인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이렇게 다시 출간된 개정판처럼 같은 전시를 다시 보게 되면서, 전시도 책이나 음악처럼 그 시절을 회상할 수 있는 추억의 매개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했다.





전시 공식 사이트

*전시장 내부에서 작품들은 촬영 불가. 포토존은 촬영 가능.

작가의 이전글 스튜디오가 된 화이트 큐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