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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im Jung Oct 30. 2021

개념을 전시한다는 것

whatreallymatters 《서베이 2020 문장수집가》

전시 기간: 20.11.09-20.11.29

관람일: 20.11.25



whatreallymatters(wrm)는 시각디자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디자이너들의 다양한 창작 활동을 지원하는 곳이다. 이곳에서 운영하는 전시 공간인  wrm space에서는 2019년부터 매년 디자이너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해 이를 아카이브형 전시로 풀어낸다. 이 '서베이' 시리즈는 2019년에는 '영감'을 주제로, 2020년에는 '디자인 역사'를 주제로 전시를 열었다. 전시는 20세기의 디자인 잡지들로부터 지금 시기에 보아도 귀감이 될만한 문장들을 수집해놓았다. 디자인 잡지에서 발췌한 내용이지만, 디자이너가 아니더라도 창의적인 일을 하는 어떠한 사람이든지 읽으면 좋을 문장들이 많았다.


인덱스 책에 실린 선별기준은 4, 5가지 정도 되었고 주로 디자이너의 현실, 디자이너의 길, 디자인 교육, 디자인의 현실 정도에 대한 내용이었다. 졸업을 앞둔 학생의 입장에서 이미 활동 중이거나 입지 있는 선배 디자이너들의 말씀을 듣는 듯했는데, 과연 이 시대에 맞는 조언인지 고민되는 문장도, 새겨들을만하다 여겨지는 문장도 있었다. 특히 졸업전시에 대한 비평이 인상적이었는데, 학생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과정이나 참신한 시도가 아닌 기존의 완성도를 답습하려는 분위기를 안타까워하는 점에 공감이 갔다. 이외에도 디자인계 연구나 비평의 부재는 디자인계에서 오래된 고민이었는데 지금까지도 풀릴 기미가 적어 보이는 것이 다소 충격적이었다.

인상적이었던 문장들

     전시는 벽에 고정된 문장과 화면에 흐르는 문장, 음성으로 나오는 문장들로 채워졌다. 문장을 전시한다는 것이 흔치 않은 일인데, 문장 하나하나를 작품이라고 본다면 시각적인 것을 덜어내고 의미만을 전달한다는 점에서 수많은 몇백 개의 문장들을 좁은 공간에 담는 것이 효율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웠던 것은 기존 전시 공간과 전시 공간 디자인이 약간 동떨어져 보였다는 것이다. 전시장에 놓인 큐브는 그 내부에 들어갔을 때는 독특한 경험을 주었지만 밖에서 보면 큐브 내부와 외부가 단절되는 바람에 큐브 바깥의 전시 공간을 배제하는 결과를 낳았다. 전시에 수합된 문장들을 모아 두고 그 기준을 알려주는 인덱스 책은 큐브 바깥에 있었는데, 큐브와 워낙 다른 분위기에 놓여있다 보니 선뜻 다가가서 읽기가 망설여졌다. 인덱스 책 섹션도 큐브와 같은 나무 재질을 활용해 공간을 마련했다면 두 섹션이 좀 더 연결되어 보였을 것 같다.

전시장 안에 놓인 전시장
전시장 한켠에 놓인 인덱스 책


공간 측면에서는 아쉬운 점이 있었지만, 형체가 있는 물건을 전시하는 것이 아니라 개념만을 전시한다는 시도를 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현재를 사는 디자이너들이 과거를 봄으로써 미래를 생각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그 나름대로 실험적이고 의미 있는 전시였다고 생각한다.




전시 공식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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