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보통 전시를 보면서 생각나는 것들을 두서없이 메모한 뒤, 몇 번의 수정을 거쳐 정돈된 글을 쓴다. 이렇게 생각을 글로 정리하는 방식에는 장단점이 있다. 장점은 시간이 흘러 글을 다시 봤을 때 전시에서 느꼈던 핵심적인 생각이 잘 떠오른다는 것이다. 반대로 단점은 글을 '정리'하다 보니 처음 전시를 봤을 때의 생생한 느낌은 줄어든다는 것이다. 보통 때와 다르게, 이번 리뷰는 전시를 보는 중의 생생한 느낌을 그대로 간직하고 싶어서 처음 메모한 내용과 기억을 최대한 그대로 남기려 노력했다.
그 이유는 이번 전시의 목적과 맞닿아 있다. 전시 《보화수보》의 목적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간송미술관에서 지난 2년간 보존 처리한 작품을 소개하는 것이고, 둘째는 1938년 개관 당시 모습이 가장 비슷하게 남아있는 보화각의 모습을 보존처리에 들어가기 전 마지막으로 개방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 글은 총 4편으로 상당히 길고 필요 이상으로 자세하다. 1편부터 3편까지는 보화각을 멀리서 마주한 순간부터 보화각을 뒤로하고 미술관을 나오는 순간까지 눈으로 담았던 장면들을 카메라로 찍듯이 남겼다. 마지막 4편은 보화각을 거닐었던 필자의 흔적을 그림으로 기록했다.보수한 뒤에는 지금 같은 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을 테니, 기존 보화각의 마지막 모습을 이번 시리즈 글로 저장해두려 한다.
1. 초입
초여름 치고는 상당히 더운 날이었다. 해가 너무 강렬해서 몇 분만 걸어도 땀이 났는데, 하필 간송미술관은 언덕 위에 있었다. 가쁜 숨을 참으며 언덕 위로 올라오자 돌 모래가 깔린 정원 위의 보화각이 보였다. 강렬한 햇살이 고마워지는 순간이었다. 하얀 정원과 보화각이 태양의 빛줄기를 받아 새하얀 광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 빛이 주변을 더 뜨겁게 달구는 듯했다. 단순한 육면체의 건물 중간에 툭 튀어나온 입구의 그늘로 얼른 들어가고 싶었지만, 새하얀 광경을 조금 더 바라보다가 더 이상 열기를 견디지 못해 안으로 들어갔다.
보화각 외관
2. 1층 전시실
전시실 앞에서 간단한 안내를 받은 뒤 리플렛으로 부채질을 하며 1층 전시실로 들어갔다. 더워서 멍해진 정신을 가다듬지도 않은 채 문 바로 옆에 있던 작품을 보았다. 설명글을 보다가 문득 장식장이 굉장히 낡아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그제야 공간을 살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시실을 한 바퀴 돌며 작품을 빠르게 훑어보고 스마트폰 메모장을 켜 공간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미술관 초입에서 생각보다 아담한 규모에 놀랐던 것처럼 전시실도 자그마했다. 어림잡아 25평 정도 되어 보였고, 입구 맞은편에는 안쪽 방으로 통하는 잠겨있는 작은 문이 있었다. 창문 사이사이 진열장이 놓여 있고, 문 위에는 전형필 선생님의 상반신을 본뜬 부조가 걸려있었다. 문은 2미터~2.1미터 정도나 될까 싶게 낮았다. 그리고 천장에는 황동색의 지지대에 둥근 플라스틱 구로 된 조명이 매달려 있었다. 갈색 반광의 나무 바닥은 직사각형 4개가 붙어 정사각형이 되는 패턴이 엇갈려 붙어 있었는데, 입구부터 안쪽 방까지의 타일 마감은 딱 떨어지는데 반해 창문이 있는 양옆 벽은 마감이 맞지 않았다. 건물을 지은 후 동선 흐름을 기준 삼아 마감재를 제작한 것이 아닐까 싶다.
벽면을 둘러싼 6개의 진열장은 창문 사이, 문부터 벽까지의 가로폭과 딱 맞아떨어지는 것으로 보아 건물을 지은 뒤 그에 맞는 사이즈로 개별 제작한 것 같았다. 무릎 아래 정도 높이까지는 미닫이 문이 달린 나무 받침대가 있고, 그 위는 유리벽으로 되어 있어 작품을 전시할 수 있는 구조였다. 미닫이 문 안쪽에는 간단한 보수, 처리용 물품들이 들지 않았을까? 유리장 위쪽에는 녹슨 액자걸이가 5개 있었고 천장 부분은 별다른 장식 없이 나무로 막혀 있었다. 유리장 오른쪽에는 열쇠 구멍과 둥근 손잡이가 있어 여닫을 수 있게 되어있었는데, 어렴풋이 세월의 고풍스러움이 느껴지는 모양새였다.
전시실 가운데에는 작품을 눕혀 감상하는 장식장도 하나 있었는데, 이것은 위아래로 뚜껑을 여닫고 열쇠로 잠그는 방식이었다. 이후 2층에서 스탭 분께 들은 바로는 가운데 장식장은 나머지 장식장들과 형태도 다르고 제작 관련 정보가 전무하다고 하셨는데, 사실 차이점을 발견하지는 못했다. 다시 보고 싶었지만 재관람이 되는지 모르겠어서 다시 살펴보지 못하고 나온 것이 조금 아쉽다.
창문은 이중창이 아니라 아예 다른 형태의 창문이 안팎으로 붙어있는 것이 독특했다. 먼저 안쪽 창은 2~3센티쯤 되는 철 프레임에 회 푸른색 페인트 도장을 했다. 정사각형 유리 5개가 세로로 붙은 기다란 창이었는데, 이 유리창은 안을 향해 열렸다. 바깥쪽의 철로 된 창문 덮개는 바깥을 향해 열렸는데, 창문 덮개에는 덮개를 열어놨을 때 닫히지 않도록 고정하는 대가 있었다. 얇은 철판 3장을 덧대 만들어 철판 끄트머리에 못을 박아놓은 흔적이 있었는데, 1층이다 보니 도난을 방지하려는 목적이었던 것 같다. 철판을 여러 장 덧댄 모습에서 보물을 아끼는 간송의 애정이 보였다.
이렇게 1층 전시실을 하나하나 뜯어보고 난 후, 2층으로 올라가기 전 마지막으로 공간을 훑어보았다. 바닥과 벽을 잇는 걸레받이는 물론이고 천장에 있는 몇 개의 배관 마감, 안쪽 방의 문에 있는 나무 창살까지 꺾이는 부분마다 몰딩이 되어 있어 상당히 공들여 지은 건물이라는 점이 느껴졌다. 처음 방문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보는 이 장면이 마지막인가, 하는 아쉬운 감정을 느끼며 2층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