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송미술관을 거닐며 [2]

간송미술관 《보화수보》

by Haim 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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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계단

2층으로 가는 계단은 이탈리아에서 수입한 흰색과 회색 대리석으로 제작되어 있어 고급스러운 분위기가 묻어났다. 그중에서도 계단 난간이 시작되는 기둥이 굉장히 두터워 웅장한 기운을 느끼게 했다. 계단참에는 고전적인 장식의 벽부등이 달려 있었고, 이곳의 창문은 1층 전시실의 것과 크기는 같지만 세로 4칸으로 된 들창이었다. 비가 들이치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을 것 같다. 1층 전시실과 리 창틀이 외부와 직접 마주해서 그런지, 1층 창문에 비해 심하게 마모되고 덩굴이 창틀을 파고든 모습이 조금 안타까웠다. 2층으로 올라오면 왼쪽에는 낡은 히터, 정면에는 다른 곳으로 이어지는 문이 닫혀 있고, 오른쪽으로 돌면 1층과 다르게 햇살 가득한 전시실로 들어갈 수 있었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4. 2층 전시실

전시실 입구의 진열장에는 1971년부터 선별된 간송미술관 전시 도록이 놓여 있는데, 정사각형의 도록 형태가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어 미술관이 가진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도록도 도록이지만 진열장의 형태가 굉장히 독특했는데, 나무로 짜인 장은 로코코스러운 방울방울의 프레임으로 마감한 반면 도록을 받치는 유리 받침대는 메카닉한 파이프 지지대가 받치고 있었다. 전혀 다른 느낌의 양식이 공존하는 독특한 장이었다.

도록 진열장


2층 전시실에는 유물들이 모두 수장고로 이동되어 비어있는 진열장만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열심히 메모하고 관찰하고 있으니 스탭분께서 먼저 다가와 자세히 설명해주셔서 훨씬 수월하게 감상할 수 있었다. 말씀에 따르면 2층은 비상등 조명, 창문, 조명 외에는 모든 것이 1938년 원형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 1층과 같은 바닥에 같은 창문, 같은 조명이 일정한 간격으로 놓여 있지만 면적은 2배 정도 되고, 창문 덮개가 없어 큰 창으로 햇살이 그대로 들어와 자연광만으로도 실내가 상당히 밝았다.

2층 전시실 전경

바닥 나무 타일은 인도네시아에서 수입해온 것이고, 진열장은 일본에 의뢰했으나 작업을 맡은 중국인이 중국에서 화류 나무를 수입해 제작한 것이라고 한다. 굳이 화류 나무를 사용한 이유는 오랜 세월을 버티기 위함이었다. 전시장 한편에 있는 화려한 장식의 검은색 나무 테이블은 나무가 긴 시간 수축팽창을 반복하며 여기저기 부서져 있었다. 그러나 화류 나무로 만든 장식장은 뒤틀린 곳 없이 견고하게 유지되고 있었다. 게다가 진열장은 4개 다리의 테이블에 홈이 파여있고 그 홈에 유리장을 얹을 수 있게 제작되어 다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실용성까지 갖추고 있었다. 진열장 손잡이의 장식과 다리를 장식한 곡선 조각들도 인상적이었는데, 이 장식들은 용, 식물 등 화마를 막고 생명력을 뜻하는 것을 사용했다고 한다.

[좌, 중]화류 나무 진열장, [우] 부서진 테이블

화마를 막기 위한 의미는 창문에서도 볼 수 있었다. 창문은 1층과 같은 크기지만 일반 유리가 아닌 육각형 모양의 망입 유리로 되어있었다. 육각형의 귀갑문은 거북이 등껍질이고, 거북이는 물에 사는 것이니 화마를 막는 의미가 담겨있는 것이다. 바닥과 진열장 모두 나무로 된 미술관이니만큼 화재에 각별히 주의했던 것이 느껴진다. 보통 격자형 망입 유리가 많고 육각형 모양은 본 기억이 없었는데, 과연 여러 창문들 중 입구에 있는 2개의 창문만 육각형으로 되어 있고 나머지 창문들은 격자형으로 되어 있었다. 그 이유는 60년대에 창문 보존처리를 할 때 육각형 망입 유리가 없서 어쩔 수 없이 격자형으로 교체했다고 한다. 래의 유리는 표면에도 세로결이 있었만 이런 류의 제품도 없었던 것인지 격자형 무늬대로 볼록하게 튀어나온 유리를 사용하고 있었다. 창문에 관해 스탭 분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 궁금증이 거의 다 풀렸을 때쯤 무늬가 있는 창문이 창문 덮개 대신 유물을 자외선으로부터 보호하는 역할이 아닐지 추측해보았더니, 내 의견에 공감해주시면서도 방범을 위한 목적이었다고도 알려주셨다.

[좌]1938년의 육각 망입 유리, [우]1960년대의 격자 망입 유리
[좌]1938년의 육각 망입 유리, [우]1960년대의 격자 망입 유리.


마지막으로, 설명 중 가장 놀랐던 점은 천장의 조명에 관한 것이었다. 원래는 지금 걸려있는 흰색 플라스틱 구가 아니라 투명하고 더 큰 유리구였다고 한다. 광원이 직접 눈에 들어오는 것은 좀 눈이 아프겠지만, 구 자체가 장식적인 요소가 되어 유물이 없더라도 공간만으로 드라마틱한 느낌이 들었을 것 같았다. 특히 지금으로부터 80년도 더 이전이면 지금처럼 조명이 주변에 풍부하지 않았을 테니 그 효과가 배가 되었을 것이다. 우리 눈에 보화각은 신경 써서 지은 옛 유산이지만, '葆華閣 [보화각: 빛나는 보배를 모아두는 집]'이라는 이름 그대로 당시의 보화각은 유물과 건축이 빛을 내는 조선 문화의 고귀한 안식처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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