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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im Jung Oct 20. 2022

'사랑'에 '진실'을 더한 미하엘 엔데

미하엘 엔데 『끝없는 이야기』 독후감

트레바리 3회 차 책인 『모모』는 내 삶에 적용할 수 있는 교훈이 많은 책이었다. 그래서 작가의 다른 책도 시도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 작가의 후속작인 『끝없는 이야기』도 읽었다. 417쪽이나 되는 『모모』도 어린이 문학이라기에는 의문스러운데 『끝없는 이야기』는 무려 702쪽이나 된다. 없는 시간을 쪼개 읽느라 책을 제대로 음미하지 못한 것 같아 아쉽지만, 그래도 한 권의 책에서 시작해 다른 책으로 이어나가는 경험이 고무적이었다.



[줄거리]

책은 인간 세계에서 무척 열등한 취급을 받으며 사는  소년이 우연히 고서점에서 책을 훔치게 되고, 책을 읽다가  안의 환상 세계로 빨려 들어가면서 다시 원래 세계로 돌아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여정을 담고 있다.

     바스티안 발타자르 북스라는 한 초등학생은 못생기고 뚱뚱하고 공부도 못해서 여러모로 주눅 들어 있는 아이다. 바스티안의 유일한 재능이자 취미는 책을 무척 좋아하고, 또 책을 읽으며 쌓은 상상력으로 주변 사물들에게 이름을 지으며 노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 가는 길에 우연히 고서점에 들어가게 된 바스티안은 '끝없는 이야기'라는 책에 이끌려 그만 책을 훔치게 되고, 평소에 쌓여온 열등감과 도둑으로 잡힐 것이라는 두려움에 그만 학교 위층  창고에 들어가 절대 나오지 않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바스티안은 창고에서 책을 읽기 시작한다.

     책에서는 환상 세계의 주인인 어린 여왕이 알 수 없는 병에 걸리고, 세계 곳곳에서 존재가 사라지는 '무(無)' 현상이 생긴다. 여왕은 '아트레유'라는 소년에게 해답을 찾아오라 명하고, 아트레유는 각종 모험 끝에 환상 세계가 아닌 인간 세계에 사는 사람이 여왕에게 새 이름을 지어주어야만 여왕의 병이 낫는다는 것을 알아낸다. 아트레유는 이 사실을 여왕에게 전달하지만 여왕은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단지 그녀는 자신에게 이름을 지어줄 구원자가 어서 환상 세계로 오기만을 기다리며 아트레유가 모험을 떠나 환상 세계가 처한 상황과 문제의 해답을 알아내는 과정을 구원자에게 보여준 것이다. 그러나 바스티안은 자신이 해낼 수 없다고 생각하며 끝끝내 여왕의 이름을 부르지 않고, 결국 여왕은 환상 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기록하는 방랑산의 노인에게 찾아가 지금까지 했던 이야기들을 끝없이 반복한다. 끝없이 반복되는 이야기에 더 이상 나서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판단한 바스티안은 여왕의 이름을 부르며 환상 세계로 간다.

     바스티안이 여왕의 이름을 부름으로써 환상 세계는 새롭게 창조되고, 여왕은 바스티안에게 진심으로 소원을 빌 때마다 그것이 실현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곧장 자신의 권한을 대신할 수 있는 보물을 주고는 사라진다. 환상 세계 주민들은 바스티안을 '구원자'라고 부르며 칭송하고, 바스티안은 전과 다른 잘생기고 화려한 모습에 용기와 지혜, 강인한 힘까지 갖춘 이상적인 모습이 되어간다. 그러나 바스티안이 소원을 빌 때마다 바스티안은 자신의 중요한 기억들을 하나씩 잃게 된다. 바스티안이 진정으로 환상 세계를 구하기 위해서는 인간 세계와 환상 세계를 오가는 사람들이 계속 존재해야 하기에, 바스티안은 인간 세계로 돌아가 자신의 깨달음을 나누며 살아가야 한다. 그러나 바스티안은 우울한 현실과 다르게 자신이 인정받는 환상 세계를 떠나고 싶어 하지 않고, 아트레유는 그런 바스티안에게 계속 조언을 하고 바른 길로 이끌려 하지만 바스티안은 충고를 듣지 않고 아트레유를 내치기까지 한다. 그리고 사라진 어린 여왕을 대신해 어린 황제가 되려 한 바스티안은 즉위식 날 아트레유가 일으킨 전쟁 때문에 즉위하지 못한 채 환상 세계를 떠돌게 된다.

     그러던 중 바스티안은 늙은 황제들의 도시에 도착하게 되고, 모든 주민들이 생각을 잃어버린 것처럼 기괴한 행동을 하는 것을 보다가 그곳에 있던 원숭이와 마주친다. 원숭이는 이 주민들이 모두 바스티안처럼 구원자로 환상 세계에 왔다가, 자신의 기억을 모두 잃어버려 원래 세계로 돌아가지 못하고 이곳에 떠도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바스티안은 자신이 빨리 원래 세계로 돌아가야 함을 깨닫고 원숭이의 조언에 따라 인간 세계로 돌아가기 위해 길을 떠난다. 그 와중에 만난 아이우올라 부인의 집에서 머무르며 바스티안은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 있기를 소원한다. 아이우올라 부인은 바스티안이 환상 세계 경계에 있는 생명의 물을 마시면 소원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바스티안은 다시 길을 떠나지만 이전에 자신이 새로이 창조한 생명체들에 의해 마지막 기억을 잃고, 그 앞에 나타난 아트레유에게 여왕으로부터 받은 보물을 돌려준다. 그 순간 보물에서 광채가 나며 바스티안과 아트레유를 생명의 물로 데려다주고, 생명의 물을 마신 바스티안은 인간 세계로 돌아온다. 생명의 물을 마시며 자신의 참모습을 인정하고 사랑할 줄 알게 된 바스티안은 그 마음을 가지고 아버지와 고서점 주인을 포함한 주변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풀며 살아간다.



[리뷰]

책 속 세계관은 두 세계로 구성된다. 인간 세계의 사람들이 자면서 꿈을 꾸면 개중에 사람이 기억하지 못하는 대다수의 기억들이 서로서로 쌓인다. 이 기억들의 지층을 기반으로 그 위에 환상 세계가 존재한다. 환상 세계는 지배자인 어린 여왕과 수많은 종족의 주민들로 구성되는데, 이곳은 사람의 기억과 상상으로 구축된 세계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꿈과 상상을 통해 환상 세계를 오고 가지 않으면 유지될 수 없다. 그러나 『끝없는 이야기』가 출간된 1970년대 유럽은 사회경제적인 위기로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가치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고 있었다. 사람들이 더 이상 환상 세계로 가지 않자 어린 여왕이 병에 걸리고, 환상 세계 곳곳에서는 존재가 사라지는 '무(無)'가 진행되었다. 무(無)에 흡수된 환상 세계의 피조물들은 그들의 본모습을 잃고 거짓과 악의 모습으로 인간 세계에 흩어지게 되고, 이로 인해 사람들은 꿈과 상상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두 세계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어느 한쪽이 나빠지면 다른 쪽도 나빠지고, 한쪽이 좋아지면 다른 쪽도 좋아진다. 이 관계를 통해 작가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중요한 진실과 사랑의 가치를 사람들에게 전파한다. 두 세계의 긍정적인 순환은 주인공 바스티안이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그 모습 그대로 사랑함으로써 시작된다. 변화의 시작은 자기 자신에게 있는 것이다.

     네가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만을 원해야 한다.
     네 이야기에 속한 것만을 가능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네가 진실로 원한 것만이 네 이야기에 속할 수 있다.

     위 문장은 바스티안이 인간 세계로 돌아가기 위해 지켜야 하는 원칙들이다. 명제 추리 같기도 한 이 문장들 역시 우리 자신의 마음에 귀 기울이고 스스로 변화하기를 바라는 작가의 마음을 담고 있다. 작가는 구원자 바스티안이 두 세계를 온전히 지키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설정함으로써,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아끼는 마음이 모여야 결국은 사회가 바뀔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p.272. 올바른 이름만이 모든 존재와 사물들에 실재성을 준단다. 틀린 이름은 모든 것을 비현실적으로 만들지. 그것이 거짓이 하는 일이다.

     어린 여왕이 바스티안으로부터 새 이름을 얻고 건강해진 뒤 했던 말이다. 존재의 진실성은 올바른 이름을 통해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이름이야말로 그 존재의 참된 모습을 볼 수 있는 중요한 말이며, 그래서 그것을 잘 가꾸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p.603 하지만 바스티안은 개인이고 싶었고 다른 모두와 똑같은 한 명이 아니라 누군가가 되고 싶었다. 바로 자기 모습 그대로 사랑받고 싶었다. 위스칼나리의 공동체에는 조화는 있었지만 사랑은 없었다.

     공동체 속의 개인이 존재할 뿐, 개인으로서의 개인은 없는 마을 위스칼나리에서 바스티안이 깨달은 것이다. 바스티안은 마을의 구성원이 죽어도 다른 주민이 그 자리를 채움으로써 그 누구도 슬퍼하지 않는 모습을 보고 자신의 존재가 존재로서 인정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끝없는 이야기』에는 아름다운 종족들도 많이 등장하지만 그만큼 이상하고 섬뜩한 종족들도 등장하는데, 이 위스칼나리 종족이 그렇다. 위스칼나리 마을은 사회주의에 대한 작가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처럼 작가는 『끝없는 이야기』를 통해 사람들이 '진실'과 '사랑'을 마음속에 간직하기를 바란다. 직전에 읽은 『모모』에서는 사람들과 함께 시간, 즉 삶을 함께 보냄으로써 '사랑'을 이야기했는데, 후속작인 『끝없는 이야기』에서는 '진실'이라는 가치를 더해 사랑해야 하는 존재들에 대한 구체성이 생겼다. 진실과 사랑이라는 단어는 정말 많이 쓰이기도 하지만 그렇기에 말이 가진 참된 의미가 약해진 측면도 있다. 특히나 요즘처럼 진실과 사랑을 찾기 어려운 사회에서 쓰이는 경우라면 더욱 그렇다. 이런 시기에 미하엘 엔데의 두 책을 통해  단어의 무게를 깊이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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