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바리 3회 차 모임의 책은 미하엘 엔데의 『모모』였다. 이 책은 한국에서도 초등학생 필독서로 유명해서 무척 익숙하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책을 읽어보니 시간과 삶을 대하는 태도에 관해 고민해볼 수 있는 철학적인 책이었다. 이토록 철학적인 내용을 어린이도 이해할 수 있는 동화의 문장으로 풀어낸 것이 무척 인상적이었고, 모임이 끝난 뒤에는 작가의 후속작인 『끝없는 이야기』도 시간을 내어 읽을 정도였다. 작가의 다른 책을 찾아 읽게 되고, 책에서도 내 삶에 바로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볼 수 있어 '이참에 읽자' 클럽에서 읽은 책 중 가장 독서경험이 풍부하게 이루어진 책이었다.
[줄거리]
어린 소녀 모모는 마을 근처 원형극장에 살면서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마을 사람들은 모모를 돌보며 행복한 날을 보낸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마을 사람들이 자신을 찾아오지 않고, 남아있는 친구들을 통해 도시에 돌아다니는 회색 신사들이 사람들의 마음에서 여유를 없애버렸다는 것을 알게 된다. 모모와 친구들은 회색 신사를 주시하면서 이들이 사람들의 시간을 훔쳐 자신의 목숨을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엿듣는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이 회색 신사로부터 시간을 빼앗기지 않도록 시위를 하지만, 어른들은 이것이 그저 아이들의 장난이라 생각해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으며 아이들과 모모는 오히려 회색 신사들의 표적이 된다.
회색 신사들에게 쫓기던 모모의 앞에 카시오페이아라는 거북이가 나타나고, 카시오페이아는 모모를 시간의 경계 너머에 있는 호라 박사의 집으로 데려간다. 이곳에서 모모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저마다 시간의 꽃이 있고, 이 꽃이 사람의 마음 그 자체인데 회색 신사들이 이 시간의 꽃을 훔쳐서 자신들의 삶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또한 호라 박사로부터 사람들에게 시간을 돌려줄 수 있는 방법을 듣게 되고, 카시오페이아와 모모는 마지막 모험을 떠나서 회색 신사들이 뺏은 사람들의 시간을 찾아 사람들의 마음에 다시 여유를 되찾아준다.
[1970년의 회색 신사, 2022년의 투명 신사]
이번 책을 읽으면서 몇 년 전 읽었던 『투명사회』라는 철학책이 떠올랐다. 『모모』의 세계관에 빗대어 이 책을 요약하자면, 사람들은 서로 간에 일정한 거리가 있어야 각자의 마음을 지킬 수 있다. 그런데 기술이 발달하며 모든 것이 투명하게 공유됨으로써 사람들 사이의 거리가 사라져 버렸고, 이것이 결국 마음을 내 것도 네 것도 아닌 무(無)의 상태로 만들어 개인이 불안 상태에 빠졌다는 내용이다. 모모가 살던 도시에서는 회색 신사라는 이름의 사회적 규율이 사람들을 감시했지만, 이제는 SNS와 인터넷을 기반으로 개개인이 서로를 감시한다. 1970년의 회색 신사는 이제 투명 신사가 된 것이다. 그들은 더욱 교묘하고 강력해져서 맨눈으로 발견하기조차 힘들다.
회색 신사는 사람들의 마음을 부추겨 그 문을 열고 들어가서 시간의 꽃을 훔친다. 그 죽은 시간을 연료 삼아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도 침투한다. 반면, 투명 신사는 시간의 꽃을 훔치지 않는다. 그들은 마음속으로 들어가 시간의 꽃 위에 눌러앉는다. 투명한 몸뚱이에 덮인 시간의 꽃은 점차 말라가며 본래의 빛을 뿜어내지 못하고 오염된 빛을 뿜어낸다. 그리고 그 빛이 우리의 진짜 마음인 양 우리 자신을 착각하게 만든다. 투명 신사는 사람들을 영업하며 돌아다닐 필요 없이 시간의 꽃을 숙주 삼아 사람들의 마음속에 편히 머물면 그만이다. 신사들의 집회는 숙주들을 통해 이루어진다. 사람들은 가상공간에 죽은 시간을 공유하고, 우리는 죽은 시간을 공유하면서 진짜 시간을 나누고 있다고 믿는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투명 신사들을 마음속에 품고 있다. 우리 마음의 일부이기도 한 그들로부터 완전히 우리를 지켜내는 것은 어렵다. 대신, 우리 마음속의 아주 작은 부분만 그들에게 내어주는 것은 가능하다. 타인과의 연결로부터 거리를 두는 것이다. 투명 신사들은 다른 숙주와의 연결로 그들의 세계를 더욱 공고히 다지기 때문에 숙주가 연결을 끊으면 어서 다시 연결하기를 재촉한다. 그것이 우리 마음의 불안감, 두려움 같은 감정이다. 투명 신사의 이러한 유혹을 참아내고 자기만의 영역을 지킬수록 시간의 꽃은 더 많은 잎을 피워내고, 그들의 몸뚱이로 덮지 못하는 빈틈이 생긴다. 그렇게 시간의 꽃은 점차 제빛을 뿜어낼 수 있게 된다. 이렇게 투명 신사들에게 시간의 꽃을 지배당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머물 수 있는 꽃잎의 일부분을 내어줌으로써, 우리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면서도 마음을 지킬 수 있다.
『모모』는 현대 사회를 비판하는 철학책들과 다르지 않은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그것을 각종 증거 자료와 수치 같은 객관적인 언어가 아닌 아름다운 동화 이야기로 풀어낸다. 우리는 이야기 속 상황을 현실에 대입해 지금의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실마리를 얻는다. 이번 책은 그런 점에서 사람들이 문학을 읽는 이유를 진심으로 느낄 수 있었던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