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례허식이란 말의 의미처럼 우린 겉만 과도하게 꾸미는 걸 비판하는 경향이 있다. 본질은 내용이며 형식은 껍질이라는 이분법도 익숙한데, 사실 바스티유데이에 샹젤리제에서 매년 열리는 행사 중계를 보면 과도한 의식이 갖는, 그 자체로서의 힘을 느낄 수 있다. 행사의 규모나 거기에 동원된 인원을 생각하면 우린 아마 혈세 낭비 비판이 나왔겠지만. 프랑스 왕실의 전성기인 부르봉 왕가의 삶은 거의 모든 게 연극이었으며, 보여주기는 그들의 주요한 통치 기술이었다. (루이 14세가 아침에 삶은 계란 먹는 걸 보는 건 당시 백성들의 즐거운 오락이었다) 그렇게 이어져 내려온 프랑스의 전통이 허례허식의 끝판왕 명품산업을 가져왔고, 세계 최고의 행사와 공연 수준을 자랑하게 됐다. 오늘 운 좋게 상드마르스에서 열린 파리 콘서트를 아내와 갔다 왔다. 행사의 피날레는 에펠탑에서 펼쳐지는 불꽃놀이. 이 정도의 화려함이라면 대규모 인파를 뚫고 귀가하는 피로함은 응당 감수해야 할 입장료가 아닐까 싶어, 내년엔 아이들을 끌고 와야겠다고 결심했다.(비난을 감수하고) 허례허식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프랑스인들이 이날만큼은 좀 존경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