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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스카토 Aug 12. 2023

0811@Fondation Louis Vuitton


앤디 워홀은 바스키아의 예술적 스승이자 영감의 원천이었을까, 아니면 젊은 예술가의 에너지를 착취한 영리한 예술산업 비즈니스맨였을까. 최상의 큐레이션을 자랑하는, 믿고 보는 루이뷔통재단의 기획전, <워홀 ×바스키아, 네 개의 손>에서 그 질문의 답을 찾아봤다. 알려졌듯, 두 사람은 예술가로 서로의 재능을 인정했고, 말 그대로 4개의 손으로 함께 작업했다. 보통 워홀이 자신의 트레이드마크를 캔버스에 찍어놓으면 바스키아가 그 위에 본인의 작업을 더하는 식이었다. 팝아트기에 가능한 콜라보였고, 그 뒤에 키스 헤링, 프란체스코 클레멘트 등도 협업에 조인한다. 이 모든 기획의 동력은 앤디 워홀의 예술가적 명성였음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작품이 뒤로 갈수록, 워홀은 상표나 잡지 이미지를 찍어놓고, 바스키아는 반복된 생산물에 예술가적 변주를 주고 있었다. 팝아트의 본질상 누가 더 많이 그렸냐는 의미 없는 질문이고, 실제로 콜라보가 정점에 달했을 땐, 어디가 워홀이고 어디가 바스키아인지 분간이 어려울 경지에 도달하기도 했다지만, 결국 바스키아는 워홀을 떠난다. 너바나의 커트 코베인처럼 갑작스러운 유명세와 인기가 당혹스럽기도 했겠지만, 이 영리한 늙은 예술가가 자신의 창작열을 뽑아먹고 있음을 느껴서가 아녔을까 싶다. 물론 워홀이 죽고 난 뒤, 충격을 받았던 바스키아도 27살 헤로인 중독으로 사망한 걸 보면, 세평과 달리 바스키아 본인은 워홀을 자신의 예술가적 아버지로 생각하진 않았을까 싶기도하고.


어디가 워홀이고 어디가 바스키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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