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하고 반복적인 업무를 견디는 방법

보후밀 흐라발 <너무 시끄러운 고독>

by 알스카토

군대에 있을 때, 열심히 헌법을 공부했다. 딱히 재밌거나 흥미롭진 않았다. 다만 집중할 수 있었다. 헌법의 조문을 읽고, 조문 해설을 이해할 때면 세상과 잠시 분리되는 기분이 들었다. 군대는 역시 괴로운 곳이었다. 원치 않게 끌려간 곳, 군에서 보낸 시간의 절반은 무의미했고, 나머지 절반은 고통스러웠다. 그때 일과가 끝나면 헌법 공부를 시작했다. 고시생처럼 몰입했다. '내 하루의 핵심은 헌법을 공부하는 일과 후의 시간이다. 반대로 군 행정 문서를 처리해야 하는 반복적인 군 업무는 부차적인 일정이다.' 하루를 바라보는 프레임을 이렇게 새롭게 정의하고 나니, 군대의 무의미한 시간이 조금 견딜만해졌다.


물론 나의 헌법 공부는 6개월을 넘지 못했다. 고통스러운 일상에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고자 했지만, 헌법 조문의 서사는 그다지 적합하지 않았다. 좀 더 낭만적이고 드라마적인 프레임을 만들었다면 좀 더 오래 버틸 수 있을지 몰랐다. <너무 시끄러운 고독> 속 한탸처럼. 한탸의 업무도 군대 뺑뺑이 못지않게 힘들고 무료하다. ‘삼십오 년째 나는 폐지 더미 속에서 일하고 있다.’(P.9) 폐지 압축 업무가 한탸의 일이지만, 그는 자신의 반복적인 노동 과정을 ‘근사한 문장을 통째로 쪼아 사탕처럼 빨아먹고, 작은 잔에 든 리큐어처럼 홀짝대며 음미한다.’(P.10)고 표현한다. 그리하여 한탸의 열악한 지하실은 유서 깊은 왕국으로 재탄생한다.


삼십 오 년째 나는 책과 폐지를 꾸려왔고, 십오 대에 걸쳐 사람들이 글을 읽고 써온 나라에서 살고 있다. 형언할 수 없는 기쁨과 그보다 더 큰 슬픔이 담긴 생각과 이미지를 머릿속에 차근차근 쌓아가는 습관과 광기가 항시 존재해온 유서 깊은 왕국에 나는 거주한다. 단단히 동여맨 한 보따리의 개념에 기꺼이 목숨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살고 있다. (P.11)


한탸의 폐지 압축 노동은 숨겨진 보물, 즉 좋은 책을 찾는 탐사의 과정이다. 가끔 유명 화가의 복제화가 쏟아질 때면, 자신의 책 수집함을 아름답게 꾸밀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의 눈엔 쓰레기 꾸러미겠지만, 한탸의 눈엔 귀중한 유물이 숨겨진 보물 창고다. ‘이 지하실에서 나 자신의 현존만큼이나 놀라운 현존을 과시하는 이 책들에게 나는 작고 아늑한 보금자리를 만들어준다.’ (P.15) 한탸는 카뮈가 이야기했던 시지프스다. 그는 굴러 떨어질 수밖에 없는 돌을 끊임없이 올려야 하는 노동자에서 해방돼, 돌을 굴러 올리며 바닥에 한 폭의 그림을 그리는 창작자가 됐다.


이야기는 의미의 원천이다. 내가 찾아낸 헌법 공부의 즐거움은 한탸의 책 사냥꾼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조악한 서사였다. 결국 무의미에 의미를 부여할 이야기가 얼마나 근사한지가 핵심이다. 한탸는 어머니의 유해 앞에서 칼 샌드버그의 시구를 떠올렸다. ‘사람에게서 남는 건 성냥 한 갑을 만들 만큼의 인燐과 사형수 한 명을 목매달 못 정도 되는 철이 전부라는.’(P.25) 인간이라는 육체의 덩어리는 이토록 무용하지만, 칸트는 “나의 생각을 언제나 더 크고 새로운 감탄으로 차오르게 하는 두 가지가 있다...... 내 머리 위의 별이 총총한 하늘과, 내 마음속에 살아 있는 도덕률이다.”라는 말로 인간의 몸에 영원불멸한 의미를 덧입혔다. 역시 칸트다.


문제는 오늘날이 효율성 시대라는 점이다. 이야기를 통해 의미를 부과하는 작업은 효율성과 상관없다. 오히려 한탸처럼 경쟁에 뒤떨어질 수 있다. (폐지 압축이란 노동 집중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으니.) 한탸는 새로 개발된 초대형 폐지 압착기 앞에서 절망한다. 얼마나 짧은 시간에 많은 양의 폐지를 압착할 것인가란 질문은 블랙홀처럼 모든 사소한 행복을 빨아들인다. 버려진 책을 찾아내는 사소한 기쁨 따윈 살아남기 어렵다. 한탸도 시대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했다. ‘나는 보수를 받고 일하는 사람일 뿐이었다. 예술과 창조, 미의 창출은 꿈도 꿀 수 없었다.’(P.99) 효율이 이야기를 압사시켰다. 시시프스는 21세기 자본주의에서 살 수 없다.


나는 새로운 삶에 절대로 적응할 수 없을 것이었다. 코페르니쿠스가 지구가 더는 세상의 중심이 아니라는 걸 밝혀내자 대거 자살을 감행한 그 모든 수도사들처럼.......
삼십오 년을 잉크와 얼룩 속에서 일 해온 내가, 더럽고 냄새나는 폐지 더미 속에서 선물과도 같은 멋진 책 한 권을 찾아낼지 모른다는 희망으로 매 순간을 살아온 내가, 이제 비인간적인 백색 꾸러미들을 만들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되다니! (P.106)


한탸의 죽음과 함께, 한탸의 방식은 유효성이 만료됐다. 대신 프란티크 슈투름 방식이 대안이 될 수 있겠다. 난 군대에서 스스로를 ‘헌법 공부자’라고 생각했다. 일과 후에 군인 아르바이트를 하는 헌법 공부자. 이는 한탸의 책 사냥꾼 서사에 못 미치지만, 이야기의 세계와 현실을 분리시켜줄 수 있었다. 한탸가 찾아낸 버려진 책의 고객이었던 프란티크 슈투름은 성삼위일체 성당의 성기 관리 책임자지만, 프란티크 슈투름 미생물 연구소를 설립해 틈나는 대로 비행 관련 책자를 탐독했다. 의미를 찾을 수 없는 반복적인 노동에 좌절하기보다 아무 연구소나 설립해, 그곳에서 의미를 찾아내는 게 대충 프란티크 슈트름의 방식이다. 일종의 미봉책이다.


흐라발이 창조한 주인공 한탸는 너무 시끄러운 고독 속에 산다. 물리적으로 고독하자만, 그의 내면 목소리는 쉴 새 없이 떠든다. 시대의 책 속에서 내면의 목소리가 만들어낸 이야기에 둘러 쌓여있을 수 있다면, 우리가 처한 상황이 아무리 작고 초라하더라도 누구나 한탸처럼 무모한 돈키호테가 될 수 있다. ‘루테의 기사도, 엥겔뮐러의 비평도 끝장난 시대’에 <너무 시끄러운 고독>의 한탸는 오늘날 직장인이 도달할 수 없는 낭만 히어로다.


내가 혼자인 건 오로지 생각들로 조밀하게 채워진 고독 속에 살기 위해서다. 어찌 보면 나는 영원과 무한을 추구하는 돈키호테다. 영원과 무한도 나 같은 사람들은 당해낼 재간이 없을 테지. (P.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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