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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 상처받지 않는 방법

존 르 카레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

by 알스카토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모스트 원티드 맨> 등 영화에서 본 존 르 카레의 스파이는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스파이, 그러니까 제임스 본드나 이던 헌트와 다르다. 존 르 카레의 스파이는 직장인이다. 그저 업무 내용이 일반 직업과 조금 다를 뿐. 초인적인 능력으로 지구를 구하는 대신, 엄청난 서류와 행정 업무에 허덕이면서도, 직장 내 실존을 고민하는 스파이의 모습은 오늘날의 화이트 컬러(그렇다, 블루 컬러가 아니다) 노동자의 모습과 거의 일치한다. 존 르 카레에게 작가적 명성을 안겨다 준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의 리머스도 전형적인 르 카레 스파이다.


직업적으로, 스파이 업무 강도는 매우 세다. 리머스는 업무 과정에서 사회적 명성을 잃고, 알코올 중독자에 파산자로 전락한다. 심지어 사람을 때리고 교도소에 가는데, 이 모든 일이 업무의 일환이다. 교도소에서 나온 리머스를 보고 그의 상사는 ‘감옥은 어떻던가’라고 묻는데, 리머스는 이 모습을 ‘마치 휴가를 즐겁게 보냈느냐고 묻고 있는 듯했다.’(P.73)고 묘사한다. 스파이는 자신의 목숨을 걸어야 할 만큼 어려운 임무를 수행하지만, 조직 입장에서는 그저 목표 달성을 위한 소모품에 불과하다. 조직과 노동자 사이 긴장 관계가 극명하게 드러난다는 점에서, 스파이의 직업적 고뇌는 모든 화이트 컬러 노동자의 심금을 울린다.


정보부의 활동에는 한 가지 도덕률이 있다. 결과가 모든 것을 정당화해 준다는 것이다. (P.19)


이 도덕률은 모든 조직에 해당된다. 법적 인격체인 조직의 최우선 목표는 생존이다. 결과가 모든 걸 정당화해주는 까닭이다. 조직이 생존해야, 조직을 구성하고 있는 세포들, 즉 노동자도 생존할 수 있다. 문제는 조직이 생존하기 위해선 때로 노동자의 희생이 필요하단 점. 인간적으로는 딜레마적 상황이지만, 인격 없는 조직 입장에선 단순한 상황이다. 노동자 몇의 희생은 큰 문제가 아니다. ‘50만 명이 숙청당하는 것은 통계지만, 한 사람이 교통사고로 죽는 것은 국가적 비극이다’라는 스탈린의 조롱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한 명의 해고는 어렵지만 구조조정이란 이름의 대규모 해고는 통계다. 무자비한 생존 기계, 그게 바로 조직의 속성이다.


우리 일, 그러니까 우리와 당신의 일은 개인보다 전체가 중요하다는 이론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공산주의자가 첩보 기관을 제 팔의 일부로 생각하는 것도 그 때문이고, 당신네 정보부가 영국식 염치에 싸여 있는 것도 그 때문이지요. 개인에 대한 착취를 정당화할 수 있는 것은 집단의 요구뿐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P.166)


조직의 속성을 이해하지 못한 채, 조직을 인격화하고, 여기서 인간적 서운함과 실망을 느끼는 건 무의미한 짓이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조직에 배신감을 느끼는 건, 개인의 정체성과 조직의 정체성을 완전히 일치시켰기 때문이다. 소설 속 동독 공산당의 모습은 오늘날의 조직과 크게 다르지 않다. 공산당원은 당을 맹목적으로 추종한다. 당의 논리를 개인의 신념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당은 역사가 입증한 진리를 위해 존재한다. 때문에 당을 위한 개인의 희생은 진리를 위한 일이다. 즉, 진리란 이름으로 당의 신념과 나의 신념이 합일에 이르렀다. 이런 식으로 노동자는 조직의 신념을 개인화한다.


물론 오늘날의 많은 조직은 공산당만큼 낭만적이고 논리적인 목표를 제시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노동자가 자발적으로 조직의 목표와 논리를 체화하는 건, 노동의 고통을 줄이고, 더 성실하게 일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바로 이 지점에서 리머스는 반문한다. 리머스는 공산주의를 무찌르는 자유주의의 투사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훌륭한 스파이였다. (좋은 평가를 받았던 조직원이었다.) 그에겐 ‘무관심의 미덕’(P.185)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덕분에 그는 한 걸음 떨어져서 조직을 볼 수 있었고, 결과적으로 런던이 ‘자신을 이용해서 그 유대인을 죽이게 한 거’(P.303)란 사실을 깨닫고도 감정적으로 버틸 수 있었다.


기쁘군요. 그 점이 바로 당신의 장점이에요. 대단한 장점이죠. 무관심의 미덕 말입니다. 마음 한구석에는 적개심이 조금 있고, 저쪽 구석에는 자존심이 조금 있지만, 그건 아무것도 아니에요. 녹음기에서 나오는 소리가 조금 일그러지는 정도에 불과하죠. 당신은 객관적이에요. (P.185)


무관심의 미덕과 업무의 성실성은 공존 가능하다. 오히려 무관심의 미덕이 자신의 업무를 냉철하게 판단할 수 있도록 돕는다. 반대로 직업적 열정이 높은 업무 성과를 보장하는 것도 아니다. 오늘날을 사는 조직원에게 무관심의 미덕은 자신의 약한 자아를 보호하면서도 나쁘지 않은 업무 퍼포먼스를 선보일 수 있는 덕목이다. 물론 조직은 무관심의 미덕을 원치 않는다. 때문에 일에 열중하다 보면, 자연스레 조직의 논리를 흡수해 조직의 가치를 삶의 최우선에 둔다. 여기서 벗어나기 위해선 리머스가 발견한 것의 가치를 알아야 한다.


소녀의 몸은 바다를 향해 활 모양으로 젖혀졌다. 그 순간 리머스는 리즈가 준 게 무엇인지 깨달았다. 영국으로 돌아가게 되면 그것을 되찾아야 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하찮은 것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었다. 평범한 생활이 가치 있다는 믿음, 빵 부스러기를 종이 봉지에 넣고 해변으로 걸어가 갈매기들에게 던져 주는 소박함. 하찮은 것에 대한 이 관심은 리머스가 이제껏 가질 수 없었던 것이었다. (P.133)


바로 '하찮은 것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다. 리머스의 지적처럼 하찮은 것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갖게 되면, 무관심의 미덕은 자연스레 형성된다. 공과 사에 위계를 두고 사적 영역을 하찮은 것으로 돌리려는 무의식적 판단-지금 리머스도 그 무의식에 따라 개인적 행복에 ‘하찮음’이란 평가를 내리고 있다-을 경계해야 한다. 리머스는 하찮은 것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생각하며 여자 친구 리즈를 떠올렸다. 연애나 결혼은 결코 업무의 방해물이 아니다. 하찮은 것에 대한 관심과 애정의 출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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