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파로 잠시도 한가할 순간이 없는 몽마르트르 언덕 주변에서 유일하게 차분한 장소가 몽마르트르 묘지다. 특히 유명 예술가의 무덤이 많아 입구 앞에 관광객을 위한 지도가 있을 정도다. 삼총사의 알렉산더 뒤마, 소설가 스탕달과 무용수 바슬라프 나진스키 그리고 가수 달리다까지. 그중에서 가장 명당에 위치한 에밀 졸라의 무덤. 그 앞에 서니 더 궁금해졌다. 그는 세잔에게 왜 그랬을까. 어린 시절 파리서 액상프로방스로 전학 와 외톨이로 지내던 졸라를 도와준 사람이 화가 세잔이었다. 성인이 된 후 졸라는 은혜 갚는 까치가 되어, 집안의 반대로 화가가 되지 못하는 친구를 파리로 초청한다. 졸라는 미술계의 인싸로 인상주의 비평가로 활동중이었고, 당시 인상주의 합류는 성공의 지름길였다. 하지만 세잔은 인상주의가 자신의 지향점이 아님을 직감하고 있었다. 허나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친구가 졸라는 야속했나 보다. 내가 널 위해 이리 애를 쓰는데 왜 이리 반응이 없냐 같은 감정이었으려나. 졸라는 용기도 야심도 없는 화가를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을 썼고, 이게 본인 이야기임을 알아챈 세잔은 졸라와 절교를 선언하고 액상프로방스로 내려왔다. 무덤 앞 졸라의 흉상을 보며, 그는 무엇이 그렇게 조급했던 건지, 어째서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버렸는지 더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