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머니스트가 되는 방법

커트 보니것 <신의 축복이 있기를, 로즈워터 씨>

by 알스카토

'다스뵈이다'에 이어 '플란다스의 계'까지 등장했다. 다스의 주인은 누구인가란 의문이 조금씩 밝혀지고 있지만 착잡함이 앞선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아들 이시형 씨. 별 어려움 없이 40대 나이에 건실한 중견 기업의 주인이 될 수 있었다. 숨겨진 그의 근면성실노력이 있을지 모르지만, 너무 쉽게 올라간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세 아이를 혼자 키우던 21살 엄마가 만취해 담배 피우다 집에 불냈던 뉴스가 떠오른다. 화재로 세 아이는 모두 사망했다. 그녀의 삶은 이제 그 자체로 형벌이 되었다. 오죽 사는 게 힘들었으면 싶기도 하다. 두 인생의 갭은 너무 크다. 인간의 노력 여부가 그 정도로 차이 날 수는 없는 것이다.


세상을 뒤바꿔야 한다는 얘길 하는 게 아니다. 세상을 바꾼다고 뾰족한 수가 나오지 않는다. 인간의 본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사회주의는 몰락했고, 과도한 복지가 근로 의욕을 떨어트린다다는 자유주의자들의 지적이 완전히 틀리기만 한 것도 아니니. 물론 대안이 없다고 지금의 현실이 감춰지진 않는다. 소설도 대안을 제시하진 못한다. 그건 소설 밖의 영역일지 모른다. 대신 소설은 문제를 증폭시킨다. 이시형의 뉴스와 실화범이 된 어린 엄마의 뉴스를 마치 대리운전 스팸문자 보듯 무심하게 넘겨버려선 안 된다는 경각심을 일으키는 것처럼. 우리의 무심해진 양심을 건드린다. 커트 보네거트의 <신의 축복이 있기를, 로즈워터 씨>.


부자가 어떻게 돈을 벌었는지는 일단 잠시 제쳐두자. 주인공 엘리엇 로즈워터는 자신에게 떨어진 눈먼 행운이 그저 불편하다. 그의 선조는 ‘국세청 직원과 로즈워터 성이 붙지 않은 하이에나들이 군침을 흘리며 달려드는 것을 막기 위해’(P.11) 재단을 설립했지만, 엘리엇은 보네거트의 분신과도 같은 삼류 SF 작가 킬고어 트라우트를 사랑하고, 재단을 유지하는 덴 관심 없는 반체제적 인물이다. 그의 아버지는 ‘미합중국이 유토피아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자는 누구든 욕심 많고 게으르고 천벌을 받아야 마땅한 바보’(P.20)라고 생각하는 보수 자유경제 신봉자다. 엘리엇은 자신의 처지가 혼란스러워 무작정 시골마을 로즈워터읍으로 떠난다.


내 생각에 나는 햄릿과 공통점이 많고, 중대한 사명이 있고, 단지 그 사명을 어떻게 수행해야 할지 몰라 잠시 헤매는 중인 것 같소. 물론 햄릿은 나보다 훨씬 유리했소. 그는 부친의 망령이 나타나 할 일을 정확히 일러줬지만, 나는 아무 설명도 없이 임무를 수행해야 하니 말이오. (P.48)


재산의 차이는 있었겠지만 커트 보네거트나 엘리엇 로즈워터나 비슷한 사명을 느끼고 있었다. 휴머니즘의 실천. 실제 커트 보네거트도 SF작가 아이작 아시모프의 뒤를 이어 미국휴머니스트협회 명예회장이 되었다. 물론 사명을 수행할 구체적 방법이 떠오르지 않은 것 또한 마찬가지였다. 엘리엇은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로즈워터 재단’을 허름한 사무실에 세우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엘리엇의 계획은 비효율적이었지만, 그가 보여준 행동은 커트 보네거트가 회장으로 있는 협회의 미션과 일치한다. 그는 사람들이 ‘인간’이란 이유로 도왔다. 그게 휴머니즘의 비밀이다. 엘리엇의 실험은 나름의 의미를 도출했다.


트라우트가 말했다. “엘리엇이 알아낸 중요한 사실은, 사람들은 무조건 사랑을 주면 주는 대로 다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그게 새롭단 말이오?” 상원의원이 퉁명스럽게 물었다.
“새로운 건 한 사람이 오랫동안 그런 사랑을 줄 수 있었다는 것이지요. 한 사람이 할 수 있다면 다른 사람도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익한 인간에 대한 우리의 증오, 그리고 그들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그들에게 가하는 잔인한 행위가 반드시 인간의 본성 탓은 아니라는 겁니다. 엘리엇 로즈워터라는 본보기 덕분에 수백 수천만 사람들이 누구를 만나든 서로 사랑하고 돕는 법을 배울 수 있지요.” (P.288)


마르크스적 야심으로 세상을 바꿀 시스템을 창안하고, 이를 실현시킬 현실적인 권력까지 있으면 좋겠지만, 자기 삶도 겨우 챙기는 사람들에겐 비현실적인 요구다. 정치인과 그들의 신념을 지지하고 후원하는 방법도 좋지만 때론 공허하게 느껴진다. 그리하여 우리에게 필요한 건 휴머니스트협회의 행동강령이다. 무엇을 하란 말인가. 막연하다. 휴머니스트란 무엇인가. 종교인인가. 비슷하다. 휴머니스트협회의 롤 모델은 예수고, 참고 조항은 산상수훈이다. 구체화된 강령은 막 태어난 쌍둥이의 세례식에서 엘리엇의 말에 담겨있다.


“안녕, 아가들아. 지구에 온 걸 환영한다. 여긴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춥단다. 그리고 둥글고 축축하고 붐비는 곳이지. 여기선 고작해야 백 년 정도밖에 못 산단다. 아가들아, 내가 아는 단 하나의 규칙을 말해줄까? 제기랄, 착하게 살아야 한다.” (P.146)


여전히 모호하니, 보네거트가 영웅으로 생각하는 또 다른 인물 얘기를 해보자. 헝가리의 산부인과 의사 이그나츠 제멜바이스다. 제멜바이스는 새로운 수술 기법을 개발해 수많은 산모와 아이를 살렸다. 출산 중 산모와 아이가 감염으로 사망하는 경우가 많은 시절이었다. 그의 새로운 기법은 의료계에서 외면받았지만, 그는 굳건하게 자신의 믿음을 밀어붙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그가 발견한 수술 기법은 의료계에 안착했다. 그 덕분에 인류는 목숨을 건졌다. 그는 새로운 이념을 창안한 것도, 권력을 이용해 시스템을 바꾼 것도 아니었다. 산부인과 의사로서 산모와 아이의 목숨을 살리려 애썼을 뿐이다. 이게 바로 휴머니즘의 정수다. 아, 제멜바이스가 발견한 새로운 수술 기법 역시 거창한 게 아녔다. 그건 바로 수술 전에 손을 씻는 것.


엘리엇과 제멜바이스는 인간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탐욕적인 변호사 노먼 무샤리의 눈에 휴머니스트는 정신병자다. 엘리엇에게 도움을 받는 로즈워터읍의 가난한 사람들 생각도 비슷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사람들은 당신이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이렇게 관심을 기울이는 걸 보고 미쳤다고 생각할 것 같아요.’ (P.245) 정신과 의사는 엘리엇의 행동을 성도착증의 일종으로 해석한다. 유토피아도착증. 현실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어 괴로워하던 양심은 곧 사마리안실조증에 걸린다. ‘자신보다 불행한 사람의 고통에 대한 히스테리성 무관심’(P.63)이다.


사마리안실조증은 생물학적으로 대단히 성숙해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그들을 돕고 싶어 하는 극소수 사람만을 골라 공격하는 강력한 질병이다. (P.66)


모두가 휴머니즘을 알지만, 정작 자본주의 사회에서 휴머니즘을 과감하게 실천하는 사람은 비정상 범주에 들어간다. 바꿔 말하면 휴머니즘은 알긴 쉬워도 실천하긴 어려운, 그리하여 별도의 협회가 꾸려져 강령을 제정하고 정기적인 모임을 가져야 하는 사상이다. 착하게 살라는 보네거트의 말이 부자가 되라는 말보다 훨씬 어려운 명령인 이유다. 필요한 건 세상으로 뻗어있는 촉수다. 그게 무뎌지면 휴머니즘은 공상과학 소설 속 허구로 전락한다. 반대로 너무 예민해도 쉽게 상처받는다. 사마리안실조증에 걸릴 위험이 있다. 그 경계에서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의 가사를 곱씹고 이해할 줄 알아야 하다. 휴머니스트가 되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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