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이 되더라도 변하지 않는 방법

조지 오웰 <동물농장>

by 알스카토

이등병 시절, 고참에게 개갈굼 당하고 나면 동기들끼리 모여 서로를 위로했는데, 그 자리에선 대략 이런 말이 나오곤 했다. “내가 병장만 돼봐. 난 애들 절대 안 갈굴 테니까.” 예상했다시피 이런 말들은 거의 지켜지지 않았고, 오히려 착한 병장을 꿈꿨던 친구들이 더 악랄하게 변해갔다. 지금도 비슷한 얘기가 들린다. “OO. 팀장 되더니 사람 완전히 변했네. 쟤가 그럴 줄 몰랐다” 등등.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안타깝다. 아니 어떻게 안 변하겠는가. 한 개인이 서있는 구조가 완전히 달라졌는데. 군에서 이등병의 세상과 병장의 세상은 다른 세계다. 팀장도 마찬가지고. 다른 세계에 발 딛고 있다 보면 자연히 다른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


정치적 글쓰기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리려 했던 조지 오웰의 대표작, <동물 농장>은 일종의 꼰대 묵시록이다. 왜 사람이 나이 들면 변하는가. 이등병 시절의 선한 다짐은 왜 사라지는가. 왜 팀장이 되면 자신의 팀원 시절을 떠올리지 못하는 것인가. 우화의 형식을 빌었지만, 조지 오웰은 냉혹할 정도로 예리하게 권력의 생성과 작동 방식을 묘사한다. 내용은 간단하다. 존즈 씨의 농장에서 동물들의 혁명이 일어난다. 인간이 없는 유토피아를 꿈꿨던 동물들. 하지만 곧 존즈의 자리는 돼지들, 특히 수퇘지 나폴레옹이 차지한다. 동물들이 세웠던 7개의 계명은 교묘하게 변해갔고, 돼지들은 다른 동물들을 억압하고 통치하기 시작했다.


자기 생각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었다면 클로버는 여러 해 전 동물들이 인간은 뒤집어엎기로 했을 때 일이 이 지경이 되는 꼴을 보고 싶어서 그랬던 것은 아니라는 말을 했을 것이다. 오늘 있었던 공포와 살육의 장면들은 늙은 메이저가 그들에게 반란을 사주했던 그날 밤 그들이 꿈꾸고 기대했던 일이 아니었다.....(중략) 왜 그렇게 된 건지 그녀로선 알 수 없었다. (P.78)


클로버의 답답함과 달리, 사실 신석기시대, 처음으로 계급이 생기고 권력이 등장했을 때부터, 권력을 잡으려는 인간의 본성은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니체가 말했던 권력 의지가 인간을 움직이는 동력이다. 인간은 기회가 되면 권력을 잡았고 이를 행사했다. 때문에 인간의 본성이 진화론적으로 바뀌지 않는 이상, 오웰이 걱정했던 혁명의 배반은 필연적이었으며, 마찬가지로 팀원이 팀장으로 진급하면 마음가짐과 행동이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오웰은 권력을 잡은 인간이 변해가는 과정을 초고속 카메라의 슬로 촬영을 통해 자세히 묘사함으로써, 누구나 꼰대가 될 수밖에 없음을 예언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혁명은 대부분 단순 권력 교체로 이어지고 만다.


열두 개의 화난 목소리들이 서로 맞고함질을 치고 있었고, 그 목소리들은 서로 똑같았다. 그래, 맞아, 돼지들의 얼굴에 무슨 변화가 일어났는지 이제 알 수 있었다. 창밖의 동물들은 돼지에게서 인간으로, 인간에게서 돼지로, 다시 돼지에게서 인간으로 번갈아 시선을 옮겼다. 그러나 누가 돼지고 누가 인간인지 어느 것이 어느 것인지 이미 분간할 수 없었다. (P.123)


조지 오웰은 집념의 사회주의자였지만, 반공을 기치로 내걸던 시절에도 누구나 쉽게 <동물농장>을 읽을 수 있었다. 금서로 지정됐어야 할 책이, 초등학교에까지 소개된 이유는 당시 정권의 1차원적인 작품 해석 능력 덕분이었다. 하지만 오웰은 혁명의 희망을 끝까지 품었던 작가다. 그는 권력의 작동 방식을 통해 권력이 인간을 변하게 만드는 모습을 보여줬지만, 이것이 곧 냉소로 이어진 건 결코 아녔다. 다시 말해, 모든 인간은 팀장이 되면 달라지고, 꼰대가 될 수밖에 없음을 얘기했지만, 그것이 곧 구조에 체념하고 꼰대 라이프를 즐기라는 의미는 아녔다는 것이다. 오히려 반대다.


<동물농장>에는 두 마리의 흥미로운 동물이 나온다. 하나는 당나귀 벤자민. 혁명 전후의 태도가 변하지 않은 유일한 동물이다. 벤자민은 권력의 속성을 이해하고 있었다. ‘풍차가 있건 없건 삶은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나쁘게 굴러갈 것(P.49)’이라고 믿던 비관적 냉소자였다. 벤자민은 냉소 덕에 실망하지 않았지만, 나폴레옹은 벤자민의 냉소 덕에 편하게 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또 다른 동물은 말, 복서. 수퇘지쯤은 뒷발로 충분히 날려버릴 수 있는 파워의 소유자지만, 복서는 중요한 순간마다 엉뚱한 결론으로 실망을 회피했다. ‘뭔가 잘못돼 있어. 내 생각으론 더 열심히 일하는 것만이 해결책인 거 같아’ (P.77)


두 동물의 태도에서 단서를 찾아야 한다. <동물농장>은 얼핏 보면 모든 젊은이도 언젠가 꼰대가 되리라는 무시무시한 예언서 같다. 실제로 모든 인간은 구조에 영향을 받는다. 병장 구조, 팀장 구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벤자민처럼 냉소하거나 복서처럼 회피한다면, 오웰의 메시지는 단순한 예언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오웰의 메시지가 예언이 아닌 경고라면. 모든 권력은 인간을 바꿔놓을 거라는 오웰의 경고가 <동물농장>의 핵심이라면. 결국 비판적인 사고를 갖고 끊임없이 현실을 자각하기 위해 애써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실제로 소설을 보면 체념하는 동물들의 답답한 순간이 여럿 반복된다.


그게 이른바 <전술>이라는 거야, 전술. 그는 명랑하게 웃고 깡충깡충 뛰고 꼬리를 털기도 하면서 ‘동무들, 그게 바로 전술이라는 거야, 전술’이란 말을 몇 번씩 되풀이했다. 동물들은 그 전술이란 말이 무슨 뜻인지 확실치 않았지만 스퀼러가 하도 설득력 있게 말한 데다가 마침 그 자리에 함께 있던 개 세 마리가 위협적으로 으르렁대는 바람에 더 이상의 질문 없이 스퀼러의 설명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P.55)


병장이 돼서도 이등병의 다짐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은? 팀장이 돼서도 변하지 않을 방법은? 자리에 따라 인간은 변할 수밖에 없단 사실을, 변하지 않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란 걸 받아들이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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