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현자 이야기(프롤로그)
동방의 신선 대현자(大賢子)는 지식이 많은 사람이 아닌 지혜로운 사람이라
동방의 신선 혹은 대현자(大賢子)로 불리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사람들이 무엇이든지 물어보면 통찰력 있는 해결책을 제시해 주고 의문을 해소해 주어서 큰 지혜를 가진 사람이라는 뜻인 대현자로 불리었다.
대현자는 엄청나게 지식이 많은 사람은 아니었지만 오랜 세월 마음을 비우고 진리를 알아서 세상의 이치에 매우 밝았다. 온 나라에 그의 소문이 자자했기에 나라를 지혜롭게 다스리기를 원하던 왕조차 그에게 찾아가 가르침을 청했다.
나라에 전쟁이 일어났을 때 대현자는 왕의 신임을 받아서 왕의 군사고문이자 총사령관으로서 군대를 지휘하게 되었다. 거대한 이웃 나라에서 엄청나게 많은 군대가 쳐들어왔고 나라가 위기에 처한 상황이었다. 왕은 군을 통솔하는 전권을 대현자에게 맡기고 장군들에게는 무조건 그의 명령을 따르도록 했다.
대현자는 탁월했다. 적의 생각을 손바닥 들여다보듯이 들여다보고 전략을 마련했고,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모두 세심히 작전을 준비해서 전투마다 승리했다. 시간이 갈수록 적의 사기는 꺾여갔다. 아무리 많은 수와 우수한 무기로 무장한 적군이라고 해도 매번 전투에서 연전연패하게 되니, 기세등등하던 적군도 이제 전쟁에서의 승리는 장담하지 못하는 분위기가 됐다. 그렇게 시간이 지날수록 전세는 대현자의 군대에 유리해져 갔다.
그러던 어느 날 대현자는 하늘을 보다가 자신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았다.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았는데 자기가 죽게 되면 전세는 한순간에 뒤집힐 수 있었다. 대현자는 급히 왕에게 사람을 보내 지체 없이 전장으로 와주기를 요청했다. 왕은 대현자를 만나기 위해 밤낮없이 달려가 한밤중에 막사에 도착했다.
대현자는 막사에 누워 왕을 맞이했다.
" 전하, 죄송합니다. 전쟁을 마무리하고 눈을 감으려 했는데 이제는 제가 죽을 때가 온 것 같습니다. "
왕은 대현자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 죄송하다니 무슨 소리십니까. 선생님이 계시지 않았으면 이 전쟁은 벌써 저희의 패배로 벌써 끝이 났을 겁니다. "
대현자는 말했다.
" 이렇게 전하를 모신 것은 제가 죽기 전에 드려야 할 말씀이 있기 때문입니다"
왕이 대현자에게 말했다.
" 무엇이든 말씀하세요. 어떤 소원이든 들어드리겠습니다. "
대현자는 힘없이 웃으며 말했다.
" 제 소원은 제가 드리는 당부를 전하께서 그대로 따라서 행해주시는 겁니다 "
왕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 예, 무엇이든 말씀을 따르겠습니다. 제가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
대현자는 숨을 몰아쉬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 잘 들어주십시오. 이제 적의 군대는 두 곳으로 자국의 군세를 크게 집중시켜서 공격해 들어올 것으로 보입니다. 그 두 곳에 장군들을 배치해 놓았고 그에 알맞은 전술을 명령해 놓았습니다. 그대로 한다면 우리는 이 전투에서 대승을 거둘 수 있습니다. "
왕은 감탄하며 대현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 어떻게 적의 움직임을 다 예상하시고 그에 걸맞은 작전이며 장군들 배치를 다 하시는지 신기합니다"
대현자는 심오한 눈빛으로 왕을 바라보며 말했다.
" 정말 중요한 것은 이번 기회에 우리는 전쟁을 끝내야 한다는 겁니다. 이번 기회가 전쟁을 끝낼 절호의 기회입니다.
적의 대장군은 이미 적국 왕의 신임을 잃었습니다. 그는 왕으로부터 승리를 재촉받고 있고, 이른 시일 안에 승전보를 보내지 못한다면 장군들을 소모품 정도로 생각하는 왕이 자기를 끌어내릴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호승심이 강하고 자존심이 강한 그는 이대로 끌려 내려갈 생각이 없습니다. 자국의 전세가 불리한 것을 인정하지 않고 언제든지 뒤집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무리를 해서라도 전군을 동원해서 큰 희생을 치르더라도 단번에 결과를 얻을 작전을 하는 겁니다. 적군의 배치와 첩자의 보고가 모두 일치합니다. 적군은 대규모 군세를 몰아 단번에 승부를 볼 수 있는 두 곳을 타격해서 승리를 노릴 것입니다 "
왕은 적국의 상황을 손바닥 들여다보듯이 바라보며 군대를 지휘해 온 대현자의 이야기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물었다.
"선생님, 그럼 제가 무엇을 하면 될까요? "
대현자는 천정을 바라보며 마치 전황을 바라보듯이 말했다.
"두 곳 중의 한 곳은 우리의 방어를 적국이 돌파하게 되어 있고 한 곳은 틀어막히게 되어 있습니다. 제가 그렇게 설계해 놓았지요 한 곳을 열어주도록.
그렇게 적이 한 곳을 돌파하면 그 여세를 몰아서 다른 쪽의 방어를 양쪽에서 협공해서 부수려고 할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 돌파되는 쪽으로 예비해 놓았던 군대까지 전군을 총동원해서 다른 곳으로 군세를 몰아갈 텐데요.
돌파당하는 쪽 우리의 군대와 이 장군은 방어가 뚫리면 정해진 곳으로 이동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적군을 피해 물러났다가 우리의 반대쪽 진지를 치기 위해 이동을 하는 적군을 따라서 가게 되어 있고, 이 장군은 적군을 따라가다가 중간에 정해진 위치에 진지를 구축할 겁니다. 철저하게 적을 묶고 포위해서 공격과 방어를 할 수 있는 위치지요.
우리의 양쪽 방어진이 공격진으로 전환이 되는 순간 적군은 우리로부터 양쪽에서 협공을 받게 됩니다. 공격만 생각하는 적군이 방어가 가장 어려운 불리한 위치에서 양쪽의 협공을 받게 되는 거지요. "
왕은 말했다.
"알겠습니다. 적을 드디어 섬멸할 수 있겠군요."
대현자는 누운 채로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그러시면 안 됩니다. 우리가 적을 섬멸하려고 하면 우리도 막대한 인명의 희생을 각오해야 합니다. 우리는 협상을 해야 합니다. 적을 궁지에 모는 것은 협상을 유리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왕께서는 진지를 뚫려줄 이 장군에게 협상에 전권을 주고 대장군에 임명하셔서 협상을 진행하셔야 합니다.
협상 전에 가장 중요한 것은 적군의 대장군을 노려서 신속하게 사살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호전적인 적의 대장군이 살아있으면 협상은 불가능합니다. 적의 대장군을 사살하고 휴전 협상에 들어가서 양쪽 간의 살상을 최소화해야 합니다.
적의 나머지 장군 중의 상당수는 왕에게 반감이 있는 세력들 출신 사람들인데 이들과 이들의 군사들이 너무 많이 죽고 다치면 안 됩니다. 적국의 왕과 대장군은 이들을 앞세워 우리의 진지를 선봉으로 공격시키고 많은 희생을 유도해서 이번 전쟁을 통해 세력을 약화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들의 세력은 온전히 보존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길을 열어주고 양측의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이유입니다.
이렇게 하면 적을 함정에 몰아넣기도 하면서 우리가 원하는 형태로 적국의 세력을 재편할 수 있습니다. 강하고 호전적인 왕의 세력은 축소하고 왕의 반대 세력은 살려서 돌려보내 주는 거죠. 그들은 우리와도 잘 지내길 원하는 세력입니다.
우리가 지켜낼 진지의 박 장군은 호전성이 강하고 대화보다는 적의 섬멸을 강하게 원하는 성품을 가지고 있습니다. 수비적인 상황에 강하게 저항하는 것은 누구보다 잘할 사람이기에 반드시 지켜야 할 진지 방어에 적임자로서 임명을 했지만, 그에게 지휘권이 가면 안 됩니다. 그는 전세가 우리에 유리해지면 적군을 섬멸하고 항복을 받기 위해 무리하게 공격할 사람이기에 협상을 위해서 총지휘권은 이 장군에게 주어져야 합니다.
그래야 이 장군이 박 장군을 통제할 수 있습니다."
왕이 말했다.
"적을 이길 수 있는데 져주고, 죽일 수 있는데 살려주고, 그럴 수도 있군요."
대현자는 말했다.
"지금 쳐들어온 적국의 왕은 국민의 신임을 잃고 있습니다. 그는 점점 나라 안에 반대 세력이 많아지는 어려움에 부닥쳐있고, 이것을 해결하고 국민의 신임을 되돌릴 방법으로 전쟁을 선택했습니다. 외부의 전쟁을 만들어 반대 세력은 전쟁으로 죽이고 자신은 전쟁에 승리한 왕이 되어 그 자리를 공고히 하려는 목적으로 이 전쟁을 일으킨 겁니다.
그러나 적국의 왕은 충직한 장군에게 신임을 주고 대우해 주는 인덕이 없습니다. 그래서 호전성이 강하고 승리를 장담하는 교만한 자를 대장군에 임명할 수밖에 없었죠. 따르는 장군 중에는 그자가 그나마 가장 신임할만했으니까요. 그러나 전쟁터에서의 교만은 적에게 목을 내주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우리가 이 전쟁에서 이기는 것은 가능합니다.
그러나 만일 너무 많은 군사를 죽이게 되면 우리의 피해도 막대하겠지만 적국의 국민이 모두 원수가 됩니다. 그러면 적국의 왕이 지지기반이 무너져서 물러나고 반대 세력이 새로운 왕을 세우더라도 나중에 원수를 갚으려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우리보다 큰 나라를 상대로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전쟁을 계속해야 합니다.
우리가 비교적 쉽게 죽일 수 있는 최전방에 있는 적국의 장군들과 군사들은 적국 왕의 반대 세력입니다. 적국의 왕이 이번 전쟁을 통해서 없애기를 원하는 사람들이죠. 그들의 피해를 최소화해야 우리가 원하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전쟁을 일으킨 자가 국민의 원수가 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가 아닌 전쟁이 잘못이 되도록 우리는 적국 왕의 지지기반이고 심복들인 장군들만 죽일 것입니다. 그리고 왕의 반대파인 장군들은 군사들과 함께 살려서 무사히 돌려보낼 것입니다. 그러면 전쟁은 전쟁의 책임자인 왕과 반대파인 저들 사이에만 있고 우리에게 돌아오지 않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가장 중요한 작전이고 제가 죽고 나면 이것을 행할 분은 오로지 왕께서만 가능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싸우지 않고 더 큰 것을 얻을 수 있고 반드시 평화롭게 번영할 수 있습니다. 저의 마지막 작전 계획을 이루어 주십시오."
왕은 대현자에게 존경심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러면서 대현자의 뜻을 따르겠노라고 맹세를 했다. 대현자는 편안한 표정으로 눈을 감았다.
왕은 대현자의 뜻을 따라 전선을 돌파당한 이 장군에게 군대의 총지휘권을 주고 적의 대장군을 사살하도록 했다. 적의 대장군이 죽은 뒤에는 즉시 포위당하고 혼란에 빠진 적과 협상을 시작했다. 그리고 유리한 조건으로 적군의 항복을 받아냈다.
진지를 잘 지킨 박 장군은 적군을 섬멸하지 않고 살려 보내는 왕과 이 장군의 협상 결정이 불만스러웠지만, 그들과 싸울 수는 없었다. 왕은 전쟁이 끝나고 아주 후한 포상과 명예직을 박 장군에게 내려주고 그의 마음을 달랬다. 그리고 대현자가 신임한 이 장군에게는 전군의 통솔을 맡기고 항상 우대하고 신임했다.
대현자의 예상대로 전쟁에 대패한 적국의 왕과 그의 세력들은 내란에 직면했다. 평소 왕을 불신하던 세력들은 전쟁에 패하고 국가에 막대한 손실을 입힌 왕에게 반란을 일으켰다. 살아 돌아간 적국의 병사 중에 상당수는 왕을 불신하던 반대 세력 쪽의 병사들이었고 전쟁터에서 자신들을 죽이려 하던 왕을 더욱 불신하게 되었기에 왕의 반대 세력에 적극적으로 힘을 보탰다.
적국이 오랫동안 내란으로 혼란한 사이에 대현자의 나라는 전쟁 물자를 팔아서 부강해지고 번영을 구가했다. 그러면서 흩어진 적국의 세력들에 대해서는 우대하고 융화하는 정책을 폈다. 싸움으로 흩어지고 힘들어진 우수한 인재들과 중요 지역들은 하나하나 대현자의 나라로 자발적으로 흡수되었고 결국에는 적국의 왕까지 투항해 왔다. 실질적으로 전쟁 없이 두 나라 전체를 다 통일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대현자의 나라는 싸우지 않고 영토를 넓히며 승리했고 전과 비교할 수 없이 크고 위대한 나라가 되었다.
국민은 모두 왕을 칭송하고 우러러봤지만, 이 모든 것이 대현자의 큰 계획을 따른 결과이기에 왕은 오만해지지 않았다 아니 그럴 수 없었다. 오만이 전쟁을 패배로 몰고 가고 사람을 죽이는 것을 본 직후여서 더욱 그랬다. 왕은 대현자의 뜻에 따라 이 모든 것을 행했지만 두 나라의 통일전까지 이를 말하지 않았다. 왕은 통일에 이르러서야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모두에게 공개하고, 죽은 대현자를 나라의 '대현자(大賢子)'로 명명하고 그를 기렸다.
대현자가 죽기 직전 감았던 눈을 뜨며 말했다.
"저의 이 모든 계획은 저의 것이 아닌 왕이신 당신의 것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주변의 다른 나라와 사람들이 우리나라를 다시 넘보지 않고 우리에게 기대올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을 우대하고 품어주십시오. 반드시 나라가 부강해질 것입니다. 어쩌면 전쟁 없이도 적국 전체를 얻을 수도 있습니다."
이 말을 마치고 대현자는 밝은 표정으로 숨을 거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