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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어밴드맨 Oct 30. 2024

대현자 제왕학 5

나의 생각은 세상에서 가장 작은 감옥이며 동시에 가장 거대한 감옥입니다.

 왕은 대현자에게 일주일마다 한 번씩 제왕학의 가르침을 받기로 했고 대현자에게 배우는 것을 잊지 않기 위해 모든 것을 빠짐없이 기록을 하기 시작했다.


 왕의 마음자리는 신선의 마음자리와 다름이 없었고 나라를 다스리는 방법과 신선의 술법 하나였으며 바른 마음자리를 지킬 때 본연의 진정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대현자 제왕학 5



대현자가 왕에게 물었다.


" 전하께서는 혹시 손오공이 무엇 때문에 긴고아(兒= 손오공의 머리에 박힌 테)를 쓰고 긴고아의 고통을 받게 되었는지 알고 계십니까?"



왕이 대답했다.


"저는 그것이 조금 이상하게 느껴졌습니다. 손오공은 금정화안(金睛火眼)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탈을 쓴 요괴를 구분할 수 있었고 천리밖까지도 내다볼 수 있었죠.



 그러나 현장법사는 위기 때마다 손오공을 무시하고 어리석은 판단과 선택을 하고는 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위기를 찾아 들어가기 일쑤였죠.



 그런 현장법사가 자신의 잘못된 선택을 말리고 함정을 경고하고 알려주는 손오공에게 긴고아(兒)를 씌우고 주문으로 고통을 주다니, 저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대현자가 말했다.


 "네, 사실 누구나 그런 생각을 하고는 하지요. 가지고 계신 그 의문은 오늘 배우실 긴고아((兒= 손오공의 머리에 박힌 테)의 저주에 대한 내용을 배우시게 되면 해결되실 것입니다.



 한 가지 여쭈어 보겠습니다. 전하께서는 스스로 생각하실 때 여러 가지 합리적인 이유로 어떤 사실이나 상황에 대해서 확신을 가졌을 때, 만일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로 그에 대해 공격을 받는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런데 상대는 내가 따라야 하는 조건이나 위치를 가지고 있다면요? 그런데 내 눈에는 상대의 잘못과 단점도 보인다고 하면 말이지요."



 왕이 가만히 생각을 하다가 대답했다.


 " 저는 가만히 당하고만 있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상대의 잘못을 지적하고 문제점을 얘기하여 그의 생각을 바꾸도록 할 것 같은데요."



 대현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하고 싶을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렇게 할 수 있느냐 하면 많은 경우 하지 못합니다. 함부로 그렇게 행동했다가는 상대를 적으로 만들게 되어 자기가 도리어 곤란해지는 경우가 생기기 쉽기 때문입니다.



 전하는 절대 권력자인 왕이십니다. 그래서 나의 생각을 접고 억지로 따라야 하는 조건과 위치가 되어보신 적이 드무실 수밖에 없지요.



 그리고 전하께서 상대의 단점이나 잘못을 지적하면 상대는 군왕과 맞서고 척을 지는 부담 때문에 대부분 자신의 의견을 양보하고 물러서게 되면서 전하의 의견은 관철될 수 있었던 것이겠지요.



 그래서 전하께서는 상대의 잘못을 지적하고 문제를 얘기하는 방식으로 쉽게 상대방의 판단과 생각을 바꿀 수 있다고 믿고 계신 겁니다."



 왕이 대답했다.


 "잘못을 알려주면 인정을 하고 자기의 생각을 바꾸어야 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습니까? 저는 저의 신하들이 그런 경우 자기의 생각을 바꾸고 저를 따르고 있는 줄 알았는데요.


 그런 것도 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한 나라의 중책을 맡을 수 있겠습니까."




 대현자는 긴 한숨을 내쉬며 설명을 시작했다.


 "전하의 말씀이 이상적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자기의 잘못됨을 아는 것은 심지어 성인들조차도 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만일 누군가가 자기의 잘못을 지적하는 경우가 생겼을 때, 자기로부터 벗어나 상대방의 입장과 객관적인 상황을 세심히 돌아보고 살펴보면서,  마음 없이 자기를 반성하고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대 신선의 수준에 도달한 사람입니다. 대 신선은 자기가 없기에 그렇게 할 수 있죠.



 그 밖에는 아마도 신선의 열반대법으로 자기의 생각을 죽이고 없애는 사람 정도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이 있다고 해도 올라오는 자기의 생각과 싸워야 그 생각을 간신히 없앨 수 있고, 많은 경우 자기도 모르게 자기 생각 속에 갇혀 버리기 마련입니다.



 열반대법을 배운 사람도 자기의 생각을 없앨 수 있는 수준은 모두 다릅니다. 그 사람의 수준에 따라 버리지 못하는 판단과 도저히 바꾸지 못하는 생각도 있다는 것이지요.



 사람은 자기의 인간 마음인 생각 속에 갇혀서 만사를 판단을 하기 때문에 대의에 입각해서 지혜로운 판단을 하는 능력이 없는 것이지요.



 잘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전하께서도 전하의 생각에 반하는 상대의 주장을 어쩔 수 없이 들어야 하는 상황에 몰렸던 경우가 있으셨을 겁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전하의 원하는 바를 관철시키지 못하고 바꾸었던 경험 말씀입니다. 그때 전하께서는 어떠셨습니까?



 마음 없이 편안하게 생각을 바꾸고 물러서셨습니까? 아니면 일단 상황에 어쩔 수 없이 따르면서도 속으로 분하게 생각하셨습니까? 전하께서 두고 보자 하는 마음 없이 양보를 하셨는지 여부를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왕은 오랫동안 가만히 기억을 떠올리며 생각을 해보았다. 대현자는 말없이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한 참의 시간이 지난 뒤 마침내 왕은 입을 열었다.



 "저는 제가 나름대로는 수용적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상대의 얘기를 듣고 제 생각을 바꾸는 경우는 제 생각에 확신이 없거나, 아예 잘 몰라서 별 생각이 없던지 하는 경우에만 그랬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억지로 제 생각을 접게 되는 경우에는 복수심이 생겼습니다. 나중에 나도 같은 식으로 돌려주고 싶다는 분한 마음이라고 할까요? 그래서 나중에는 상대를 곤란하게 만드는 작은 복수라도 시도했던 것 같습니다. 기회가 왔을 때 상대도 골탕을 먹어보라는 마음으로요.



 그렇지만 저의 판단에 확신이 있는데 그것을 없애야 한다는 것은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아무리 열반대법을 배웠어도 그건 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런 것까지 버리면 바보가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건 줏대가 없는 것 아닙니까?"





 대현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생각을 다 버려야 한다는 것이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당연합니다. 그리고 줏대를 잃고 바보처럼 상대의 주장이나 생각에 끌려가는 것은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는 바이기도 하고요.



 세상에는 사람의 잘못을 지적하는 방법으로 죄의식으로 몰아넣어 정신을 조종하는 자들도 있기에 줏대가 있는 것은 필요합니다.


 

 그리고 세상에는 수많은 사이비 종교가 존재하며 그것의 폐해는 정말로 심각하기 때문에 주체성을 지키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지요. 그것은 당연한 것이고 실제로도 상당히 조심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자기의 주체성이 있는 것과 자기의 생각이 있는 것은 같지 않습니다.



 자기의 생각이 있으면 앎으로부터 올라오는 자기의 잘못된 믿음에 들어가 의식이 갇히게 됩니다.


 그러나 자기의 생각이 없으면 참의 마음에 존재하는 바른 의식이 있고, 개인의 경험과 편견에 구속되지 않는 폭넓은 사고와 판단이 저절로 생기지요.


 전체의식이 되어 세상의 입장에서 판단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의 생각이 없다는 것은 정확하게 말씀드리면, 애초에 형성된 자기의 확신을 바꾸는 것이 아니고 처음부터 자기의 생각이 없는 것입니다.


 애초에 자기의 앎으로부터 올라오는 생각에 의식이 갇히는 상황 즉 자기 확신의 함정에 들어가지 않는 것이지요.



 이렇게 자기의 생각에 갇히는 것이 바로 손오공이 걸렸던 긴고아(緊箍兒)의 저주입니다. 그 저주는 바로 자기의 생각이 있을 때 걸리고, 자기의 생각이 없을 때만 그것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손오공은 모든 여정을 마치고 자기의 완성을 확인하는 순간에 긴고아가 이미 사라져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손오공은 힘든 여정 속에서 마침내 자기의 모든 생각이 허상임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생각의 지옥이자 감옥인 긴고아(緊箍兒)에서 벗어났던 것이지요.



 나의 생각은 이 세상에서 가장 작은 감옥이며 동시에 가장 거대한 감옥입니다. 그것은 내 머릿속에만 있고 나에게만 작용하는 감옥이니 가장 작은 감옥이고, 나의 세상 전체에 작용하니 가장 거대한 감옥인 것이지요.



 사람은 누구나 과거라는 허상의 짐을 집니다. 그리고 미래라는 허상을 걱정하며 내 생각이 만들어 낸 허상의 현실을 실제로 믿고 살지요.



 그러나 과거와 현재와 미래 중 진짜는 하나도 없고, 감옥에 갇힌 나의 고통은 끝이날 줄 모릅니다. 그러니 내 생각은 말 그대로 땅의 감옥인 지옥(地獄)인 것이지요. 



 그러므로 자기의 생각을 하나도 남김없이 모두 다 버리지 못하면 누구나 자기의 생각 속에 갇혀 긴고아(緊箍兒=손오공의 머리에 박힌 테)의 고통을 받게 됩니다.



 긴고아(緊箍兒)의 고통을 주는 긴고아의 주문이 무엇인 줄 아십니까? 그것은 바로 나의 생각을 반대하는 상대와 나를 공격하는 상황입니다.



 나의 생각과 판단이 무시되는 상황과 조건은 말도 못 할 지옥이며, 내 생각의 잘못됨이 드러나고 그 사실을 인정해야 하는 상황은 누구나 두려워하는 고통이지요.



 그러나 늘 새로운 상황과 지식은 쏟아져 나오고, 세상의 경험과 능력은 나보다 탁월하기에 나는 늘 그것을 따라야 하는 상황에 처합니다.



 그런데 과거의 경험에 묶여있는 나의 생각과 판단만을 믿고 자존심을 지키려고 고집을 부리다가는 결국 긴고아의 주문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참 지혜와 참의 능력은 자기의 아는 것이 없고 자기가 없을 때 비로소 발휘되기 시작합니다.



 내가 아는 모든 것과 나 자신이 허상임을 마음으로 알면 기본적으로 생각끊어지고 허공이 실체로 보이며 그 믿음의 마음자리에 머물 수 있지요.



 앎이란 것이 생기기 이전인 전지전능인 모름에서 보면 세상의 본질은 허공만 있음이 보이고, 있음과 없음이 하나로 보이며, 그 상태에서 있는 그대로 세상의 조건과 상황을 판단하고 아는 것이 참 지혜이며 그 상태에서 자기 없이 행함으로써 능력은 저절로 나오기 때문입니다.



 이는 일체의 앎으로부터 벗어난 것이기에, 마치 미래를 아는 것처럼 행하고 살 수 있으며, 하늘의 뜻과 저절로 일치하기에 순리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 마음이 하늘과 하나 되어 한 마음으로 공명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지요.



 그 마음에서는 세상만사 일체가 근본적으로 없다는 것이 느껴집니다. 그래서 과거로부터의 고통 짐은 날아가 버리고, 나를 가두는 고정관념이 없으며, 사고의 유연성과 창의성이 있으면서도 실질적이어서 끝없이 발전할 수 있습니다.



 자기의 가능성과 발전을 제약하는 모든 굴레가 벗어나지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접하는 모든 것의 연구는 저절로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고요.




 손오공은 날 때부터 재주가 뛰어나고 능력은 탁월했습니다. 그런 그가 무엇이든 녹여버리는 태상노군의 팔괘로에서 살아서 탈출을 하며 금정화안(金睛火眼)까지 얻었던 것입니다. 



 금정화안(金睛火眼)이라는 말 그대로 그의 눈은 불처럼 빨갛게 변했으며 눈동자는 금색으로 변했습니다. 이것을 얻음으로써 그는 천리밖을 훤히 볼 수 있게 됐으며, 사람의 탈을 쓴 요괴의 진면목까지 구분할 수 있게 되었죠.



 금정화안을 가진 손오공은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과 멀리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 모두 다 자세히 살펴보고 판단을 할 수 있었고 심지어 그것은 매우 정확했습니다. 그는 정확하고 다양한 정보를 가지게 된 것이죠.



 그런데 그런 손오공이 과연 자기의 눈으로 직접 확인한 판단과 생각을 없애고, 아무런 정보가 없어서 올바르게 판단할 수 없어 보이는 현장법사의 결정비판 없이 따를 수 있었을까요? 그 잘나고 교만했던 손오공이 말입니다.



 물론 하늘이 부여해 주신 의무와 조건은 현장법사가 내리는 판단을 무조건 따라가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손오공의 입장에서 보면 현장법사가 선택하는 그 길은 함정이라는 것이 너무도 분명했죠. 그래서 손오공은 현장법사의 지시 순응하지 못하고 거꾸로 그를 가르치려고 들고 반항을 하게 된 것입니다.



 지점에서는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손오공의 입장을 공감하고 이해할 것이며, 정보를 가진 손오공의 말을 듣지 않는 현장법사를 답답해할 것입니다.



 그런데 손오공이 몰랐던 것이 있습니다. 그건 대부분의 사람들도 꿈에도 모르고 있는 것이지요.




 그것은 바로 하늘의 심오하신 계획입니다.



 하늘의 계획은 마음이 바른 특정한 사람만을 위해서 실행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하지요. 하늘은 모든 사람과 만상의 부모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늘이 하시는 일은 그 규모가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할 수밖에 없고, 그 지능은 우주 전체의 과거 현재 미래를 동시에 운행할 만큼 대단한 것이기 때문에 사람은 감히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것이지요.



 하늘은 사람을 한 명도 빠짐없이 구원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가 있고 잘못된 사람들마저 최대한 품고 또 품으며 태초의 계획을 하나씩 이루어 가시지요. 그런 이유 때문에 실제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 사람의 기대나 판단과는 많이 다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람은 속 시원한 정의 실현이나 이해하기 쉬운 명확한 결과를 원하기 마련이니까요.




 손오공은 상상도 못 했지만, 일행 앞에 놓인 함정은 피해야 할 함정도 있었지만 반대로 그 속에 들어가서 어려움을 겪으며 헤쳐 나와야 할 함정도 있었습니다.



 사람은 어려움을 싫어하니 어려움이 생기면 잘못된 줄 알지만, 알고 보면 그것이 하늘의 뜻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미리 알 수 없고, 닥쳐진 상황에서 하늘의 뜻을 따르려고 노력을 하다 보면,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결과적으로 뜻이 드러나고 알 수 있게 되지요.



 하늘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시공을 초월하여 존재하고 계시고, 그 모든 일체를 주관하시고 계십니다.



 그러니 자기가 살아온 시대와 세상만 전부인 줄 알고, 자기의 생각 속에 갇혀있는 사람의 머리로는, 짐작하거나 헤아릴 수 없는 것입니다.




 생각을 해 보십시오. 근두운을 타면 단숨에 십만 팔천리를 날 수 있는 손오공입니다. 그런 손오공에게 일행을 데리고 힘들게 헤치고 가야 하는 십만 팔천리의 여정이라는 것은 마치 나쁜 농담과 같은 것입니다. 도대체 왜 그런 쓸데없는 고생을 해야 하는지 손오공으로서는 처음부터 이해하기 불가능한 지점이 있었던 것이죠.



 이것을 보면 현장법사 일행이 가는 여정의 가치는 경을 가지고 오는 그 결과가 아니라 그 여정의 과정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여정은 물리적인 여정이 아니라, 자기를 돌아보고 자기의 생각을 벗어버리는 마음의 여정이 진정한 목적이었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여기서 손오공에게는 심각한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는 태상노군의 팔괘로에 갇혀서 나오지 못하고 죽을 뻔했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함정이라면 질색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경험을 한 손오공에게는 함정은 절대로 들어가면 안 되는 것이었죠.



 그런데 그들 일행의 여정은 줄기차게 함정으로 향해 들어가야만 하는 그런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손오공은 이를 반대하고 싫어하며 신경발작을 했던 겁니다.



 단숨에 십만 팔천리를 날아갈 수 있는 재주를 가진 손오공에게, 필요 없는 수고를 하고 위험을 감수해야 하며, 자기의 생각마저 없애고 따라야 하는 이 모든 상황은, 정말 받아들이기 어려운 고통이었죠.



 그리고 손오공의 눈이 빨갛게 변했다는 것이 시사하는 바가 있습니다. 그것은 세상을 의심과 분노의 눈으로 보게 되었다는 것이죠.



 손오공 자신은 꿈에도 몰랐지만 눈이 불처럼 빨갛게 변하면서부터 손오공은 무엇이든 의심부터 하는 성향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팔괘로에서 탈출하며 능력을 얻기도 했지만, 그에 따른 심각한 정신적 상처도 있었던 것이죠.



 물론 그 당시 손오공의 눈동자가 금빛으로 변하면서 사물과 상황을 정확하게 보고 관찰하는 능력도 생긴 것은 분명합니다.



 그것은 세상과 상대를 무시하다가 함정에 갇히고 당하면서 갖추게 된, 조심성의 능력인 것이죠.



 그러나 애초에 빨갛게 변해버린 눈은 분노와 의심이 담긴 색안경을 쓴 눈입니다.


 그런 마음의 선입견 속에서 사물이나 상황을 자세히 볼 수 있다는 것은, 오히려 잘못된 확신을 만들어 버리는 조건이 되지요. 



 그래서 세상에는 법고일장(法高一長) 마고일장(魔高一長)이라는 말이 있는 것입니다.



 진리의 능력이 한 단계 올라가면, 그의 내면에 자리 잡은 마심도 한 단계 올라간다는 뜻이지요.



 깨침이 생기면 그만큼 자기의 아상이 커지므로 자기의 생각과 판단에 갇힐 위험은 그만큼 더 커지는 것이니까요.



 손오공의 경우가 바로 여기에 해당하였습니다.



 손오공은 무엇이든 의심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고, 금정화안을 가진 자기의 안목과 판단을 철저히 믿었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의도는 순수하게 일행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니 아무리 생각해도 자기가 옳았지요.



 그러나 함정에 들어가는 일행을 만류하는 그의 경고는 현장법사에게 철저하게 무시당했습니다.



 그래서 손오공은 분노 속에서 감정적으로 행동을 했지요. 자신의 의도는 정말 순수했으니까요. 



 그런데 그가 보호하려고 애쓰던 현장법사가 주문을 외워서 긴고아의 고통을 주니 손오공의 감정이 어땠을까요?



 손오공 믿고 내주었던 등에 칼이 박히는 배신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렇게 억울하게 당한 그의 마음은 펄펄 끓는 쇳물을 마시는 것처럼 고통스러웠죠. 



  손오공이 그런 상황에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고 자기의 판단과 생각을 버릴 수 있었을까요?


 일행이 그를 벌주고 그를 무시하며 찾아들어간 그곳은 실제로 함정이었는데 말이지요.


 손오공은 그때 일행을 떠나버리는 결정이 차라리 간단하고 쉬웠던 것입니다.


 성불도 좋지만 도저히 납득할 수 없고 견딜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까요.




 손오공의 이런 상황은 자기의 생각이 있는 사람에게 항상 생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특히 능력을 자신하는 사람에게는 더욱 그렇지요.



 사람은 자기가 경험하고 아는 것만 바르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기준으로 모든 일을 판단하지요.



그러나  애초에 보고 듣고 경험을 하며 생각한 일체는 모두가 잘못된 허상이고 완전한 거짓이라는 것은 꿈에도 알지 못합니다.



 하늘께서는 이렇게 보는 것도 내 탓이고, 저렇게 보는 것도 내 탓이며, 남의 잘못도 내 탓이고, 남의 잘잘못을 생각하는 것도 모두가 다 내 탓이라고 하셨습니다.



 반드시 모든 잘못은 나에게 있으며 나의 생각이 있는 데 원인이 있습니다.



 모든 문제의 시작이 바로 나이고, 내가 문제의 원인이며, 알고 보면 내가 바로 문제 자체고, 나를 없애야 문제가 없어짐을 아셔야 합니다.



 나는 내 생각 속에 살고 있으며, 내가 살고 있고 바라보는 모든 세상은 바로 나의 마음속 세상입니다.



 이 모든 것은 내 마음이 만든 세상이기에, 이 세상에서 가장 잘못된 자는 바로 나 자신이고, 세상에서 가장 이기적이고 나쁜 사람도 바로 나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실 중의 진실이지만, 이 모든 것이 내 탓임을 인정하는 것은 정말로 어려운 것입니다.그것이 그렇게 힘들기 때문에 세상에 회개한 자가 드물그래서 아직 신선이 드문 것 같습니다.



 그러니 전하께서는 지금부터 올라오는 나의 모든 생각을 단호하게 배격하고 없애 버리십시오.


 내 머릿속에서 나를 가두는 지옥의 생각 뭉치를 완전히 뽑아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몸의 관습마저 다 없애시면 대자유를 얻을 수 있습니다.



 절대로 나의 생각을 믿지 마십시오.  올라오는 생각을 다 없애버리십시오.


 보이는 모든 것을 아무것도 믿지 마십시오. 그중에 단 한 가지도 실제가 아니며 모두 나의 마음이 나를 속이는 것입니다. 그 평생 써온 색안경을 이제는 벗어버리고, 거짓말인 나 자신까지 통째로 벗어버리십시오.



 지금 전하는 생각 속에 갇혀 계시지만, 어떠한 상황이라도 정신만 차리면 상황은 언제든지 긍정적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그러니 한국의 속담에 '호랑이 굴에 물려가도 정신(精神)만 차리면 산다'는 말이 있는 것입니다.



 호랑이는 바로 나이며, 호랑이의 굴은 바로 나의 생각이고, 정신(精神)은 진리의 몸과 마음입니다. 그러므로 정신을 차린다는 말은 진리의 몸마음을 회복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고, 그래야 산다는 것입니다.



 정신을 차려서 진리와 하나 된 사람은, 허상의 자기를 벗고 자기의 생각을 벗어나, 진리의 몸 마음으로 부활한 사람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늘과 나는 하나라, 나는 죽음이 없습니다.



 그 마음은 지혜가 있고, 진리의 마음이라 순리로 사니, 모든 화가 스스로 물러가며 복으로 변하게 됩니다.


 


 손오공은 자기의 거처인 화과산에서 왕으로 군림하며 자기만 잘난 줄 알고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홀로 갇혀 있었기 때문에 상황 판단 능력에 문제가 있었지요.



 그의 산 삶을 보면 문제를 만났을 때면 싸우거나 도망치는 방법으로만 살아왔고, 도망치지 못하면 잡혀서 갇히는 곤란을 겪었습니다. 그런 그로서는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싸우거나 도망치지 않으면 잡혀서 갇히는 결과밖에는 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상황을 그런 식으로 만 판단하고 일행을 지키려고만 하면 현장법사 일행의 근본 목적을 상실하게 된다는 심각한 문제가 생기지만, 손오공은 이런 문제에는 문외한이었습니다.




 그의 관심은 오로지 자기의 존재 이유인 현장법사의 보호에만 있었고, 그래야 하늘로부터 자기의 존재 가치가 인정받고 공을 세울 수 있으며, 자신은 완성이 되고 자유를 얻을 것이기 때문이었죠.




  그런 손오공은 여정의 목적을 지켜나가려고 하는 현장법사의 제재를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손오공은 여정의 근본 목적인 대승의 관점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을 자기가 방해하고 있다는 것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당시 그는 '현장법사를 헌신적으로 모시면서 그를 보호해 주고 함정이라고 위험을 경고해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배신을 당했다'라는 자기의 입장을 실제로 일어난 일로 믿었죠.



 그러나 일행의 안전이 최우선의 가치였다면 현장법사 일행이 무엇 때문에 그 위험한 여정에 올랐겠습니까? 그냥 안전한 집에 있으면 되는 데 말이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이처럼 자기의 관점을 내려놓고 세상과 하늘을 무조건 믿는 마음으로 상황을 바라보아야 내 생각 속에서는 보이지 않던 것이 보입니다.




 그래야 자기의 모순과 부족함도 보이기 시작하고 세상사도 보이는데, 사람은 오로지 자기가 옳기를 바라고 자기가 인정받는 것만을 원하니 이것이 그토록 어려운 것입니다.



 내가 몇 년 전에 한 일과 생각이 지금도 여전히 옳아 보인다면, 나의 의식은 발전이 없었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깨달은 자는 과거의 자기가 한심하고, 했던 생각이 부끄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 의식이 발전하게 되면,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고, 자기의 잘못됨도 잘 보이니까요.



 그래서 깨달은 자는 부끄러움을 알지만, 못 깨친 자는 자기의 순수한 의도를 말하고 자기의 판단과 한 것이 옳다믿으며 자기는 잘했다는 인정을 받기를 원합니다.





 한편 손오공과는 달리 현장법사는 피해의식이 조금도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목적의식과 희생정신이 뚜렷했죠.  



 현장법사를 삼장법사로 부르는 이유는 그가 경장(經藏= 석가모니의 설법을 모은 것), 율장(律藏=지켜야 할 계율을 모은 것), 논장(論藏=제자들의 연구와 주석 논문을 모은 것)의 세 가지 영역인 삼장(三藏)에 통달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진리의 가치를 정말로 소중히 여기고 있었으며, 이를 펼쳐나가는 데 있어서 하늘이 주시는 일이라면 아무리 힘들고 죽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고지식한 성품을 가지고 있었죠.



 그런 그의 고지식하고 모난 점이 바로 하늘이 그를 선택하고 중용하신 이유였습니다.




사람이 각자 가지고 있는 모나고 뾰족한 성품이나 고집 반드시 고쳐야 할 심각한 문제임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아직 사람이 완성되기 전에 하늘이 그를 들어서 쓰실 때는 엄청난 가치를 가지기도 하지요.



 물론 고지식한 고집쟁이는 수많은 잘못된 판단을 하기에, 일만 생각하면 그에게 그런 일을 맡기면 안 되겠지요.  그러나 하늘의 목적 자체가 사람의 정신적 성장이고 사람이 성장하려면 반드시 수많은 잘못과 오류를 겪어야 하기 때문에 하늘은 사람에게 일을 맡기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잘못을 하고 자기를 돌아볼 때 사람은 성장을 하기 때문에 각자 가진 그 특성대로 장점을 보아서 역할을 맡기고 부작용은 감수하시는 것이지요. 그 과정이 힘들고 어렵기는 하지만 결국 허의 결과는 사라지며 참의 결과는 영원히 남으니 말입니다.



  현장법사가 아무리 힘들고 전망이 좋지 않아도 일체의 타협 없이 주어진 역할을 희생적으로 완수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그의 뾰족하고 모났으며 고지식한 성품 덕분입니다.



 눈앞의 위험도 계산 못하고 주어진 목적대로의 방향성을 고집하는 현장법사의 독선적이고 모난 성품을 하늘은 일관성을 위하여 쓰시는 것이고, 그로 인한 문제가 생기는 것은 의심쟁이지만 능력만큼은 탁월한 손오공을 붙여서 일행이 부러져버리는 단점을 보완하시는 것이지요.



 그 둘의 조화마저 깨질 때는 나머지 저팔계와 사오정이 이를 또다시 중재하고 보완하게 됩니다. 저팔계의 지나친 욕심은 사오정의 충직함으로 보완하고, 또 사오정의 어리숙함과 부족한 판단력은 저팔계의 현실감각으로 보완합니다.



 이것이 바로 쓸모입니다. 쓸모가 있다고 할 때의 그 '모'는 사람의 몸과 마음의 모양인 것이죠.



 그래서 부족한 자에게도 중요한 자리를 맡기시는 경우도 생기는 것이고, 그것도 아주 오래 맡기는 경우도 생기는 것입니다. 사람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어렵고 정서적으로 동의하기는 더욱 어렵지만 그런 일은 마든지 생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은 일을 맡은 사람이 일이 잘못되게 하면 그 인선이 잘못이라고 생각하지만 하늘은 일부러 그런 사람을 쓰도록 허락하시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그것의  예를 간단히 들자면



 제도의 모순을 만백성에게 겪게 하여 고치자는 공감대를 폭넓게 만들려고 하실 경우



 정치의 문제를 드러내어 다른 방향으로 전환하는 것을 의도하실 경우



 정해진 듯한 전쟁의 승패를 바꾸려 하실 경우



 나라를 나쁜 지도자를 통해 빠르게 망하게 해야 할 경우 등등



 이 외에도 수많은 이유로 어리석은 자들과 교만한 자들 그리고 고집쟁이들은 중용되어 왔던 것입니다. 그들이 잘나서가 아니고 말씀이지요.  물론 자기 자신은 동의하기 어렵겠지만 말입니다.



 사람은 몇 년이나 몇십 년을 크게 생각합니다. 그것은 몸의 수명에 사고가 묶여있기 때문인데, 그가 속한 지역과 나라에 사람의 생각은 제한되어 버리고 그 속에서 사람은 판단합니다. 그러나 하늘의 계획은 나라와 민족과 시대를 넘어서 이루어지니 이를 이해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현장법사는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그것이 함정인지 아닌지에 주의하기보다는 상대에게 베풀고 도와주는 것에 집중했습니다. 그런 태도야말로 여정의 근본 목적이며 많은 사람을 태워간다는 대승 사상의 확립과 전파에 부합하는 것이었으니까요.



 그는 자기 일신의 안전은 제자들에게 보호받으면서도 그들에게 의존하는 마음은 크게 갖지 않았죠. 물론 순간적으로는 불안해하기도 하고 걱정을 하는 한계도 있었지만 근본적으로 그는 하늘을 믿고 있었지요. 그래서 그는 초연할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누구든지 하늘의 보호아래 있는 사람은, 어떠한 경우에도 화를 입지 않으며, 오히려 화는 결국 복이 되어 돌아옵니다. 하늘의 뜻을 따르기 위해 수난은 결국 하늘의 도움으로 극복되기 마련이고, 고생에 대한 상으로 훨씬 더 큰 하늘의 복이 돌아오는 것이죠.



 그렇게 사람이 하늘을 믿고 따를 때 진정한 깨달음의 경지에도 도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진정한 깨달음의 경지는 철저하게 자기는 없다고 생각하고, 자기의 생각도 가짜라고 생각하며


 몸도 마음도 아무것도 없다고 믿고, 진리이신 우주의 허공만이 실재임을 알고


그 어디든지 있는 허공이 내 안에 있으며, 그래서 안과 밖이 없고


나와 하나고 믿으며, 그 하늘의 뜻을 살펴 사는 입니다.


이와 같은 경지에 도달할 수 있도록 자기의 생각은 하나도 남김없이 철저하게 다 버려야 합니다.




 전하의 이해를 돕기 위해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한 가지 더 해드리겠습니다. 이는 하늘께서 처음 사람의 형체를 갖추어 이 세상에 영혼으로 부활하여 오셨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그때 하늘께서 스스로 사람의 형체를 갖추어 오시고 보니 하늘은 다양한 수준영의 세계로 나누어져 혼란하고 어지러운 상태였으며 거기에다가 불완전한 신의 세상까지 존재했습니다. 이와 같이 근본인 하늘이 비뚤어져 돌아가니 인간 세상도 비뚤어져 돌아가는 등 악영향이 많은 상태였지요.



 영의 세계는 그 깨달음의 수준에 따라 그 단계가 다양하게 나누어집니다. 그런데 한 단계라도 높은 영의 세계가 있으면 아래 단계의 세계에서는 윗 단계의 세계를 보려고 해도 그저 빛일 뿐이고 전혀 알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의식이 그 세계에 도달할 수 없으니까 그런 것이지요.



 문제는 이런 상황이 윗 단계에 존재하는 영의 세계나 신의 세계를 인지하지 못하게 만들면서, 자기가 속한 세계가 전부이고 자기가 최고라는 오판을 하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런 모습은 인간 세상에서도 자주 일어나는 현상이기도 하지만 인간세상에서는 오판을 하더라도 상대의 존재라도 보이지만 영의 세계에서는 몸이 없으니 그마저도 안 되는 것입니다. 의식의 수준이 다르면 영이 속한 차원이 완전히 달라져 버리니까요.



 그런데 그 영의 세상 중에는 스스로를 옥황상제라고 부르며 영의 세계를 다스리고 있던 자의 세상도 있었습니다. 그의 세상은 최고 등급의 영의 세계가 아니었으며 영의 단계에서도 단지 3등급의 수준에 그치는 세상이었죠.



 그러나 옥황상제가 속한 영의 세상에서는 윗 등급의 세상의 존재는 알 수가 없었기 때문에 그가 속한 영의 세상에서 옥황상제는 자기가 최고인 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세계와 아래 단계의 세계에서는 모두 그를 우주의 지배자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닙니다. 여기에다가 한술 더 뜨는 것은 사람들 중에서도 자기가 옥황상제라는 주장을 하던 사람도 있었다는 것이죠.



 이들은 왜 자기가 옥황상제라고 생각하고 하늘 자체라는 착각을 하게 된 것일까요? 잘 들어 보십시오. 전하께서도 앞으로 이것을 주의하셔야 하니 말씀입니다.



 사람이 마음을 닦는 과정에서는 순간적으로 자기가 없어지면서 하늘이 자기라고 느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게 대단하거나 이상한 일일까요? 아닙니다. 그것은 당연한 것이죠.



 이 우주의 실체는 하늘인 우주밖에는 없는데, 어떤 이유로든 순간적으로 자기가 없어지면 우주가 보이니까요.



 이런 일은 한 번도 아니고 여러 번 있으며 진리로 가는 과정에서 필연적인 과정인 것입니다. 그러니 사실은 좋은 일이지요.



 그러나 문제는 이것을 통해서 자기의 아상이 만들어지는 경우에 생기게 됩니다. 좋은 일이 나쁜 일로 바뀌어 버리게 되는 것이죠.


 

  사실 이런 착각은 열반대법을 배워 마음인 생각을 버리고 자기가 없어져 가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에게 발생을 합니다.



 자기가 없어지고 마치 하늘이 자기가 된 것처럼 느껴지니 착각을 일으켜서 문제가 생기는 것이지요. 이런 경우 대부분 시간이 지나면서 정신을 차리게 되지만 이 과정을 극복하지 못하는 사람도 일부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보통 열등감이 극심하던 사람이 많은데, 감당할 수 없는 큰 깨달음을 얻고는 열등감을 극복할 수 있는 기회이고 인생이 바뀌는 기회라고 느껴지니 깨달음을 버리지 못하고 아상을 만들고 들어가 버리는 것입니다.



 그들 나름대로는 어느 정도 깨친 부분이 있기에 종교의 경전도 이해가 가고, 진리의 입장에서 해석이 되기 시작하면서 그 착각과 아상은 더욱 헤어 나오기가 쉽지 않게 됩니다.



 이런 사람들 중에는 하늘 자체이며 하늘을 다스리는 존재가 옥황상제라는 잘못된 소식을 들어서 믿고 있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옥황상제로 여기게 되는 겁니다. 깨치는 그 순간에 하늘이 자기라고 느껴졌으니까요.



 이런 사람들 중에는 자기가 부처님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하나님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각자의 앎에 따라서 자기가 믿고 주장하는 바가 달라지는 것이죠.



 이런 사람들은 염파가 맞는 자들끼리 서로를 인정해 주며 모임을 만들거나 종교를 만들기도 하면서 사이비(似而非)가 되기도 하는데, 사이비(似而非)라는 말은 진리와 비슷하지만 진짜는 아니라는 뜻입니다.



 진리를 얘기하고 또 진리를 깨친 부분도 있어 진리와 매우 비슷하기도 하고 또 아는 부분도 있지만 진짜는 아니니까 그야말로 위험한 사이비(似而非)지요.



 그러나 결국 이런 자들이 머물러 있게 되는 영계는 진리의 입장에서 보면 아무것도 아닌 허상 자체의 세상이고 그 의식은 죽어있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이런 자들 일수록 열등감과 가슴에 맺힌 한을 풀고 싶어 하기 때문에 스스로 들어간 함정에서 나오려고 하지 않지요.



 이들은 나 자신을 죽이고 다른 이도 죽이는 것도 모르면서, 나를 알아달라고 하는 것이고 또 나를 죽게 만드는 자를 사랑하는 것이죠. 그러니 나를 인정하고 알아주는 자가 정말로 위험한 경우가 바로 이런 경우입니다.



 왕이 되고 싶은 교주의 업습을 가진 자와 왕을 만들고 실세가 되고 싶은 이인자의 업습을 가진 자가 만나 서로를 인정해 주며 서로서로를 묶고 죽이는 것이지요.



 이것은 자기 내면의 열등감이 극심한 자들이 손에 깨침의 떡은 쥐었고, 자기를 돌아보고 회개를 하기는 싫기에, 깨달은 자기를 없애지 못해서 마음에 맞는 자를 찾아 서로를 붙들고 죽음의 함정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전하께서는 항상 자기를 돌아볼 때 자기가 잘못되고 부족한 면모가 가슴 깊숙이 닿아있고 그것이 인정되어 있는지를 보십시오. 열등감이 심한 자는 자기의 부족함을 인정 못하기 마련이니까요.



 자기의 모양이 가진 단점을 잘 알고 이를 겸손하게 인정하며 극복해 나갈 수 있는 것은 조금씩 극복해 나가면서  자기 자신을 경계하고 조심하지 못하는 사람은 언제라도 이와 같은 미치광이가 될 수 있습니다.



 깨달음을 얻는 대복이 화가 되는 경우가 이런 경우지요. 그러니 전하께서도 이를 각별히 조심하셔야 합니다.





 진짜 우주의 주인은 해인(海印=깨달음)을 가지고 와야 합니다. 해인(海印)은 깨달음이고, 깨달음의 마음 자체이며, 이 마음은 우주의 몸마음 자체여서 죽음이 없고 영원히 삽니다.




  그래서 진짜는 사람이 죽지 않고 그 몸이 살아 있을 때 그 영혼을 부활시켜 줄 수 있어야 하고, 일체를 깨치는 지혜와 능력을 주고, 죽음이 없는 대 신선을 만들어 줄 수 있어야 진짜 해인(海印)의 주인인 겁니다.




 자기가 옥황상제라고 주장을 하고 구세주임을 알아달라고 주장을 하며 죽어서 천국 극락 낙원을 보내준다고 말을 한다고 해서 그들이 진짜라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누구나 주장은 할 수 있고 스스로 믿는 것은 사람의 자유이지만, 그 자유는 고통스러운 죽음의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세상에는 허허 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허가 나오고 허가 또 나오고 그리고 마침내 참이 나온다는 말입니다.



 진짜가 있으니 가짜가 있습니다. 그런데 진짜가 오기 전에는 가짜도 가짜인 줄 모르게 되어 있습니다.



 전하께서도 어느 날 진짜가 되는 날이 올 것이고, 알고 보면 자기 자신이 가짜이고 사이비 교주이며 옥황상제였음을 수긍하시는 위대한 순간을 맞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위대한 이유는 진짜가 되어 영혼이 부활하고 진리에 설 때만 그것을 진정으로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진짜가 오기 전에는 가짜도 없었습니다. 진짜가 있어야 가짜가 있는 것이니까요. 그것이 세상에 수많은 구세주와 옥황상제가 설치고 다녔던 이유입니다.



 그러나 진리가 온 순간 나 자신을 포함해서 일체는 모두 가짜가 되고, 뱀이 때가 되면 죽어버린 허물을 벗어야 죽지 않고 살 듯이 그 가짜인 허물은 하루빨리 벗어버려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우주의 시와 때인 것입니다.




 한 나라의 왕으로서 가진 일체를 놓고 나를 지키던 생각마저 놓는 것은 절대로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전하께서 그것을 하실 때만 살 수가 있고, 영원한 생명과 대자유를 얻어 천극락에 들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의 어떤 좋은 것도 죽음을 막을 수없고, 그러면 아무리 좋은 인연도 모두 다 헤어지게 될 것이며, 내가 가졌던 재물도 명예도 모두 남김없이 사라지게 됩니다.



 전하께서 있다고 믿고 살았던 그 좋기도 하고 놓치기 싫은 일체는 다 가짜이고 허상의 마음이니, 사이비(似而非)인 그 모든 일체를 다 없애고 영원한 진짜를 찾으십시오. 그것만이 전하께서 세상에 태어난 진정한 목적을 이루는 것입니다."




 왕은 눈동자가 커지고 입을 다물었으며 깊은 한숨을 쉬었고, 오랫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대현자의 말을 듣다가 보니 자기 자신이 바로 사이비이고, 자기의 왕좌가 사이비이며, 자기의 인생 일체가 가짜임이 실제로 느껴지며 가슴속을 파고들었기 때문이었다.




 한 참을 침묵하던 왕은 조용히 말을 시작했다.


 "말씀하신 대로 열심히 저 자신과 일체를 다 버려서 대 자유를 얻고 진짜가 되고 싶습니다. 그렇게 될 수 있도록 제가 가야 할 길을 알려주시고 옆에서 도와주십시오. 부탁드리겠습니다."



 대현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을 했다.


 " 물론입니다. 제가 드리는 말씀을 언제나 수용적으로 잘 들어주시니 저로서도 정말 감사합니다. 그러면 이제 오늘 수업은 마쳐도 되겠습니까? "



 왕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갑자기 생각이 난 듯이 질문을 했다.


 " 그렇다면 전에 하늘께서 사람의 형체를 갖추어 오셨다는 그분은 옥황상제이신 겁니까 아닌 겁니까? 저는 그것이 궁금합니다."



 대현자는 대답을 했다.


  "세상에 알려지기를 하늘 자체이며 만물을 만들고 하늘을 다스리는 존재는 바로 옥황상제라고 알려져 있기 때문에 전하께서 이해하고 받아들이시기 쉽도록 그 명칭을 사용했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름을 중시하지만  진리는 그 이름에 있지 않으니까요. 혼란을 드렸다면 송구합니다만 이해를 돕기 위해 썼던 것이니 그 명칭은 잊어버리셔도 됩니다. 다만 하늘께서는 스스로를 옥황상제라고 하시지는 않습니다."



왕은 대현자의 말을 듣고 다시 질문을 했다.


" 그렇군요. 진리는 그 이름에 있지 않군요. 알겠습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그분을 부르십니까? 그분을 뵙게 되면 말씀입니다."



대현자는 대답을 했다.


" 네, 저는 스승님이라고 부릅니다. 하늘은 왕이시고, 스승이시며, 아버지시고, 어머니이신 것이 진리의 이치로는 맞는 것입니다만  제가 왕이라고 부르거나 다르게 부를 경우 세상에서 필요 없는 오해를 하기 쉬우니까요. 그리고 하늘께서도 사람들의 입장을 배려하여 그렇게 부르도록 하셨고요."


왕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생각해 보면 한편 기가 막히기도 합니다. 가짜는 스스로를 옥황상제라고 부르고, 자신을 구세주라고 주장하는데 진짜는 세상을 배려하여 그저 스승님이라고 부르도록 하고 계시니 말입니다."



 대현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거야 말로 이 세상의 모순이지요. 안타까운 일이기도 하고요. 그러나 그것은 시간이 해결해 줄 것입니다."



 왕은 고개를 끄덕이여 말을 했다.


"그럼 이제부터 저도 하늘을 일컬을 때 스승님으로 불러도 되겠습니까? 아니 저는 아직 신선이 아니라 자격이 없겠습니까?"



 대현자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을 했다.


"그럴 리가요. 당연히 자격이 있으십니다. 하늘께서는 누구든지 열반대법을 배우고 자기를 없애는 과정에 있는 사람에게는 당신을 스승님으로 부르도록 하고 계십니다. 그 점은 조금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왕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왕을 하면서 세상을 나름대로 바르게 다스리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보니 진짜는 진짜라고 말하지 못하고 가짜가 설치는 희한한 세상을 고치지 못하고 있었군요.


 아, 참, 아니지요.  저 자신이 가짜이고 사이비이니 이 가짜부터 없애야 하겠습니다. 그렇지요?"



 대현자는 크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훌륭하십니다. 맞습니다. 오늘은 참 중요한 것을 많이 배우셨습니다. 한 편 너무 많은 것을 알려드려 소화가 다 안되실까 봐 걱정이 되기도 하는군요. 그러니 복습을 열심히 하셔서 놓치는 것이 없도록 하십시오."



 왕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을 했다.


 "걱정하시지 않도록 열심히 복습을 하겠습니다. 아주 의욕이 치솟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음에 제가 오면 지난번에 말씀하신 만물의 수명과 우주가 진리인 이유도 알고 싶습니다. 제가 평소에 정말 알고 싶던 것입니다. 다음에 오면 그것을 배울 수 있겠습니까?"



 대현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손오공의 긴고아와 가짜에 대한 설명이 많아지며 그것까지 설명드릴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것까지 말씀드렸으면 아마도 머리에 쥐가 나셨을 겁니다. 그것들은 전하께서 다음에 오시면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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