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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어밴드맨 Nov 13. 2024

대현자 제왕학 7

사람은 보이는 것만 있다고 말하고, 보이지 않는 것은 없다고 말합니다



 대현자는 왕의 대답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 사람들은 진리를 말하지만 막상 진리가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제대로 설명을 하지 못합니다.



 진리를 깊이 공부하는 종교인이나, 마음을 버리고 생각을 없애는 열반대법을 공부하는 사람들조차 이 개념이 명확하지 못하여 마음에 진리의 상을 만들고 고생을 하는 모습이 종종 보이지요.



 가장 쉬운 것 같지만 가장 어렵기도 하고 또 중요한 것이 바로 진리에 대한 올바른 개념을 마음속에 형성하는 것입니다. 올바른 진리의 개념과 그에 대한 믿음이 형성이 되어 있어야 허상의 가짜와 진짜를 구분할 수 있고, 자기 속에 빠져도 이를 인지하고 벗어날 수가 있기 때문에, 진리에 대한 개념의 형성은 정말 중요한 것이지요.



 진리는 간단히 말씀드리면 끝없이 펼쳐진 무한대 우주의 허공입니다. 이 우주허공은 물질 세상이 나오기 이전부터 그대로 있었고, 물질이 나와도 그대로 있으며, 물질이 사라져도 그대로 있는, 순수한 비물질의 실체입니다.



 이 우주허공은 살아있고 에너지 자체이며 의식이 존재합니다. 에너지와 의식은 하나지만 둘이고, 둘이지만 하나라, 에너지와 의식으로 구분이 되면서도 아무리 나누어도 결코 나누어지지 않는, 영원불변한 우주의 근본인 본바닥인 것입니다.



 수많은 만물이 나와도 이 진리인 우주허공은 변함이 없고 늘거나 줄지도 않고 그대로 있으며, 이 자체는 가장 미세한 물질의 근본 단위보다도 훨씬 더 미세하여, 어떤 물질에도 밀리거나 막히거나 혹은 걸리는 일이 일절 없이 그대로 존재합니다.





  사람이 말을 타고 달리면, 사람은 바람에 머리가 날리고 공기를 가르며 지나가니, 우주허공도 이와 같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말을 타고 지나가는 사람과 말을, 허공은 그냥 통과하며 그대로 있습니다. 허공은 물질이 닿거나 밀어낼 수 있는 존재가 아니고 그만큼 미세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주 전체에서 가장 미세한 우주허공은 동시에 가장 거대한 존재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뿐만 아니라 우주 전체의 수많은 별들을 포함한 물질의 우주 일체를 그 안에 담고 있으면서 없는 곳이 없이 존재하니까요.



 그뿐 아닙니다. 우주허공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이르기까지 일체의 우주에 없는 곳이 없이 동시에 존재하므로, 끝없는 우주에 영원한 시간을 곱한 것이 그것의 크기니 그 규모와 크기는 상상도 할 수 없이 거대한 것입니다.



 이처럼 가장 크고 가장 작으며 가장 높고 가장 낮은 우주허공은 별들이 아무리 뜨겁게 불타오르고, 별들이 아무리 차갑게 얼어붙어도 조금도 타거나 얼어붙는 일이 없고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그리고 별들이 운행을 하기 위해 서로 잡아당기고 밀어내 움직이는 중력과 자력에도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으면서 그 모든 운행을 주관하고 관여하는 것입니다.




 만물은 그 모양과 특성대로 에너지를 보유하고 있는데, 그 물질의 상태가 고체에서 액체 또는 기체 등 어떤 상태로 변하더라도 그것이 가지고 있는 에너지는 어떤 경우에도 늘어나거나 줄어들지 않고 언제나 변함없이 그대로 존재합니다.



 사람들은 이런 사실을 관찰하여 밝혀낼 수는 있지만 정작 가장 근본적인 이유인 왜 그런 일이 생기느냐 하는 것은 설명하지 못합니다. 그 이유를 알려면 진리를 알아야 하기 때문이지요.



 그 이유는 만물이 형체를 가지고 나와 있어도, 그 물질의 근본이며 실체인 우주허공이 원래 에너지 자체이며 물질과 하나 자체로 변함없이 그대로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늘 만물을 눈에 보이는 형상으로 구분하고, 눈에 보이는 물체만을 있다고 인식하기 때문에, 이와 같이 진리인 우주허공 속에 살고 또 진리인 우주허공을 늘 바라보고 있으면서도 이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합니다.




 전하께 한 가지 질문을 드려보겠습니다.



 이 우주에 물질은 아무것도 없는 태초의 상태에, 우주에는 본바닥인 우주허공만이 존재하였습니다. 물질이 생기기 이전의 상태를 말씀드리는 것인데요.



 그렇게 진리인 우주허공만 있는 상태에서 우주허공이 별, 태양, 달을 비롯해서 지구와 사람을 포함한 만상만물을 만들어 냈다면 그 재료는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왕은 순간 머뭇거렸지만 곧바로 입을 열어 대답을 했다.



 "당연히 우주허공이 아닙니까? 진리인 우주허공 말입니다. 그것 밖에는 없었으니 당연히 그것이 재료가 되겠지요."




 대현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맞습니다. 생각을 해보면 당연히 그 우주허공 스스로가 재료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당시 우주에는 우주허공 자체 말고는 다른 물질이나 존재가 아무것도 없는 상태였으니까요.



 그러니 이 세상은 허공 자체인 우주가 창조했다고 해도 되고, 우주가 만물이 되어 스스로 나왔다고 해도 되는 것입니다. 만물이 나왔어도 그 근본인 우주허공과 만물로 나누어진 것이 아니고 그 실체는 그대로 우주허공이니까요.



 그런 상태를 표현하는 말이 나투어졌다는 말입니다. 형체를 갖추어 나오되 본질인 우주허공에서 분리되지 않고 형체만을 갖추어 나오는 것을 나투어졌다고 하니까요.



  그러나 사람은 보이는 것만 있다고 말하고, 보이지 않는 것은 없다고 말합니다. 있음과 없음은 둘이 아닌 하나고, 있음은 없음이며, 없음은 없음이 아닌 참으로 있음인데 사람은 이를 모르는 것이지요.



  이 우주의 허공이야말로 본바닥이고 진리이며, 하나님이고 부처님이면서 신이고, 물질 이전부터 존재하며 물질을 창조한 창조주이고 조물주인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비물질의 실체인 이 우주허공을 자기의 마음속에 형성한 시간과 공간의 관념 속에서만 바라보니 눈앞의 진리를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는 일이 생기는 것입니다.



 시간과 공간은 물질이 생기고 나서 이에 따라 생겨난 관념에 불과한 것이라, 이 관념 속에서 바라보면 시공을 초월하여 존재하는 진리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지요.




 가만히 한 번 생각을 해 보십시오. 만일 물질이 아무것도 없다면 시간이 존재하겠습니까?




 이 우주 자체는 물질이 아닌 에너지와 의식체라고 했습니다. 이 우주가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무엇이 달라질까요? 나이가 들겠습니까? 병 같은 것이 들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주는 시간의 흐름에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우주허공은 물질이 아니니까요.




 끝없이 펼쳐진 우주허공이 존재하는 공간은 끝없는 무한대이니, 빛보다도 빠른 신의 속도인 생각의 속도로 영원히 간다고 하더라도 끝없이 갈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우주허공은 어디든지 있으며 그 자체가 통째로 하나의 의식과 에너지의 덩어리이므로 여기다 저기다 할 것 없이 모든 공간은 내 안에 있고 어디든지 의식하는 순간 그곳은 바로 여기가 되므로 이것이야말로 참으로 오묘한 것이지요.




 사람은 시간이 흐른다고 말하고 과거 현재 미래가 있다고 말하지만, 진리인 우주는 본래의 그 에너지와 의식체로서 과거 현재 미래의 시공간에 동시에 존재하며, 시간과 공간에 갇혀있지 않고 하나로 트여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진리의 입장에서 보면 과거도 없고 현재도 없고 미래도 없으며, 과거 현재 미래가 모두 지금이면서도 그 모든 시대와 장소가 나 자체인 것입니다. 그러니 세월은 없고 세상도 없으며 오로지 나만 존귀한 것이지요.



 이것이 바로 석가모니께서도 말씀하신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 = 하늘 위와 하늘 아래 오로지 존귀한 것은 오로지 나뿐이다)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이것은 진리의 관점인데, 이 관점이야말로 진리의 것이므로 어느 때 어느 장소에서 보아도 변하지 않는 것이고 영원한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참된 것입니다."




 왕은 감탄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유명한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이라는 말의 진정한 뜻과 상세한 설명을 오늘 듣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우주 전체와 모든 시간대에 걸쳐서 동시에 실존하며 살아있는 진리야말로 진정 천상천하유아독존이군요.



 저는 특정한 깨달은 사람을 의미하는 것인 줄 알았는데 완전한 진리의 입장이었군요. 진리의 입장에서 보니 우주의 일체 시공간에 실체는 나 밖에 없고 나 외에는 모두 허상이니 정말 당연하고도 또 당연합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진리 얘기는 늘 비슷한 얘기를 듣는 것 같은데도, 막상 들으면 제 마음에 늘 새롭게 느껴지는 것이 참 신기한 느낌입니다."




 왕은 신이 나서 말을 했다. 그러다가 말을 멈추고 잠시 생각하는 듯하다가 대현자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제가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사실 전부터 궁금해 왔던 것인데 제가 이해하기가 어려운 것이라서요.



 실체로 보이는 물질이 그냥 허공이라고 하는 것은 이해가 갑니다. 진리의 입장에서 보니까 말이지요. 그런데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있습니다.



 그러면 실체도 없는 물질 세상을 도대체 왜 하늘께서는 만드셨느냐는 의문이 있습니다. 위대하시고 전지전능하신 하늘께서 도대체 무슨 이유로 이와 같은 무의미해 보이는 일을 하신 걸까요? 



 거기다가 사람만 마음을 닦아야 한다니 더욱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조금 불공평하게 느껴지기도 하고요. 다른 만상만물은 하늘께서 사람으로 오시면서 그냥 천극락에 부활을 시켜주시는데 말입니다.


 이런 저의 생각이 하늘께 불경한 것일까요?"




 대현자는 고개를 저으며 부드럽게 말했다.



 "불경이라니요. 아닙니다. 그것은 핵심이 있는 중요한 질문입니다.



 물질세상을 다 만들어 놓고, 사람도 만들어 놓았으면서도 막상은 실체가 아니라니, 사람의 입장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당연합니다.



 그 모든 물질은 결국 나오자마자 죽음의 과정에 다시 오르는 것이고, 물질로 존재하고 있는 동안에도 알고 보면 실체는 없고 죽어있는 것이니 그 존재와 탄생의 이유가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는 것이죠.


 

 거기다가 다른 만물은 하늘께서 오셔서 그냥 천극락에 부활을 시켜주시는데, 사람만은 마음을 닦아야 본래의 우주마음을 찾을 수 있고 부활을 할 수 있다고 하니 당연히 의문이 생기실 겁니다."




 왕은 대현자의 말에 안심을 하는 표정이었다.



 "진리에 대해서 천상천하유아독존에 이르기까지 그렇게 확실하게 정리를 해주셨는데, 제가 의문이 생긴다고 말씀드리려니 죄송하기도 하고 난감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의문을 가지는 것이 당연하다고 해주시니 안심이 됩니다. 저의 생각을 모두 버려야 하는데, 이런 의문을 가지는 것이 적절하지 않은 것 같아서 망설였거든요."




 대현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의문을 갖는 그 자체는 문제가 없습니다.



 내 안에 잠재되어 있던 일체의 의문의심은 진리의 마음자리에 머물게 되면 저절로 하나씩 피어오르게 되어 이마에 머물게 됩니다. 그러면서 그와 동시에 이마에 머문 의문 일체는 진리의 마음자리에서 모두 다 알아지고 깨쳐지며 의문의심의 일체는 해소되고 끊어져 버리지요.



 그래서 진리는 의문의심이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대도무문(大道無問 = 참 진리는 의문의심이 없다)인데, 과거부터 전해져 오던 대도무문(大道無門= 참 진리의 길은 달리 없으니 꾸준하게 정진해야 한다)과, 발음되는 소리는 같지만 뜻은 사실상 반대이므로 함께 설명을 해 드리겠습니다.



 한국에 전해지는 말에는 '도통 영문(道通 靈門)을 모르겠다. 그래서 답답(答答)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과거 도를 닦던 사람들이 하던 말인데, 진리로 통하는 인 도통영문을 몰라서 답답(答答=해답을 구함)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과거에 마음을 비우고 도를 닦던 사람들이 진리에 도달하지 못하고 한계에 부딪히며 남긴 아쉬움과 답답함의 뜻을 담고 있는 말이지요.



 그런데 이 도통영문(道通靈門)이라는 말과 대도무문(大道無門)이라는 말은 결국 비슷한 맥락에서 나온 말이라는 것이 느껴지지 않으십니까?



 결국 완전한 대도인 진리를 통하는 진리의 방법에 대해서, 모르겠다 혹은 길은 따로 없다는 식으로, 진리를 이루지 못하던 시절의 한계를 말한 것이니까요.




 그러나 이제는 하늘께서 오셔서 모든 진리가 밝게 드러나 있습니다. 그러니 답답할 것도 없고 설명 못할 것도 없지요. 자, 그럼 도통영문(道通靈門)을 한 번 열어 볼까요?




 도를 통하는 영의 문은 알고 보면 간단한 것이, 내가 없어지고 내 생각이 없어지면 진리와 하나가 될 수 있으니, 우주전체가 도이고 진리의 통로인 문이 됩니다.



   다시 말해서 도를 통하는 영혼의 문, 회개를 하여 나와 내 생각을 없애는 것이 그 영의 문을 여는 방법인 것이고, 그 방법만이 올바른 방법이므로, 진리와 하나가 될 때까지 오로지 자기와 생각을 꾸준히 없애며 정진하는 것이 올바른 대도무문(大道無門)의 자세인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답답(答答)하고 모르는 것은, 진리와 하나가 되어 그 마음자리에서 보면 모두 다 깨쳐지며 알아지는 것이니, 이것이 진정한 대도무문(大道無問 = 참 진리는 의문의심이 없다) 경지이지요.



 그래서 평소 궁금한 것이 많았던 사람이 자기의 모든 생각과 자기를 다 버려서 진리에 이르면 세상의 이치를 훨씬 더 세세하고 밝게 알게 되기도 한답니다. 




 다만 의문의심이 좋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전하처럼 마음을 열고 질문을 하면서 대답을 잘 새겨들으려고 하는 경우에는 문제가 없지만, 사람들 중에는 진리에 입각하여 아무리 올바른 대답을 해준다고 하여도, 자기의 알음알이와 관념관습에 맞지 않다는 이유로 그것을 거부하고 시비하는 경우가 의외로 많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 사람이 나쁘거나 잘못되서라기 보다는 오히려 평소에 바르게 살아왔던 분들도 그런 경우가 생길 수 있는데요. 그 이유는 바르게 살려고 노력해 온 자신의 관점을 새롭게 알게 된 진리보다 더 신뢰하기 때문이지요.



 따지고 보면 나는 허상이고 내 생각도 모두 거짓이니, 바뀌어야 하고 없어져야 하는 것은 내 생각과 나 자신이어야 하지만, 바르게 살아온 자기와 자기의 생각을 실제로 믿고 있는 사람은 그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지요.

힘들게 노력해서 만들고 지켜온 나의 가치관을 포기하는 것으로 느껴지니까요.




 그런 점 때문에 하늘께서는 '진리는 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다'라는 말씀을 해주신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진리에 맞추어야 할까요 아니면 진리가 나에게 맞추어야 할까요? 당연히 내가 진리에 맞추어야 합니다. 그러나 자기의 과거가 있다고 믿고, 그 잘한 것을 믿는 사람은 그것을 쉽사리 포기하지는 못하지요.



 사실 알고 보면 삶을 그렇게 바르게 잘 살았기 때문에 진리도 만난 것일 텐데, 막상 진리를 만나서는 그것을 버리지 못하니, 그 모습이 마치 징검다리를 건너고 나서, 징검다리에 미련을 두고 떠나지 못하여 강가에 머무는 모습과 다름없지요.




  이런 일은 허상의 자기를 지키기 위해서 영원한 진리가 될 기회를 버리는 것이니 너무도 안타까운 일이지만, 사회성이 매우 좋거나 바르게 살려고 노력해 온 훌륭한 분들 중에도 이런 일은 얼마든지 생길 수 있습니다.



 아니 오히려 사회성이 좋지 않은 분들과 잘못을 인정하기 쉬운 삶을 살아온 분들은 이런 종류의 문제는 오히려 적지요.



 자기의 삶을 긍정적으로 보고 바르게 살려고 노력하며 살아왔는데, 그 모든 인생과 나의 바르게 한 모든 것을 부정하고 버려야 하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은 것입니다.



 이런 분들은 특히 먼저 마음을 닦기 시작한 선배들에게 걸리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그들의 부족함이 잘 보이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사람은 누구나 잘하는 부분이 있고 잘못되고 부족한 면모도 있기 마련인데, 훌륭한 분들일수록 나의 탁월함이 그들의 부족함과 대비되므로 더 번뇌하기 쉽습니다.



 그리고 허상인 사람에게는 자기 자신의 상이야말로 바로 나의 생명과 다름없기에, 나의 잘한 것을 버리고 부정한다는 것은 자기가 실제로 죽는 것이므로 그렇게 힘이 드는 것입니다.


  

 이런 것은 현장법사가 손오공을 보고 상대가 자기처럼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고 여기며 번뇌하는 것과 비슷한 것이니 오로지 나만 돌아보아야 하지요.



 그래서 사람을 보지 말고 진리만 보라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진리로 가는 과정은 오로지 진리와 나와의 일대일의 관계이니 진리만 바라보고 가야 하며, 그 과정에 걸리는 사람에 대해서는 일체의 시비분별과 의문 의심을 일단은 내려놓고 가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각자 다른 등산 코스를 오르고 있는 것이니까요. 세상에는 같은 사람이 하나도 없는데 나처럼 산을 오르면 그 사람은 정상에 오르지 못한다는 이치도 이해해야 하는 것이죠.



 이 부분에서 전하께서는 남을 시비하지 않고 스스로를 돌아보는 자세로 임하고 계시니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저도 그런 전하를 믿고 자세하고 과감하게 설명을 하게 되어서 알려드리는 재미가 있으니 의문이 생기는 것을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자 그럼 아까 주신 질문에 해답을 찾아보겠습니다. 먼저 왜 없어질 물질세상을 만들었는가부터 시작해 볼까요?




 진리는 영원불변하고 살아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간단한 명제가 있는데요. 그런데 만일 이 우주의 허공에서 무엇이든 형체가 나왔다고 생각을 해 보십시오.



 없던 것이 새롭게 생겼습니다. 진리는 영원하고 불변한 것인데 이렇게 새롭게 생긴 형체가 과연 진리가 될 수 있겠습니까? 없겠습니까?



 그것이 태양이건 별이건 지구건 달이건 지구의 만상만물이건 그 무엇이건, 새롭게 생겨난 그것은 원래 없던 것이므로 새로 생긴 그 순간 이미 진리일 수는 없는 겁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사라져 버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여기에서 만물을 왜 죽을 운명으로 만들었는지에 대한 일차적인 해답이 나옵니다.  그 해답은 '그럴 수밖에 없다 혹은 그래야만 한다'인 것입니다.



 만물만상은 원래 없었던 것이므로 진리가 아니고,  세상에 나오는 순간 무조건 죽을 운명이다라는 것이 당연한 것이고, 그래서 세상에 나와서는 생로병사의 과정을 지나 본래인 우주허공으로 되돌아가야 하는 운명인 것인데요. 해답이 조금 허무하지요? 아마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지요.



 여기서 진짜 의미 있는 해답을 얻으려면 한 발 더 나가야 합니다.



 이 우주는 본래 비물질이며 몸과 마음인 음양의 정신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전하께서 이해하시기 쉽도록 우주의 몸을 음으로 그리고 마음을 양으로 정리하여 음양의 이치로 설명을 해드리겠습니다.



 그것은 진리인 우주가 본래 가지고 있는 음양의 성질을 이해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는데요. 진리의 위대한 지혜와 능력으로 이 당연하고 평범한 음양의 이치가 얼마나 대단한 위력을 발휘하는지 아시게 될 것입니다.



 하나지만 둘이고 둘이지만 하나인 당연한 이치가 또 다른 당연한 이치와 이어지면서 얼마나 엄청난 일이 생기는지 지금부터 잘 들어보십시오.




=> 대현자 제왕학 8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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