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크 시대, 나아가 모차르트의 시대까지도 그랬다. 작곡가는 늘 어떤 고정적인 법칙과 규율, 종교적, 제도적, 신분적 제약, 악기의 표현적 한계, 기보법의 한계, 궁정 혹은 교회 음악가로서 겪는 수요와 공급의 문제, 간섭과 억압, 천박한 유행, 그 외 일련의 제한적 토대에서 정말 제한적인 자원들만으로 작곡을 해야만 했다. 당시에 작곡이란 무궁무진한 미개척지이기도 했지만, 나침반 없이 태평양을 떠도는 뗏목과 같기도 했을 것이다. 그런 극도의 제한 속에서, 신성이나 진리에 대한 추구든, 시대를 뛰어넘은 천재성이든, 생계든 공명심이든 뭐든간에 어떤 계기로 뭔가 대단한 것이 창안되고 창발되어 몇 백년의 시간을 초월해 지금도 현현한 예술로서 존재하고 있다. 심오한 수학 법칙을 증명해내는 듯한, 우주의 원리나 창조주의 진리를 밝히는 듯한 질서와 법칙의 감각. 제각기 시작되어 혼돈처럼 뒤엉키나 결국 절묘하게 수렴하여 종결되는 푸가의 균형미. 요컨대 선율이나 화성의 독창성보다도 이와 같은 극도의 형식미가 그것을 가능하게 하였는데, 처음 클래식 음악에 빠져들었을 때 나를 매료시킨 것은 슈만이나 쇼팽, 라벨과 드뷔시보다는 바로 그런 바로크 음악들이었다. 바로크 음악, 특히 바흐의 음악은 대단한 비르투오조적 연주력이나 철학적인 해석 능력을 요구하지 않는다. 연주자는 그저 악보 그대로 정직하게 재현하기만 하면 되며, 나머지는 음악이 알아서 다 해낸다. 주 샤오메이는 여기서 노자 사상을 만났고, 안드라스 쉬프는 유희적 요소를 찾아냈다. 글렌 굴드는 바흐를 수단화했지만, 굴드라는 예술은 바흐가 없이는 성립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것들은 모두 해석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조응이나 공명이라 할만한데, 나는 음악의 본질이 여기에 있다고 믿었으며, 연주가 기교를 과시하는 서커스로 전락하는 것을 한심하게 생각했다. 독창적 해석과 뛰어난 표현력, 감정적 요소에 큰 비중을 두기 시작한 건 비교적 최근인데, 거의 전적으로 베토벤 덕분이다. 베토벤의 시대에 이르러서는 많은 것들이 달라진다. 선배라 할 수 있는 모차르트의 삶은 벗어날 수 없는 신분적 제약, 즉 생계를 위해 곡을 생산해야 하는 궁정 음악가라는 현실 속에서의 인정투쟁과 좌절의 서사였다. 명랑하고 활기찬 음악과 달리 천재라는 신화의 베일 속 실제 삶은 그랬다. 그러나 베토벤은 생전에 이미 어마어마한 명성을 얻고 있었으며, 그리 단명하지도 않았고, 프랑스 혁명 등 역사적 전환점들을 지나며 더 이상 궁정이나 귀족에 예속된 고용인이 아닌 자족적 예술인, 주체적 작곡가로 활동할 수 있는 환경까지 마련되었던 것이다. 베토벤에게 정말 제약이라 할만한 것은 청력의 상실과 필멸자의 운명, 이 두가지 뿐이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차이 때문에 모차르트가 베토벤보다 대단하다, 베토벤이 운이 좋았고 과대평가되었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인간 내면의 표현으로서의 음악으로 낭만주의를 태동시키고, 기존 질서-음악 내적인 형식적 질서 및 외부의 정치적 질서 모두-를 타파하고, 숭고한 목적론적 삶을 추구하고 그러한 신념과 자의식을 음악에 녹여낼 수 있었던 것은 개인의 천재성이나 불굴의 의지만으로 가능한 일은 아니었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자유분방한 난봉꾼 이미지의 모차르트와 마찬가지로 베토벤의 삶 역시 극적 알레고리로 소비되는 측면이 있고, 표제음악처럼 잘못 낭만화되어 본질을 가리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아무튼 후기 음악의 난해함과 파격, 익숙한 선율과 조성의 해체, 해석의 다양함에도 불구하고 베토벤의 음악에는 공통적으로 영혼을 전율하게 하는 힘이 있다. 이는 바로크 음악이 담지하는 진리와는 또 다른 고유한 예술성이다. 음악 역사상 처음으로 인간의 삶과 정신이 주체가 된 것인데, 직속 후배인 슈만과 브람스는 물론이고 스트라빈스키, 나아가 쇤베르크조차도, 아니 거의 모든 음악이 그 계보 안에 있다. 이는 형식의 발전사라기보다도 음악 일반의 이데올로기적 차원의 이야기다. 고전/낭만/현대가 아니라, 베토벤을 기점으로 전후를 나누는 것이 더 타당하다는 것이다. 시대가 도와줬든 어쨌든간에. 예컨대 수학과 문학은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고유한 진리를 생산하며 서로가 서로의 언어로 환원될 수 없는데, 나는 바흐와 베토벤의 미학적 관계도 이와 같다고 생각한다. 분별하여 주의 깊게 듣다 보면 분명 그렇다는 확신이 든다. 클래식이라는 범주에 속해 있지만 베토벤 전과 후는 그렇게 다르고 또한 각자가 고유하다. 그래서 베토벤은 영원한 현대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