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dith Beheading Holofernes (Caravaggio, 1598)
나이를 먹을수록 최소한의 인간적 품격이 없는 사람들하고의 인간관계는 점점 줄이거나 끊게 된다. 달리 말하면 제멋대로 사는 인간들을 멀리하게 된다는 말이다.
별다른 자기비평 없이 그냥 살아지는 대로 사는 사람들은 계층이나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정신이 천박해지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 '정상적'으로 학교 나오고 군대 다녀온 평균적 남자들의 경우 소위 '남자다움'이라는 것에 대한 좀 이상한, 매우 뒤틀린 준거를 체화하게 되는데,
그래서 난 남자들 군대얘기하면 밤샌다는 식의 통념이 별로다.
사실 군대 얘기라고 해봐야, "내가 이만큼의 부조리를 내면화했다"라거나 "내가 이만큼 고통받던 비참한 노예였다"외엔 별다른 내용이나 의미가 있을 수가 없는 토픽인데,
일단 그게 서로 우열매기고 자랑질할만한 건덕지도 아니며, 무엇보다 대체 얼마나 서로 컨텐츠가 부실하고 대화의 소재가 궁색하면 그 오래전의 군대 얘기까지 굳이 끄집어내서 대화를 이어나가야 하나 싶기 때문에,
군대 얘기를 어지간하면 먼저 꺼내지 않는 편이고, 어쩌다 나와도 길게 가져가지 않으려고 하는 편이다. 예 그냥 꿀빨면서 휴가 많이 나왔슴다~ 하고 만다.
고만고만한 또래 남자들끼리 모여봐야 대체로 하는 짓거리라곤 주량 과시하면서 소주 붓다가 여자 얘기 여자 외모 얘기 유흥 얘기 그리고 결국 군대 얘기나 밤새 하는 게 전부고,
그 과정에서 친구 집단이라 하더라도 암묵적 서열 같은 게 정해지고 그 기준은 결국 누가 더 '남자답냐'인건데,
결국 그런게 일종의 자본으로 또는 간지로 기능하는 사회라서 그렇다. 우리나라만 그런 거 아니고 양상만 다르지 다른 나라도 비슷할 것이다.
미국에선 홀리스터 입고 미식축구하는 몸 좋은 백인 인싸들이 그러고 있겠지.
부조리를 견뎌낸 걸 자랑스러워 하고, 폭력을 재생산하고, 혐오와 차별을 정당화하는 것. 그리고 그런 것들로 서로 접점을 찾아 집단의식을 공유하고 서열을 세우는 것.
악덕이라기보다도 일단 심미적으로 너무 추하지 않나? 남자다움이란 추잡함과 동의어인가?
미학적 판단으로부터 윤리적 판단이 나온다. 명예롭게 사는 것, 우아하게 사는 것, 선하게 사는 것, 뭐든간에 심미주의적 감수성 없인 불가능하다. 구체적으로 뭐가 명예롭고 우아하고 선한지에 대해 알고 느낄 수 있어야 그걸 추구하고 지향할 수 있을 것 아닌가? 내가 하는 생각과 행동이 괜찮은지 추잡한지를 분별할만한 판단 근거가 있어야 할 것 아닌가?
미학적으로 고양되지 않은 인간이 외재하는 윤리규범에만 천착하고 거기에 종속, 억압될 때 박원순 같은 사람이 만들어진다. 두 얼굴의 사나이 그딴 드라마틱한 사건이 아니라 누구나 당연히 그렇게 되고 마는 것이다.
군부심 갖고 군대 이야기 좋아하며 군대식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 박원순보다 질적으로 나은 사람일 가능성은 제로다. 권력이 주어지고 기회만 오면 더한 짓도 기꺼이 할 사람들이 한국에 최소 천만 명은 될 것이라 확신한다. 적어도 그는 공적 영역에서의 업적이라도 있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 가운데 아직도 군대식 사고방식이나 군부심을 갖고 있는 남자라면 곧 그림 속의 홀로페르네스처럼 처참히 목이 잘리고 말 것이다. 색욕과 무지가 부른 불명예스러운 죽음! 당신들의 자랑스런 '남자다움'의 대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