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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fe with Fugue Feb 23. 2021

우니 파스타


Spaghetti ai Ricci di Mare

집들이 하려고 샀다가 아쉽게도 못하게 돼서, 졸지에 시한부 유통기한 재고관리 신세가 된 캐나다산 우니 한 팩을 몽땅 털었다. 우나는 재료 자체에 감흥이 거의 없는지라 손님 올 때 아니면 애초에 구입할 일이 없는 재료인 바 처리가 ᅢ우 난감하였기 때문이다. 간장 찍어 김 싸 먹기엔 양이 너무 많고 국을 끓이자니 미역 사러 나가기가 귀찮다. 회 주문해서 카르파쵸를 하자니 배보다 배꼽이 크다. 그냥 한방에 다 털어먹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역시 파스타. 따라서, 내 돈 주고는 안 사먹을 Spaghetti ai Ricci di Mare 뚝딱 완성. 즉흥적인 파스타라 레시피 같은 거 없음. 원물의 풍미를 극대화하기 위해 별다른 재료 안 넣고 딜만 좀 올림. 면 다 먹고 남은 우니 소스에 밥 비벼서 김치찌개랑 2차로 먹음.



어렵지도 않고 특별할 것도 없는 파스타인데 이걸 시그니쳐로 삼아 대중을 기망하는 양심 없는 식당들이 많이 눈에 띈다. 파스타라는 요리를 만들면서 비싼 고ᄀ 재료에 의존하고, 재료를 과시하고, 그걸로 마케팅을 하려는 생각 자체가 이탤리언의 정신에 크게 반한다. 이탤리언은 쇼맨쉽과 엔터테인먼트, 재료 플렉스의 장르가 아니다. 최고급 하타테 우니든 제철 해수우니든 개인적으로는 주면 먹고 없어도 아쉽지 않은 편이다. 코지마에서 먹든 키요타에서 먹든 산지에서 먹든 마찬가지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 황금빛 생식선에 현혹되고, 이것만 사용하면 무조건 좋은 요리라고 착각한다.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대중이 우니라는 재료에 환상을 가지면, 그것을 악용하는 판매자가 많아지고, 핵심이 누락된 공허한 요리들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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