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ghetti alla Carbonara
카르보나라는 '정통' 이탈리아 파스타를 꼽을 때 늘 순위에 들어가는 파스타이지만, 생각보다 그 '전통'은 길지 않다. 2차 대전 언저리를 전후해 생겨난, 말하자면 고추장 떡볶이 정도의 역사성을 지닌 음식인데 그 위상 또한 비슷한 수준으로 대단하다. 떡볶이로 장난치면 한국사람 열받듯이, 카르보나라로 로마 사람을 도발하면 야단이 난다. 특히 생크림과 베이컨은 로마인의 역린이다.
돼지 비계를 대리석 통에 염장하여 숙성한 가공육인 라르도(Lardo) 따위의 기름에 페코리노 치즈, 달걀 등을 면에 비벼 먹었다는 기록은 그 전에도 여럿 존재하였으나, 지금과 같이 정형화된 형태의 카르보나라는 홉스봄 식으로 말하자면 '만들어진 전통'이다. 정확한 유래는 불분명하지만, 파편화된 전통들에 현대성과 체계, 이야기를 부여해 창조해낸 레시피임에는 틀림없다. 라치오 지방 석탄 광부들이 먹던 방식, 혹은 후추가루가 음식 위에 떨어진 석탄 가루처럼 보인다는 이유로 붙여진 이름인데, 짧은 전통 때문인지, 쉬이 구하기 어려운 재료들 때문인지 형태의 훼손과 변형이 전세계적으로 가장 활발한 파스타 중 하나이다.
아래는 로마인에게 어그로를 끌지 않는 정통 레시피이다. 숙지해 두면 이탈리아 사람을 사귀는 데 유용할 것이다.
재료 :
1. 관찰레 또는 판체타
2. 건면 스파게티(가급적 두꺼운 스파게토니나 부가티니, 키타라 등을 사용) 또는 리가토니. 반죽에 계란이 들어간 딸리아뗄레 종류의 면은 어울리지 않는다.
3. 면수에 넣을 약간의 소금.
4. 블랙페퍼. 백후추 순후추 허브솔트 등은 안 된다.
5. 페코리노 로마노. 기호에 따라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를 섞어도 됨. 1인분 기준 5-60g.
6. 계란. 노른자만 써도 되고, 좀 더 부드럽고 크리미한 소스를 원한다면 전란 사용.
7. 이외 그 어떤 재료도 필요하지 않음. 생크림 NO 올리브오일 NO 마늘 NO 이탤리언파슬리 NO 치킨스톡 NO.
조리 :
1. 팬에 잘게 썬 관찰레를 중불에 볶는다. 굽는 느낌이 아니라 서서히 기름을 뽑아낸다는 느낌(Fat->Oil). 따라서 센 불에 관찰레를 올리면 안되고 팬이 달궈지기 전에 처음부터 관찰레를 올려 천천히 익힌다.
2. 냄비에 물을 충분히 끓이고, 소금 약간을 넣어 면을 삶는다. 잔열 조리로 마무리하기 때문에, 알 덴테보다 조금 더 삶는 게 좋다.
3. 곱게 간 페코리노 로마노 치즈와 난황을 잘 섞어 소스를 만들어 둔다. 부드럽게 섞으려면 면수 약간과 관찰레 기름을 첨가하고, 전란을 1:3정도 비율로 만들어도 좋다.
4. 관찰레가 바삭바삭할 정도로 튀겨지듯 구워지고 충분한 기름이 나오면 관찰레를 모두 꺼낸 뒤 불을 약불로 줄이고, 냄비에서 면을 꺼내 그대로 팬에 투하한다. 이 때 자연스레 면에 어느 정도의 면수가 묻어 들어오는데, 관찰레 기름이 잘 유화되도록 치대듯 충분히 섞어 준다.
5. 불을 완전히 끄고 면의 열기가 너무 강하지 않은 상태에서 3의 소스를 팬에 붓고 면 전체에 코팅되듯 소스가 묻도록 3분가량 치대듯 섞는다. 이 때 온도가 너무 높으면 계란이 빠르게 익어 스크램블드 에그가 되므로 주의하자. 팬이 아닌 보울에 옮겨 섞어도 좋다.
6. 면이 잘 비벼졌으면 접시에 담고 후추나 치즈를 취향껏 더 첨가하여 먹는다. 스크램블드 에그를 만들지 말라고 해서 소스를 익히지 말라는 의미는 아니다. 콧물 같은 소스의 질감은 실패한 카르보나라의 전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