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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fe with Fugue Mar 02. 2021

카쵸 에 페페, 변증법적 미학


Cacio e Pepe

양치기 목동들의 간단한 새참에서 유래한 카쵸  페페는 라치오 지방의 가장 오래된 파스타 레시피  하나이다.  번의 연습 끝에, 드디어 내가 원하는 소스의 질감이 나와주었다. 기름  방울 없이 면수만 가지고 치즈를 유화시켜 크림처럼 만들려니 어렵다. 온도가 낮으면 섞이질 않고, 온도가 높으면 피자치즈처럼 굳어서 늘어진다. 재료의 온도와 물성을 완전히 지배하고 컨트롤할  있어야 하는, 그야말로 최고난도의 파스타  하나이다.


한편 현지에서는 대략 우리나라의 간장계란밥 정도의 위상을 지니는데, 반찬 없을  집에서 대충 만들어 먹는 정통 카쵸  페페의 비주얼은 대개 3, 4번째 사진과 같다.  애초에 난이도를 따지고 자시고  건덕지도 없는 가장 간단한 집밥의 일종이다. 그러나 간장계란밥도 미슐랭 한식당에서 만들면 다르듯, 요즘은   파인한 카쵸  페페가 유행한다. 두툼한 토나넬리나 키타라 면을 사용하는  같지만, 크리미하고 리치한 소스의 풍미와 질감을 한껏 살려 만든다. 마치 카르보나라에서 달걀과 관찰레만  듯한 느낌이다. 이처럼 전통은 끊임없이 재구성되고, 정통은 시대의 욕구를 반영하여 시시각각 변화한다.

이탈리아어에서 치즈를 뜻하는   보편적인 단어는 Formaggio이다. 불어 Fromage 마찬가지로 라틴어 Formos 어원이다. 틀에 넣어 형태를 굳힌다는 뜻으로, 영어의 'Form'이라는 어근도 여기서 유래했다. 한편 Cacio 라치오를 비롯한 중부  남부지방에서 통용되는 일종의 방언인데, 치즈를 뜻하는 라틴어 Caseus 어원이며 'Cheese'역시 어원이 같다. 따라서 '카쵸' 하면 보통 양젖(페코리노)으로 만든 경성 치즈, 대표적으로 페코리노 로마노 등을 의미한다.

 페코리노 로마노를 포르마지오라고 하는 경우는 있지만, 북부 지방의 치즈인 고르곤졸라 등을 카쵸라고 부르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말이다. 따라서 카쵸  페페는  이름에서부터 출신지를 유추할  있는 파스타  하나인 것이다. (비슷한 예로, 알리오  올리오 역시 로마에서는 아이오  오이오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

극도의 형식적 제약 속에서 재료의 단순합을 초월한 맛이 창발되는 카쵸  페페의 변증법적 미학을 나는 매우 좋아한다. 음악으로 치면 소나타 양식에 비유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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