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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fe with Fugue Nov 20. 2020

동물은 우리의 친구


나는 정말 엄청난 동물애호가다. 개, 고양이 뿐 아니라 기본적으로 거의 모든 생명 가진 동물들을 좋아한다. 동물이 사람에게 줄 수 있는 위로가 사람의 그것보다 더 크다고 생각할 때도 많고, 특히 가끔 정말 사람처럼 감정을 보이고 사람과 애정어린 관계를 갖는 동물들을 보면 그런 생각이 더욱 강해진다. 인간은 생각이 너무 많고 늘 뭔가를 모색하는 존재라 영 피곤하지만, 동물은 사랑엔 사랑으로만 답하기에 사랑스럽다. 종종 사람들이 "그럼 왜 개 안 키워?"라고 물어 보는데, 정말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안 키우는 것이다. 생각 없이 귀엽다고 동물을 물건처럼 구입하는 사람들을 혐오한다. 내 자식처럼 돌보고 늘 함께 있어 주고 사랑해주지 못할 거면 동물을 결코 기르지 않겠다는 신조가 있고, 평생 책임지고 함께할 자신이 없으면 절대 동물을 집에 들여서는 안 된다는 고집이 있다. 심지어 곤충, 벌레라도 무익한 살생은 삼가며, 조금 오버스럽고 종교적이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육식(생선 포함)을 할 때면 늘 최소한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려고 노력을 한다. 채식주의자는 결코 아니지만 공장형 사육에도 반대한다. 그래서 나는 시민들이 동물을 어떻게 대하느냐가 한 사회의 성숙도나 선진성을 가늠하는 중대한 잣대 중 하나라고 믿는다. 어떤 사회가 동물 존중을 중시한다면, 그것은 사람들이 동물을 먹이나 가축 이상으로 대할 만큼 정신적으로 여유가 있다는 방증이고, 사람들이 자기보다 약한 존재를 함부로 대하지 않고 아껴줄 수 있을 만큼 윤리적으로 성숙하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반면 동물 학대는 사회심리학적으로 사회에 권위주의가 만연하고 약육강식의 구조가 존재할 때 쉽게 발견되는 일종의 폭력적 행위성이며, 통계적으로도 동물 학대와 아동 학대, 강간 등의 발생률 간 상관관계가 높다는 점에서 그것이 단순한 개인의 인격적 결함에 의한 게 아니라 한 사회 전체의 정신적 성숙도와 중요한 관계가 있음을 유추해볼 수 있다. 개는 우리의 친구니까 먹으면 안 되고 소, 돼지는 먹어도 된다는 주장엔 조리가 없다. 우리가 개고기 먹는 사람을 비난하는 이유는 식용 개를 사육하고 도축하여 유통하는 방식이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기 때문이지 다른 이유가 아니다. 개고기를 먹는 행위가 그러한 잘못된 구조를 유지, 강화, 재생산하는 데 기여하기 때문에 반대하는 것이지 개가 다른 동물보다 특별히 더 존엄하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무엇보다 나는 먹기 위한 살육과, 유희적인 학대 및 무책임한 동물유기를 엄격히 구분하고 싶다. 후자는 명백히 처벌의 대상이며, 엄연히 범죄고, 윤리적으로도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이러한 컨벤션이 더 강화되고, 제도적, 보편적으로 정착되었으면 좋겠다. 사람들이 뭘 먹고 소비하기 이전에 자기 행위의 외부성을 조금이라도 생각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게 동물과 구별되는 인간의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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