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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fe with Fugue Nov 22. 2020

돈의 진정한 위력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래저래 권위주의에 익숙하다. 타인과의 관계맺음도 위아래가 먼저 정립되지 않으면 혼란스러워 한다. 그래서인지, 가만히 있어도 그냥 먹는 나이나 그저 타고나는 성별조차 한국에서는 강력한 자본으로 기능한다. 처음 만나면 나이부터 묻고, 수틀리면 하는 소리들이 대개 이렇다.


"으~~~디 어린놈이! 으~~~디 여으자가!! 너 몇살이야~~~??" 상하관계가 불가피하다면 누구라도 가급적 위에 서고 싶어 하기 마련이다. 문제는 지속가능성이다. 아무 공로 없이 거머쥔 관습적 하이어라키는 위기를 맞고 있다. 연장자라서, 선배라서, 남성이라서 당연시되고 용인되던 모든 우월적 지위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는 시대다. 뭐 대단한 정치적 올바름이나 근대적 개인성의 개화 같은 게 아니다. 바로 자본주의 때문이다. 유물론적인가? 현실이다. ​ 예컨대 외제차 모는 막내직원을 싸가지 없는 놈이라 폄하하는 직장상사의 분노에는, "내가 저놈보다 연장자이며 선배이므로 늘 모든 면에서 더 높고 존중받아야 할 사람인데"라는 봉건적 당위의식과 함께, 그 모든 얍실한 당위를 한방에 묵사발낼 수 있는 '더 많은 부'라는 권력을 그 아랫것이 쥐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실존적 공포가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직급이나 서열로 남을 밟는 쾌감의 이면에, 나 역시 돈으로 밟힐 수 있다는 불안이 따라붙게 된 거다. ​ 명품백 김치녀 프레임도 그렇다. 명품백 정도 사줘야만 멋진 여성을 만날 수 있는 썩은 세상에 분노한다? 돈만 밝히는 한국 여자? 엉뚱한 소리다. 소위 루저 남성들의 분노는 명품백을 밝히는 의존적인 여성(사실 이것은 망상 속 환상종에 가깝다)이 아닌, 명품백을 자유롭게 살 수 있는 금수저or고소득 여성들을 향한다. 여태까지 늘 페니스 달렸다는 이유만으로 구가하던 무조건적인 남성우월의 시대를 다른 무엇도 아닌 돈이 끝장내 버렸기 때문에 분노하고 증오하는 것이다. 저년이 나를 무시햇서!!! ​ 꿈도 못 꿀 가격의 사치품을 아무렇지 않게 소비하는 여성의 존재, 나보다 비싼 차를 타는 부하직원의 존재로부터 실존을 위협받는 사람들이 하도 많다보니 한국에서 살아가기가 이렇게 피곤한 것이다. 즉 다들 위아래 따져대기 좋아하는 건 사실 돈이 없어서인 경우가 많다. 대체로 타인과 대등하게 공존하고 서로 존중하며 살아가는 법 자체를 몰라서이기도 하지만, 애초에 다들 돈이 없다보니 그 알량한 구시대적 하이어라키로 자존감을 지탱하며 위태위태하게 소인배처럼 살아가고 있다. 싸가지 없다 속물적이다 비난하며 도덕적 우위라도 건져보려 하지만 현실은 그냥 초라한 꼰대로 도태될 뿐. ​ 돈이 권력인 세상은 당연히 잘못된 세상이고 자본주의 자체가 엄청난 불평등을 내포하고 있는 구조긴 한데, 재미있게도 자본주의의 그 심플한 천박함이 구시대의 악습과 통념을 박살내는 맹위만큼은 심히 마음에 드는 것이다. 그래서 다들 그렇게 돈 돈 하는 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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