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단한 미래의 꿈을 만들어 두자. 선택의 기로에서 큰 도움을 얻을 것.
2023년 1월 31일 씀
어떤 방식으로든 생각을 밖으로 표현하는 것은 곧 자신의 내면과 교류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표현하기 전에는 내 마음 어딘가에 표류하고 있던 아이디어들이 표현하려는 의지와 결합해 문장으로, 때로는 그림으로 결합하고 구체화한다. 표현을 통해 나의 생각은 실체와 조금 더 가까워지고, 더 나아가 살아 숨 쉬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글은 교류 양식의 생생한 움직임이다. 나를 둘러싼 환경과 맥락, 현상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과정을 거쳐 자의식에 숨결을 불어넣는다. 하나의 몸짓이, 꽃이 되어가는 과정이다.
살아오며 숱한 경험을 했다. 완벽한 기준을 스스로 세우고 도달하지 못한 나를 자책하고 원망도 해보았다. 자기 합리화로 나를 지켜내기도 하였다. 나를 끝까지 불태워 탈진하는 경험은 물론 슬럼프에 허우적거리는 나를 그저 두고 바라만 보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 순간마다 나는 나와 주변환경에 대해 생각해 왔고, 그 생각대로 나의 어려움과 행복과 분노와 슬픔을 체감했다. 삶은 자신이 만들어가는 것이라 배웠으나, 내가 경험한 바, 그 동시에 자신이 만들어낸 삶에 의해 끌려다닐 수도 있음을 알았다. 집착을 만들고 기준을 세우는 것은 환경이 아니라 나 자신이었다.
인생은 내 뜻대로 되지 않고, 도리어 그 인생은 내 손을 떠나 있는 무수히 많은 사건이 얽히고설킨 모습으로 눈앞에 펼쳐진다. 뜻대로 되지 않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억지로 뜻을 관철시키려 하면 어김없이 손 밖의 어떤 사건이 내 앞을 가로막고, 내 능력으로는 어쩔 수 없는 여러 조건들이 나를 제한한다. 말 그대로 '기본적인 제약 조건'이 너무나 많다. 그렇다면, 그럼에도 내가 살아내야 한다면, 삶의 키는 현상의 해석에 있지 않나 싶다.
'명분'에는 '목적'이 숨어있다. 명분을 세운다는 말은 곧 목적을 이루기 위해 이유를 만들어내는 것이라. 삶을 살아가는 이유가 외생적으로 존재한다면 삶에 명분이 자리 잡을 틈이 없을 테지만 알다시피 삶의 이유는 삶과 소통하며 생겨난다. '이유'란 결국 내 손안에 있는 것이다. 최종보스라 할 수 있는 생의 이유도 내 손에서 만들어지는데 하물며 감정의 이유, 행동의 이유야 말할 것도 없다. 삶이나, 감정이나 모두 내가 삶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달려있다.
그러나 하루아침에 원하는 걸 얻어내려 하는 것은 도둑 심보다. 그동안 가지지 못했던 내 마음의 평화를 일순간의 깨달음으로 쟁취할 수 있을 수 있을까. 성현들이 깨달음 뒤에도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았던 까닭이다. 깨달음 뒤에는 이를 내재화하는 과정이 이어져야 한다. 많은 종교적 교훈이 이를 말해준다. 불교의 돈오점수와 기독교의 성화가 이를 말해준다. 우리는 언젠가 생각만으로 다 이루었다고 느끼고는 작심삼일로 표현되는 결과를 낳은 경험이 있지 않은가.
그래서 행동과 경험이 중요하다. 생각만으로는 쌓이지 않으며, 그 행동으로 비로소 실천되고, 이것이 경험으로 축적되어 시나브로 변화를 만들어낸다. 몸과 마음은 연결되어 있음이 여기서 드러난다. 행동은 체화의 영역이다. 그러니, 경험을 만들자. 내게 스스로 생각한 바를 이해시키고 느낀 바를 언젠가 당연하게 여길 수 있도록 꾸준히 경험의 밥을 먹이자. 파도가 멋진 해변을 만들듯 내 마음에도 어느새 바다의 풍경이 나타날 것이다.
근래에는 40살의 미래를 고정해 뒀다. 과거에는 현재를 기준으로 인생을 설계해 갔기 때문에 내 선택에 따라 미래의 내 모습도 바뀌어왔다. 그러나 이렇게 계속 살다가는 인생의 난이도가 상당히 올라갈 것을 느꼈고,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 결국 '내가 꿈꾸는 40살의 나'를 최대한 고정하자는 결론을 도출했다. 단기적 미래는 어떻게든 달라지겠으나 그 선택들은 내가 꿈꾸는 명확한 미래를 향해 달려갈 수 있도록 심적인 안전장치를 마련한 것이다. 물론 인생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기에 돌발변수가 튀어나올 때마다 골머리를 앓겠으나, 그때마다 조금씩 목표치를 수정하면 될 것이다. 먼 미래를 바라보며 사는 방법에는 이게 최선인 것 같다.
단단한 미래의 꿈을 만들어 두자. 선택의 기로에서 큰 도움을 얻을 것이다. 적어도 선택의 기준이 현재인 것보다는 중장기 목표에 두는 것이 삶에 유리하지 않은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인생이기 때문에 아이러니하게도 더 먼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뭐, 극단적으로는 영원히 죽지 않는 삶을 준비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각 마일스톤마다 목표치를 두고 보다 단순하게 살아가고 있다. 가장 가까운 마일스톤이 내게는 40세다.
분주함과 혼란스러움이 이따금씩 정신을 흩뜨릴 때도 있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살아가려 노력한다. 여러 사건 사고들도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애쓴다. 다른 사람의 말과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 역지사지해본다. 부족한 대로 마음의 평정심을 찾기 위한 나의 행동방침이다. 물론 사람은 본디 일희일비하는 존재다. 하지만 일희일비 안 하는 척 내 마음을 다스리다 보면(?) 나름의 단순한 삶을 살 수 있는 것 같다. 다사다난한 현대사회를 행복하게 살기 위한 한 현대인의 끈질긴 노력은 앞으로도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