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의 기억

꼭지 힘 부족해 땅에 떨어진 열매들 가운데 나무가 난다.

by 하전

2019년 9월 27일 씀


가을이 다가온다. 또다시 한 해가 지나간다. 이제 일요일이 열다섯 번이면 올 해가 다 지난다. 이런 가을 속에서 이제 나무들은 잎을 떨궈내고, 단풍으로 물들고, 점점 겨울을 날 채비를 시작하겠지. 바람은 불 것이고, 가을비는 내릴 것이다.


바람은, 가을의 쌀쌀함은 나무의 나이를 가늠하게 해주는 나이테를 나무에게 선물한다. 여름 한 계절 열심히 일구어 낸 열매들만이 나무의 산물이 되지 않는다. 열매들이야 내년에 또 열릴 것이다. 나무에게 있어서는 봄, 여름, 가을 계절을 통해 얻어내어 평생을 간직할 경험이자 진실한 산물은, 떨어져 나갈 열매들이 아니라, 기둥 내면에 새겨진 나이테 한 줄이다. 한 줄 더 채워진 그 뚝심에서 내년 나무는 올해보다 더욱 실한 열매들을 많이도 피워낼 것은 확실하다.


생각해 보면 나무도 자기 어미나무에서 떨어져 나가 열매에서 시작해 싹을 틔우고 천천히 자라 지금의 나무가 되었을진대 유독 그 자식인 열매들에게는 야박하다. 자꾸만 나무에 매달려 있으라 한다. 가지에 딸리지 않은 세계는 도처에 두려움과 고통만이 가득하다 말하며 조금 더 안전하게 자라나도록 붙들어둔다. 충분히 익은 열매들도 애써 떠나보내지 못하고 간혹 붙들어둔다. 자신을 떠나면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들처럼.. 그러나, 열매는 가지가 아니다.


나무는 떨어져 나갈 열매들에게 자유를 주어도 괜찮지 싶다. 나무에서 떨어져 나간 열매들은 그때에서야 비로소 완전한 독립을 이룬다. 하지만 연약한 열매의 다음 생은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나무도 예상할 수 없다. 그렇게나 예측할 수 없이 다이나믹한 삶 속에서, 열매 중 누군가는 한 그루의 나무가 될 것이며, 자라서 들판의 풀들보다 더욱 커지고, 가지를 내어 여러 이들이 쉴 그늘을 드리울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 열매를 맺을 것이다. 자신의 어버이가 그랬듯. 그러니 각자의 쓰임이 있고 갈 길이 있겠지 하며 다음에 살아갈 그들의 삶을 응원해 줘도 괜찮다. 과보호만이 최선은 아니다.


나무의 사정은 차치하고서라도, 나무에서 떨어지는 열매들에게도 저마다의 사정이 있는 법이다. 실한 열매가 꼭 그 열매의 삶의 종착점일 필요는 없다. 땅에서 구르고 낙엽과 엉켜 저 언덕 아래로 굴러 떨어지고, 강물에 떠내려갈 수도 있다. 그들 삶은 도대체가 종잡을 수 없다. 위대한 독립의 시작이 바람을 견뎌내지 못해 떨어진 그들이 보잘것없는 뚝심 없음이었을 수 있으나, 더욱 중요하고 우리가 눈여겨보고 지켜봐야 할 에피소드는 그다음부터 펼쳐진다.


꼭지 힘 부족해 땅에 떨어진 열매들 가운데 나무가 난다.


그러니 그들이 열매로서 제 구실을 하지 못했다고 말하는 건 완전히 다른 일이다. 저마다의 사정이 있듯, 저마다의 쓸모가 있다. 떨어진 열매들이 열매나무 주인의 아픔이 될 수 있으나, 동시에 길 지나가던 동물의 한 끼 식사가 될 수도, 땅 밑 동물들의 영양분이, 나아가 땅의 거름이 될 수 있다. 떨어진 열매가 언덕 아래로 굴러가 한 그루의 나무가 될 수도 있다. 열매의 표면이 둥근 건 거친 땅을 굴러 이윽고 새 열매를 만들 나무가 되기 위함이다.


그렇기에 떨어진 열매에게 왜 떨어졌냐 나무라지 말라. 열매가 열매에게 왜 떨어졌냐 말하지 말라.


한 나무에서 열린 열매들의 일생도 이렇게나 다양할 진데, 하물며 인간의 삶은 얼마나 다채로울 것인가. 삶은 끝까지 가보지 않으면 모르는 것인데 당장에 남들이 정해둔 길에 들어서지 못했다 하여 좌절하지 말라. 열매가 되어 사람에게 주어지는 기쁨은 나무의 기쁨이 아니다. 열매의 기쁨도 아니다. 이를 위해 땀 흘리는 농부의 기쁨이다. 가지를 쳐내는 농부에게는 실한 열매를 얻어내려 하는 뚜렷한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계획된 농업에서 열매들의 미래는 천편일률적이다. 떨어진 열매는 썩어 거름이 되고, 끝까지 매달려 있던 열매들은 출하되어 우리의 식탁에 놓인다. 단 두 가지 삶만이 있는 이 계획은 열매에게 자유를 주지 않는다. 오히려 이 길이 최선이라고 가르친다. 진흙밭에서 뒹구는 그들 안에 있는 커다란 나무를 보려 하지 않으니 그럴 만도 하다. 농부의 목적 안에서 열매들이 가지는 자유는, 떨어져 썩어지거나, 아니면 끝까지 버텨 수확되거나.


모든 사람은 다들 그럴싸한 계획을 가지고 살아간다. 풍파에 처맞기 전까지는. 끊임없이 수정될 자기 앞의 생을 바라보지 못하고 다들 계획을 세워 미래를 살아간다.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일어나지 않은 미래를 그려간다. 그렇게 다들 나무에서 떨어져 봐야 정신이 맑아진다. 꿈에도 없던 낙과의 당사자가 되어봐서야 비로소 눈을 뜰 수 있다. 나무에서 독립해 보아야 자신의 경험했던 부자유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 된다.


그 당시에는 비참하겠으나, 나무가 되어서는 그때에 떨어졌던 경험이 결국 지금의 나를 이루었다며 자랑할 것이다. 그때에 비로소 낙과에서 주어진 독립된 자유의 참 의미를 알아내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매년 열어내는 과실들에게 자유를 주자. 경험을 기억한다는 건 그런 의미다.


나이테는 사라지지 않고 나무의 속에 남는다. 다만 우리는 그의 나이를 겉으로 봐서는 알 수가 없다. 베어져 봐야 알 수 있다. 나무의 어떻게 살아왔는지는, 죽어봐야 안다. 그렇기에 자신의 경험은 자신만이 지닐 수 있는 나의 특별함이다. 죽음까지 내 경험은 내 안에 남는다. 그리고 그 여러 해의 밀도 있는 기둥이 진짜 뚝심이 되어 순풍과 같이 열매를 얻어내게 한다.


사람은 각자의 삶을 살아간다. 그 색은 사람마다 다르다는 점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나, 가끔 사람들은 그 사실을 잊고는, 자신이 가진 색깔들을 타인도 가지고 있다고 여기기도 한다. 내가 한 경험들은 오로지 나의 것이며, 내게 주어진 특별한 사건들이라는 점을 잊지 말 것. 같은 사건들도 걸어온 길에 따라 다른 색을 가진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특별한 사건들이 피어나는 이유다.


인생은 어렵다. 내가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하루하루 터져난다. 가끔은 하도 비참해서 고개를 들 힘조차 없기도 하다. 그런데 뭐 어쩌겠는가. 언젠간 한 그루 나무가 되어 하루하루 나이테 채워갈 생이다. 단풍 드는 잎들도 하나하나 다 색이 다르고, 내 삶의 방향도, 색깔도 죄다 제멋대로다. 푸른 잎, 구멍 송송 뚫린 바래진 잎 모두들 하나하나 다 품고 견뎌낸다. 그렇게 꾸역꾸역 이것도 다 경험이지 하며 살아보자. 생각해 보면 정말 다 기적같이 특별하지 않은가. 기가 막힌 다이나믹함을 품고, 오늘도 살아낸다. 오늘 하루 꼭지 힘 부족해 나무에서 떨어졌다 하여 낙심하지 말고, 이것도 다 경험이지 하는 마인드로 인생 갈아 살아보자. 까짓 거 별거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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