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무던하나, 그 무던함을 경계해야 하지 않나 싶다.
2025년 3월 13일 씀.
대학 시절에는 수첩에 시를 적어두고 품속에 지니고 다녔다. 수업이 끝나고 할 일 없을 때에는 도서관 국내 시집이 빼곡히 들어선 800번대 책장 앞에 1시간 넘게 서성이곤 했다. 그게 당시 내 삶의 낙이었다. 배고프면 도서관에 가고, 달리기를 하고, 글을 쓰던 그 밤들을 나는 지금은 까맣게 잊고 산다.
이따금 그 시절이 그리워 학교 도서관 웹페이지에 접속해 지난날 내가 대여했던 책의 목록을 살펴본다. 학교에 꼬박 10년 동안 있던 터라, 많이도 책을 꺼내 읽었다. 윤동주가 화원의 꽃을 헤아렸던 마음으로 대여 목록을 살펴본다. 삶의 무게를 다 짐 지지 못해 아라비아의 사막으로 떠나고 싶던 내가 보이는 목록들을 찬찬히 보다 보면, 지금의 나는 참 무던하고 안정되었나 보다 싶다. 문학을 가까이하지 않은 지 5년이 훌쩍 넘었다. 그 세월만큼 평범한 인생의 가치를 이전보다 높게 생각하게 되고, 또 그만큼 문학인들과 예술인, 그리고 창조적인 발전과 생산을 하는 그 모든 이들에 대한 경이로움과 존경심은 커져만 왔다. 도무지 안정된 삶에서의 경이로움의 창조란 상상할 수 없다.
일상에서 글을 쓰기란 버겁다. 한시도 나를 가만히 두지 않는 직장의 분주함과 다급함이 나 또한 그들 사고에 동화되도록 종용한다. 다만 그 종용이 마냥 싫지만은 않다. 이렇게 순응하는 나를 볼 때 더욱 세월을 적지 않게 흘려보낸 예술가들에 대한 경이로움은 커져만 간다. 어찌 당신은 그 시간의 흐름만큼의 무거움을 견뎌냈습니까.
한 시절, 무던함이 철듦의 표상이라 여겼던 시기가 있다. 철이 들면, 자연스레 현실의 강에 발을 담그고 흘러가는 세월을 지켜보는 것만으로 나의 삶을 스스로 평가하고, 그 강폭에 맞게 재단하고, 그리고 만족했다. 이 정도면 인생 잘 사는 거지 하는 마음으로 타인 또한 어떻게 인생을 잘 살고 있는지 이따금 몇몇 가까운 이들을 톺아보았던 때가 있다. 조급함과 알량한 자존심이 만들어 낸 결과다.
그렇게 진화론적으로(사실상 진화라 부를 수 없는 관점의 전개임에도 불구하고) “형도 그랬단다, 죽고 싶었지만 살다 보니 괜찮더라”라는 노래가사와 같이 시간의 흐름이 사람을 성숙하게 하더라는 막연한 진리 아닌 진리에 동의해 왔다. 그렇다 보니 지나간 많은 인연 속 여러 소중한 이들에게 철이 없다느니, 조심성이 없다느니, 미래를 보지 못한다느니 하는 웃기고 배려 없는, 그리고 교만뿐인 관용 없는 언어들을 뱉어왔다. 이 경험이 생각나는 밤이면 항상 반성하게 된다.
제게도 꿈은 있었습니다 하던 선장님이 바드와 같이 시를 읊는 때, 나는 초라해진 자신을 위한 잔을 들었다. 몇 해 전만 해도 글을 쓰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는데, 지금은 그런 생각이 스치는 것을 보니 분명 내 머리가 굳어가는 것이구나 싶다. 시를 사랑하고 미워하던 젊은 대학생의 모습은 사라지고, 그저 살아만 가는 직장인만이 남아있다. 그리고 더욱 어려운 사실은, 그 존재가 그다지 밉거나 나쁘지 않다는 것이다.
마침 나무들이 나이테를 그려가는 겨울이다. 나 또한 “직장”생활을 통해 많이도 상처 입고 힘든 작년을 보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무의 나이테는 계절을 보내면 저절로 생기나, 사람의 나이테는 글을 써야 비로소 남겨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이렇게 기록을 남긴다. 시를 사랑했던 그때의 나로 돌아갈 순 없으나, 그 좋았던 마음과 시기를 기억하고 이따금 추억할 때 좋은 기억과 함께 꺼내볼 수 있도록 하자. 어느 정도는 무던함을 경계하고, 나의 나이테의 선명성을 위해 기록하고, 또 남겨보려 노력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