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가을 비가 옵니다.
우리에게 늘 아름다움으로 찾아오던 날씨가 이제는 공포스럽게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지난 5월에 시작된 캐나다의 산불은 여전히 진행중입니다. 상상이 잘 되지 않지만 남한 면적이 잿더미가 되었습니다.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지는 충격적인 기후상황을 접하면서 지구의 몸부림은 앞으로 더 거세질텐데 우리는 너무 안이하게 사는 것은 아닌지 심히 걱정이 됩니다.
이런 기후위기가 먼 나라 이야기 같지만 앞으로 직접적으로 우리에게 영향을 주게 될 것입니다. 아마도 식량난이나, 사회불안, 경제난 등으로 우리를 힘들게 하겠죠. 이런 것들이 그저 일상적인 것이라고 보일지 몰라도 상당 부분은 기후위기가 원인일 수 있습니다. 저는 청소년들의 마약이나 범죄율 증가, 자살증가 등도 기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굶주리더라도 희망이 있으면 이겨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삶의 터전 자체가 파괴된다면 절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기후위기는 이렇게 청소년들에게 모든 희망을 앗아갈 수 있는 암울한 미래의 징표입니다.
지금 10대들은 살아있는 동안 끔찍한 환경에 내 몰릴겁니다. 이렇게 극도로 불안한 사회 환경에서 살아내야 합니다 그런 아이들에게 우리가 줄 수 있는 꿈은 대체 뭘까요?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직장 얻어서 잘 먹고 잘 살라고 아무리 외쳐봤자 그것이 귀에 들어올까요?
부모세대 처럼 살 수 없는 아이들에게 부모세대의 꿈을 강요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그런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들이 길거리로 나왔습니다.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학교도, 시장도 사회도 모두 비정상이 정상이 되고 있습니다. 기후위기는 우리에게 가뭄, 홍수, 태풍 등 다양한 기후현상으로 직접적인 고통을 주겠지만 그보다 더 무서운 건 그로 인한 식량난, 사회불안 등이고 그 보다도 더 무서운 건 절망하는 것입니다. 지구가 망가지고 우리 삶의 터전이 사라진다는 확신을 갖게 된 청소년들이 무슨 희망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이제 과학자들이 주장하는 기후위기를 극복할 터닝포인트가 불과 십년 남짓입니다. 100년도 아니고 수십년도 아닌 십년 정도 남았습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뛰어도 될 까 말까 한 일인데 국제사회의 대처는 여전히 미온적이고 그것도 계획대로 달성해도 기후위기 극복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은 목표를 향해 느그적 거리고 있는 것입니다.
현재 국제사회가 약속한 탄소감축목표를 100% 이행한다고 해도 1.5도 상승을 막지 못합니다. 2015년 파리기후협약 때 2100년에 2도 상승으로 억제하고 가능하면 1.5도로 막자고 결의했지만 이미 2030년이면 1.5도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고 지금처럼 탄소배출이 이루어지면 2100년에는 3도 내지 4도 상승이 예상됩니다. 이미 최고온도를 50도를 넘긴 곳도 나왔습니다. 이제 기후위기는 되돌릴 수 없는 상황이 되면서 지구 환경이 인간이 살 수 없는 환경으로 변하고 호모사피엔스를 비롯한 수 많은 생물종이 멸종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5번 째 대멸종 때 공룡이 사라졌듯이 6번 째 대멸종의 주인공으로 호모사피엔스가 될 것이 확실합니다. 이런 암울한 미래를 앞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요?
저는 이렇게 암울한 미래가 닥쳐오더라도 실낱같은 꿈이라도 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곧 우리를 살게 하는 힘이 될 것입니다. 꿈을 꾸는 자는 결코 늙지 않습니다. 우리는 꿈을 꿔야 합니다. 청소년들에게 지금의 상식이 아닌 새로운 상식을 꿈꾸게 해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인류가 하나의 운명공동체임을 깨닫고 모든 생물종과 풍요로운 공존을 하는 꿈입니다. 지구적 선(Global Good)을 추구하는 가운데 새로운 지구적 질서를 창조하는 꿈을 꾸게 해야 합니다. 비록 시간이 없고 절망적인 상황이라 할 지라도 그 꿈을 꾸며 살아가게 해야 합니다. 인류는 늘 그렇게 꿈꾸며 이뤄낸 역사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이제 우리가 꿔야 할 꿈은 바로 Global Good입니다.
지구적 윤리관(Ethical)으로 지속가능한 방법을 찾아(Sustainable) 지구적 선(Global Good)을 추구하는 ESGG 를 통해 새로운 꿈을 향해 달렸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