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개봉한 영화 시빌 워: 분열의 시대는 미국 사회가 극단적으로 갈라져 내전으로 치닫는 모습을 그린 작품입니다. 영화 속에서 총을 든 병사가 주인공에게 묻는 장면이 기억에 남습니다.
“어느 쪽 미국인이냐?” 주인공은 공포에 질려 대답조차 못 합니다. 얼떨결에 진영이 갈려 대척점에 서 있게 된 상황을 맞닥뜨린 주인공의 모습에서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회적 균열과 불안감이 오버랩되었습니다. 이 장면을 보면서 문득 정치적 갈등, 경제 불안, 지역 간 대립이 심해진다면, 우리도 언젠가 이런 상황에 놓일 수 있을 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더군요. 현재 정치권의 행태는 국민의 불안감을 이용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지 통합과, 미래를 위한 건설적인 행보는 전혀 이루어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국민들의 현실에서의 불안감은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뉴스를 보면 극단적인 의견이 난무하고, SNS에서는 음모론과 가짜 뉴스가 퍼집니다.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은 사람들이 불안할 때 이성보다 감정에 끌린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경제 위기가 심했던 1930년대 독일과 이탈리아에서는 사람들이 극단적 지도자를 선택하며 민주주의가 무너졌죠. 이러한 현상은 지금 세계 여러 국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입니다.
불안은 개인과 사회를 모두 흔듭니다. 안전이 위협받으면 사람들은 방어적이 되거나 공격적으로 변합니다. 가정 폭력, 범죄, 약물 문제가 늘어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경제도 마찬가지입니다. 불안한 사람들은 돈을 아끼고, 기업은 투자를 꺼립니다. 결국 경제가 더 나빠지며 불안은 커지는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불안의 원인은 많습니다. 정치적 양극화, 경제 불확실성, 미디어 혼란 등이 얽혀 있죠. 그중에서도 기후위기는 단순한 환경 문제가 아닙니다. 이런 모든 원인의 근본 원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 조사에서 청소년 10명 중 9명이 기후위기를 심각하게 느낀다고 답했습니다. 이상 기온, 잦은 재해를 겪으며 이들은 희망보다 두려움을 더 크게 느낍니다. 심리학자 레베카 헌트리는 이를 ‘기후 불안’이라고 부르며, 이런 감정이 사회적 연대마저 약화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여기에 인공지능과 로봇 같은 기술 혁신도 불안을 키웁니다. 알빈 토플러는 책 미래 쇼크에서 기술이 너무 빨리 변하면 사람들이 적응하지 못해 혼란에 빠진다고 했습니다. 기후위기와 기술 변화가 겹치며 우리는 전에 없던 불안을 마주하고 있는 셈입니다.
작은 불씨가 큰 화재로
불안이 쌓이다 보면 작은 사건 하나가 큰 파국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역사를 되돌아보면 항상 촉발 사건에 의해 그 사회에 응축되었던 불만이 폭발하게 됩니다. 18세기 후반 프랑스는 경제 위기, 세금 부담, 계층 간 불평등으로 불안이 극에 달했습니다. 루이 16세의 무능한 통치와 식량 부족 등으로 불만이 응축되다가 1789년 7월 14일, 파리 시민들이 무기를 얻기 위해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한 사건이 도화선이 되어 전국적인 혁명으로 이어졌고 결국 왕정 붕괴와 근대 민주주의의 시작을 알리게 된 것입니다.
지금 이 시대는 산업혁명이후 인류가 상식이라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붕괴되면서 불안감이 점점 증폭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열심히 공부하고 지능을 쌓아도 인공지능에 밀리게 되고, 돈을 많이 벌려해도 자연이 파괴되는 부작용 때문에 그렇게 하지도 못합니다. 이런 상황을 극복할 대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그 불안감을 이용해 자신들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자들에 의해 문제가 더 악화되고 있는 실정인 것이죠. 따라서 머지 않아 우리도 비슷한 운명을 맞게 될지 모릅니다. 어느 한 순간 촉발 사건(Trigger Event)이 발생하여 우리를 파국으로 끌고 갈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뭘까요? 저는 불안을 긍정적으로 표출할 수 있는 메커니즘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시도해야 할 일은 ‘많이 쓰고 버리는’ 경제를 ‘적게 쓰고 가치를 만드는’ 경제로 바꾸는 겁니다. 예를 들어, 재활용을 늘리고, 에너지 효율 좋은 건물을 짓고, 지역에서 저탄소 물류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이런 변화는 환경을 살릴 뿐 아니라 새로운 일자리도 만듭니다. 이렇게 기후행동이 자연스럽게 경제적인 활동으로 이어지는 메커니즘을 만들어야 합니다. 적게 쓰고 가치를 만드는 일에 보상이 주어지고 부가 축적되는 경제모델이 될 수 있다면 지속가능한 경제시스템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전환은 고탄소경제를 이끌어 온 국가가 추진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많습니다. 마치 고속으로 주행을 하면서 급회전을 해야 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고탄소경제 하에서 탄소중립은 엑셀과 브레이크를 동시에 밟는 것처럼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다보니 국제적으로 모든 국가가 줄이겠다고 하는 국가감축목표(NDC; Nationally Determined Contribution)를 다 합쳐도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감축해야 할 온실가스의 반도 안됩니다. 나머지 부분에 대해서는 그냥 손을 놓고 있는 실정이지요.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가보다는 조금 더 유연한 지역 사회나 기업이 먼저 움직여야 합니다. 예를 들어, 한 마을이 주민들과 함께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고 쓰레기를 줄이는 실험을 한다고 해보죠. 이에 대해 지자체나 기업이 보상을 해 준다면 어떨까요. 아마도 성공하면 다른 곳으로 퍼질 겁니다. 소비 습관도 바뀔 수 있습니다. 물건을 살 때 환경을 생각하고, 그 선택이 세상에 보탬이 된다고 느끼면 불안이 조금씩 줄어들지 않을까요? 아주 졍교한 저탄소경제 모델을 설계해서 이를 지자체가 먼저 실증하고 그 모델을 확산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추진되기를 기대합니다.
미래는 우리의 손에
이런 변화는 경제뿐 아니라 삶의 방식을 바꿉니다. 성공이 돈이 아니라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데서 오는 사회를 꿈꿔봅니다. 학교에서 아이들이 지속 가능성을 배우고, 캠페인으로 모두가 이를 알게 된다면 다음 세대는 더 책임감 있게 미래를 그릴 겁니다.
지금은 선택의 순간입니다. 불안을 키울 건지, 기회로 삼을 건지. 미래는 정해진 게 아닙니다. 작은 실천이 쌓이면 불안의 시대를 희망의 시대로 바꿀 수 있습니다. 우리 손으로 그 첫걸음을 내디뎌 보지 않겠습니까?
SDX재단은 수 많은 후원자들과 함꼐 '시/도민과 함께 하는 탄소중립 실천 방안'을 만들어 나가고 있습니다. 지금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는 많은 분들의 힘이 모이고 있음에 깊이 감사할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