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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하진 Nov 12. 2017

사라지는 일자리 무엇이 문제인가?

4차 산업혁명이후 리더만들기 2

  특히 60, 70년대 청년기를 보낸 분들과 지금 청년기를 보내는 분들의 삶은 무엇이 얼마나 달라졌을까.

사실 60, 70년대는 모두 배고픈 시절이었다. 그러니 지저분한 것도, 법을 좀 어기는 것도, 주먹질도 먹는 것 앞에서는 용서가 되는 시기였다. 지금의 명동 거리에 개똥 소똥이 널부러져 있어도 그걸 치울 만큼 여유가 없었던 시절이었다. 


  배가 고프면 우선적으로 그것부터 해결되어야 한다. 매슬로우는 인간의 욕구를 5단계로 구분하고 '생존욕구', '안전욕구', '사회적욕구', '존중의욕구' 그리고 '자아실현욕구'라 하였다. 이러한 욕구는 하위욕구가 어느 정도 충족되어야 상위욕구가 발현된다고 보았고 존중의욕구까지는 부족하면 채워야 하는 욕구라 하여 '결핍욕구'라 부른다. 하지만 자아실현욕구는 자신의 의지에 따라 발현되는 욕구라고 하여 '성장욕구'라고 하기도 한다.


  생존욕구가 충족되면 단계적으로 상위욕구인 안전욕구, 사회적욕구, 존중의욕구를 추구하게 된다고 하였다.

과거 베이비붐 세대는 생존욕구만 충족되어도 감사한 마음으로 일을 했다. 배고픔을 해결해야 했으니까 그 이후 사람들은 안전욕구 그리고 사회적욕구 더 나아가 존중의욕구까지를 요구하게 되었다. 대기업에 다니는 직장인들이 사원증을 자랑스럽게 목에 걸고다니는 이유는 사회적, 존중의 욕구를 충족하려는 행위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중소기업이 구인난인 이유는 이와 같은 사회적, 존중의 욕구가 충족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중소기업 대표들은 흔히 우리 때는 이거보다 훨씬 척박한 환경에서도 충분히 만족하고 일을 했다고 주장하지만 구직자에게는 먼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지금의 젊은이 뿐만 아니라 사회적 욕구 수준은 존중의 욕구를 뛰어넘어 자아실현단계로 이동 중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시스템은 이런 상황에 맞게 준비되어 있지 않다.  자아실현 욕구는 결핍욕구가 아니라 성장욕구이기 때문에 자신의 의지에 따라 발현된다. 부족하면 채워야 하는 하위욕구와는 다른 동기에 의해서 발현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미래 사회는 이러한 자아실현욕구가 어떻게 잘 구현될 수 있을 지 검토하고 그런 사회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자아실현을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개인에게 충분한 시간이 보장되어야 한다. 1만시간의 법칙 이라는 말이 있듯이 최소한 10년은 자아실현을 위한 각자의 목적에 투자해야 한다. 물론 그것을 하기 위해서는 기초생활 안정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여전히 20세가 될 때까지 주입식 교육을 통해 모두에게 동일한 지식을 주입하고 대학에서 몇 개의 전공으로 또 다른 주입이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는 미래사회 인재를 육성할 수 가 없다. 이렇게 교육이 일자리를 찾아주는 것으로 역할을 다했다고 보고 그 다음은 일자리가 행복한 삶을 책임져 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가진 사회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기대는 결핍욕구 충족까지는 그런대로 작동을 했지만 자아실현 단계인 미래에는 적용하기 곤란한 상황이다. 과연 조직의 목표와 개인의 자아실현 욕구가 일치 될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우리 사회는 자아실현이 기존의 일자리에서 구현될 수 있다는 착시현상을 깨야 한다. 하위욕구를 만족시켜 주기는 하겠지만 자아실현 욕구는 접근방법이 달라야 한다. 


  구직자들도 사회가 가르쳐 준 대로 대기업이나 공무원등이 되면 자아실현욕구가 충족되리라 기대하겠지만 기존의 일자리의 구조가 자아실현욕구를 충족해 주는 형태로 되어 있지 않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매년 그렇게 어려운 취업관문을 뚫고 들어간 대기업 입사자들이 1년 안에 10명 중 3명은 퇴사를 하고 나머지 7명 중에서  3명 정도만 일에 만족하고 나머 지 4명은 불만족스럽게 일을 한다고 한다. 불만족스러워도 자신의 자아실현욕구를 파악도 제대로 못한 경우나 알아도 용기내지 못하는 경우가 있을 것이고 만족한다고 하여도 그것이 진정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모르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자아실현욕구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10년 이상의 충분한 시간의 투자가 필요하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최소한의 기초생활은 필연적으로 해결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이와 같은 자아실현을 위한 충분한 시간을 청년들에게 확보해 주지 못한다. 그 시간 동안의 기초생활보장을 하는 구조도 아니다. 


  예를 들어 보자. 1998년 박세리 선수의 US OPEN 우승하는 장면을 보고 당시 10대였던 박인비 학생은 골프를 하기로 마음먹는다. 아마 많은 부모들은 '공부부터 하고, 대학간 뒤에'라고 설득했을 것이다. 하지만 박인비 부모는 골프에 적어도 10년 이상을 투자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이 과정에서 생존과 안전욕구도 부모가 책임져 주었다. 그리고 20대에 세계적인 선수가 되었다. 만약 박인비가 20세가 넘어 골프를 하겠다고 했다면 생존과 안전욕구를 스스로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꿈도 꾸기 어려웠을 것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기초생활 보장은 과거 60,70년 대 보다는 훨씬 용이해졌다. 적어도 굶어죽는 사람은 보기 어려운 사회가 되었다는 의미다. 일자리를 얻어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하는데 문제가 있는 것이다. 자아실현은 충분한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데 교육이나 일자리가 그런 시간을 제공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무엇이 나의 내재화된 목적인지 파악조차 못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자아실현 사회를 만들기 위한 구조개혁이 시급히 이루어져야 일자리 문제 등 여러가지 현안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다. 


  구조개혁이 필요한 이유는 어차피 지금과 같은 사회시스템이 제공하는 일자리는 반 이상 사라질 확률이 높으며 이런 상황에도 기존 방식으로 학생들을 교육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기 때문이다.  갈수록 일자리에 대한 인간의 욕구수준이 높아지는데 따라 기존 조직은 충실하게 목표를 달성해 주는 로봇을 선호하게 되어 아무리 우수한 성적으로 학교를 졸업해도 의미가 없다. 이것이 바로 일자리가 사라지는 이유인 것이다. 


  반면에 로봇으로 생산성이 높아진다고 하더라고 기업의 경쟁력은 역시 인간의 창조력에서 판가름나는 형태로 사회도 진화하고 있기 때문에 기존의 일자리는 사라지지만 자아실현 욕구가 발휘되는 정체성이 강한 인재가 필요하게 된다. 조직의 형태가 플랫폼 구조로 진화되고 어떤 분야에도 이런 플랫폼 기업이 탄생하면 전통기업이 맥을 못추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플랫폼 구조라는 것은 자산에서 가치를 분리하여 조직의 내외부의 자원을 망라한 많은 참여자에 의한 집단지성이 경쟁력이 된다. 따라서 참여자의 정체성은 매우 중요한 성공요인이 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자아실현욕구가 강하게 구현되는 참여자가 많이 참여할수록 플랫폼의 경쟁력이 강화된다는 의미다. 결국 승리하는 기업은 플랫폼에 정체성이 강한 참여자를 필요로 하게 된다. 개인의 욕구와 기업의 욕구가 일치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4차 산업혁명 이후의 미래는 개인도 이제는 자아실현욕구를 구현하는 단계에 이르렀고 조직도 그런 인재를 필요로하는 시대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한 마디로 자아실현 사회가 되어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문제 해결을 위해 교육제도, 기업의 구조, 조직의 구조 등 모든 것이 자아실현 욕구를 구현할 수 있는 형태로 바닥부터 모두 바뀌어야 한다. 그래야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지고 인간의 행복이 증진될 수 있다. 이것을 외면하면 할수록 우리는 로봇들과 힘겨운 싸움을 하는 초라한 호모사피엔스로 전락할 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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