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adXer 리덱서 ; 대전환을 이끄는 자들
“기후 관련된 강연인데… 내 친구야. 네가 들으면 좋아할 거야.”
아버지가 무심히 던진 말이었다.
지윤은 잠시 멈칫했다. SDX재단.
어딘가 익숙한 이름이었다.
기후, 기술, 시민 캠페인… 그런 단어들이 어렴풋이 떠올랐고,
그 순간, 머릿속 어딘가에서
그동안 감지되지 않던 전류가 스르르 흘러가는 느낌이 들었다.
며칠 뒤, 캠퍼스 대강당.
사람들은 조용히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무대 위 현수막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조각탄소에 의해 새로운 미래 전략”
무대에 등장한 SDX재단 이사장은
놀라울 만큼 평범한 인상이었다.
정장도 아닌 셔츠 차림, 특별한 무대 장치도 없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단단하고 부드러웠다.
그가 내뱉는 문장 하나하나가
지윤의 가슴에 조용히, 그러나 깊게 박혔다.
“국가의 탄소감축목표(NDC) 는 중요합니다.
하지만 전 세계국가가 제시한 탄소감축 총량은
인류가 실제로 감축해야 할 양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즉, 그것만으로는 위기를 막을 수 없습니다.”
** NDC; Nationally Determined Contribution
“기후위기는 더 이상 ‘정부의 일’이나 ‘기업의 일’이 아닙니다.
이것은 삶의 방식 자체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시민으로서 행동해야 합니다.”
지윤은 숨을 들이켰다.
그 말은, 지금껏 자신 안에 쌓여 있던 질문과 정확히 맞닿아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새로운 구조를 제안합니다.
이름하여 자발적 감축 목표(VDC) 입니다.”
**VDC, Voluntarily Determined Contribution.
각자가 스스로 자신만의 감축 목표를 설정하고,
일상의 실천을 기록하며
그것을 사회적 기여로 전환하는 구조.
“이제 감축은 정부가 ‘위에서 내려보내는 지시’가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 ‘서명하는 약속’입니다.
기후행동은 살아있는 사람의 서명입니다.
“그리고 이를 더 쉽게 만들기 위해 우리는
조각탄소인증제도(MCI)를 도입했습니다.”
한 끼 잔반을 줄인 일,
대중교통으로 출근한 날,
친구와 컵을 나눈 순간…
그 작은 감축들을 조각 단위로 측정하고,
수천, 수만의 시민들과 연결하는 메커니즘.
“그렇게 쌓인 실천은 조각탄소크레딧(MCC)으로 전환되어
새로운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냅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말한다.
“우리가 제안하는 모든 실천은
단지 탄소 수치를 줄이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ESGG, 윤리적(E), 지속가능한(S), 지구적 선(GG)을 실현하는
미래사회의 새로운 상식을 위한 기초 운동입니다.”
강연이 끝난 순간,
대강당 안은 묘한 침묵에 잠겼다.
지윤은 말없이 손가락을 움켜쥐었다.
마치 온몸의 세포가 동시에 반응하는 것 같았다.
‘이건… 내가 상상했던 그거야.’
나가려다 멈췄고, 다시 앉았다.
결국 SDX재단 안내 부스를 찾았다.
“LeadXnow에 대해 좀 더 듣고 싶어요.”
지윤은 그렇게 말했다.
며칠 후, 지윤은 서준과 나영을 만났다.
조그만 카페 구석자리.
그날 강연에서 들은 이야기를 하나하나 풀어 냈다.
VDC, MCI, MCC, ESGG, 그리고 LeadXnow 캠페인.
그 모든 것이 어떻게 시민 중심으로 설계되었는지.
말이 끝나자 조용한 정적이 흘렀다.
서준이 먼저 입을 열었다.
“또 캠페인? 또 누가 상처 입는 거 아니야?
다들 말은 거창하게 시작하잖아. 결국 이벤트로 끝나.”
나영도 고개를 저었다.
“말은 멋있지.
근데 그걸 누가 믿어?
숫자로 못 보여주면 결국 다 감성이고,
감성은 오래 못 가.”
지윤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나도 그게 제일 걱정이야.
그래서… 같이 해보자고 말하는 거야.
이걸 진짜 구조로 바꾸는 건, 결국 우리가 해야 하니까.”
서준은 작게 웃었다.
“이제 또 우리냐?”
지윤은 진심을 담아 말했다.
“다시 우리일 수도 있잖아.
이번엔, 기록되고, 남겨지고,
누군가가 따라할 수 있는 무언가가 되면 좋겠어.”
서준은 눈을 내리깔았고,
나영은 조용히 숨을 내쉬었다.
말은 없었지만,
그들의 침묵 속에는 분명히 무언가가 움직이고 있었다.
그날 밤,
지윤은 조용히 노트북을 켰다.
SDX재단 홈페이지.
LeadXnow 캠페인 참여 신청서가 떠 있었다.
이름, 연락처, 관심 분야, 그리고 마지막 질문:
“당신의 첫 번째 자발적감축목표(VDC)는 무엇입니까?”
지윤은 한참을 망설였다.
그리고 천천히 타이핑을 시작했다.
“작은 연결.
세 사람을 다시 엮은 것.
지금, 여기서 할 수 있는 나의 첫 실천.”
제출 버튼 앞에서 그녀는 숨을 들이쉬고, 클릭했다.
LeadXer 00247. 이지윤.
이름은 아직 낯설었지만,
그 안에 작게 울리는 어떤 확신 같은 떨림이 있었다.
“우리는… 다시 말할 수 있을까?”
지윤은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