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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 아르카, 새로운 세상을 향해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가?

by 전하진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가?


우리는 오랫동안 부지런히 살아왔다.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더 나은 자리를 위해,

더 크고 빠른 것을 손에 넣기 위해
밤을 새우며, 끝없는 경쟁 속에 자신을 밀어넣었다.


그리고 이제 그 모든 것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대체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 살아온 걸까?”

.........


왜 돈과 명예는 우리를 구원하지 못하는가


수많은 이들이 부를 얻었고, 명성을 가졌지만,
어떤 이는 그 절정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했고,
어떤 이는 깊은 공허 속에 병들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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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일까?
돈과 명예는 일시적인 쾌감을 줄 수는 있어도,
지속적인 만족감이나 관계 속의 안정감은 줄 수 없는 도구였기 때문이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관계적 존재’이다.
사랑받고, 연결되고, 쓸모 있다고 느낄 때 비로소 살아있음을 느낀다.


그런데 산업사회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했다.
“부족하다고 느끼게 하라, 그래야 시장이 움직인다.”

우리는 그렇게 결핍을 자극하는 구조 속에서 끊임없이 더 가지려 애쓰며,
실은 점점 더 외롭고 불행해졌다.




생태적 삶의 복원을 상상해 본다면


만약 인류가 산업화를 거치지 않고,
지역에서 음식을 길러먹고,
마을 공동체 안에서 서로 돌보며 살아왔다면 어땠을까?

음식은 자연에서 난 제철 재료였고,
노동은 경쟁이 아니라 협동이었으며,
도시는 소비의 중심이 아니라

생명의 균형을 조율하는 공간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 그 잃어버린 가능성을 다시 상상해야 한다.
그 이름이 바로 생태사회,

테라 아르카(Terra Arca),
지구 생명의 방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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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 아르카 (Terra Arca)


‘테라 아르카’는 생명을 보호하고 순환시키는 지구 자체를

하나의 생명의 방주로 바라보자는 것이다.


노아의 방주는 외부의 재난에서 살아남기 위한 구원의 도구였지만,

테라 아르카는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야 할 책임의 공간이다


테라 아르카는 기후위기와 생태붕괴라는 현대의 재난 앞에서

우리가 다시 만들어야 할 ‘문명적 방주’를 의미한다.


테라 아르카는 기술이 아니라

공동체가 생태적 감수성과 순환의 삶으로 지어야 하며,
그 중심에는 내가 아니라 자연의 일부인 내가 존재해야 한다.


다시 말해 방주에 탑승한 승객이 아닌

방주를 구성하는 일부가 되어야 한다.


데라 아르카의 모습을 상상하면


자급 자족의 마을들이 지구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각 마을은 농업, 식수, 에너지, 교육을 자율적으로 순환시키며
인구 500~2,000명 내외의 살림 공동체로 구성된다.

완벽한 순환체제를 통해 하나도 버려지는 것이 없다.


에너지는 태양·바람·지열 등 자연에서 나는 흐름 에너지를 사용하고,
집은 지역의 흙과 나무로 지어 철근 없이도 사계절을 견디는 지혜가 담겨 있다.


식사는 마을 공동밭에서 자란 채소와 잡곡으로 이루어지며,
음식은 상품이 아닌 관계의 중심이 된다.
아이들은 부모와 이웃과 함께 밥을 짓고, 늙은 이는 씨앗을 지켜낸다.


노동은 생계를 위한 것이 아니라 공동체를 돌보는 시간이다.
하루 몇 시간만 일해도 충분한 생활이 가능하며,
여유로운 시간 속에서 사람들은 예술, 놀이, 대화, 돌봄을 통해 깊은 인간성을 회복한다.


모든 마을은 자율적이되, 느슨하게 연결된 생태연합체로
자원과 기술, 지혜를 공유하며 경쟁보다 조율을 중시한다.
물, 씨앗, 기후, 평화를 주제로 각지의 대표들이 모여
지구적 신뢰를 조정한다.


아이들은 성적이 아닌 삶의 감각을 배우는 생태학교에서 자란다.
토양을 이해하고, 바람을 느끼며, 자신의 감정과 타인의 생명을 함께 읽는 법을 배운다.



테라 아르카는 과거로의 회귀가 아니다


테라 아르카는 단지 산업화 이전으로 돌아가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기술은 존재하지만, 생태적 질서에 순응한다.


지금까지 자연에 반하는

수 많은 행위가 자연이 아닌 오직 인간의 탐욕을 위해 자행되고

그것이 곧 자연을 파괴하는 일이었음을

각성하자.


인류 공동체가 생채적인 삶을 통해 자급자족했다면

지금의 대규모 식품산업, 농업, 물류는 다른 형태로 발전했을 것이다.

사용되기도 전에 폐기되는 수 많은 식재료와 제품은

애초에 만들지 않아도 되는 것들이었다.

그것들이 생태계를 옥죄고 숨을 막히게 한 죄를 씻어야 한다.


디지털 기술은 지역 순환 최적화와 생명 데이터 보호에 사용되고,

인공지능은 탄소 순환 조정, 생태 예측 모델링 등에 쓰이며

인터넷은 물질적 소비가 아닌 경험과 공감의 공유를 확산시키는 플랫폼이 된다.



전환은 불가능한 꿈이 아니다


이미 많은 이들이 변화를 시작했다.
도시 텃밭에서 자급을 시도하고,
공동체 식사를 통해 사람 사이의 벽을 허물고,
탄소 감축 실천을 통해 자연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있다.


이들은 단순한 환경운동가가 아니다.
이들은 새로운 인간의 가능성을 실험하는 리더들,
우리가 ‘리덱서(LeadXer)’라고 부르는 전환의 선구자들이다.



새로운 문명, 삶의 새로운 정의가 필요하다


이제 우리는 묻지 않던 것들을 묻기 시작했다.


“얼마나 벌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살렸느냐”를,


“어디까지 올랐느냐”가 아니라
“누구와 연결되었느냐”를.


우리의 진짜 삶은,

돈이나 명예가 아니라
관계와 자율, 순환과 회복 속에 있다.
이것은 더 나은 선택이 아니라,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생존의 길이다.


. 우리가 자연에 무언가를 남겨야 한다는 강박보다,

자연의 일부로서 살아간 흔적이 곧 ‘기여’였음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의 생각과 행동이 그냥 그렇게

테라 아르카에 한 역할을 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모든 생물종이 그러하듯

인간에도 동일하게 적용된 자연의 법칙이다.


물론 다른 생물종과 다른

역할과 능력이 주어짐을 이해한다면

더더욱 테라 아르카의 지속가능성에

기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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